<잠> 스틸. 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잠>을 보며 흠칫했다. 사실 필자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면 중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몽유병은 아니지만, 사실 본인은 수면 중 빈번하게 고성을 지른다). 중요한 것은, 수면 중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정작 본인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물론, 나도 누군가가 일러주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러나 나는 다행히도 배우자가 없기 때문에 <잠> 속 ‘수진’(정유미)이 남편 ‘현수’(이선균)의 행동에 느끼는 공포에 필적할 만한 감정을 느낄 사람은 없다. 다만, 종종 타인과 같은 공간에서 잠이 들 때면 그들은 내가 마치 악령이 든 것처럼 비명을 지른다고들 한다. 누군가가 잠든 채 소리를 지르는 나를 보고, <잠> 한 편을 뚝딱 완성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공감되기에 더욱 무서운 현실적인 공포, <잠>은 ‘몽유병’이라는 현실적인 소재에 상상력을 덧입힌 영화다. 영화는 행복했던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과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국내 개봉에 앞서 <잠>은 올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의 비평가주간에 초청되어 기립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배우 이선균, 정유미, 유재선 감독. 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여름을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된 이 시기, 서늘한 바람처럼 불어온 영화 <잠>. <잠>은 올 9월 6일 극장 개봉 예정이다. 개봉에 앞서 지난 18일 개최된 <잠> 언론배급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서는 영화를 보고 배우, 감독, 기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날 나온 말을 토대로,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잠> 관람 포인트를 전한다.


<옥자> 출신 유재선 감독의 입봉작.. 봉준호의 조언 “본인의 해석을 관객에게 알리지 말라”

유재선 감독. 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기자간담회장은 자신의 첫 작품을 선보이는 유재선 감독의 설렘으로 가득했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던 유재선 감독은 여러 단편영화를 만들고,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연출팀을 거쳤다. 그전에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의 영문 자막 번역 작업을 담당하기도 하는 등, 영화감독으로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길을 걸은 셈.

<옥자>를 통해 유재선 감독과 인연이 돈독한 봉준호 감독은 <잠>을 보고 “(영화에 대한) 본인의 해석을 절대 관객에게 알리지 말라”라고 유 감독에게 조언했다고 한다. 그 조언을 충실히 따라, 유 감독은 <잠> 내용 중 해석이 갈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누설하지 않기로 했다고. 유 감독은 <잠>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영화를 즐기셨으면 좋겠다며, 극장을 나서며 영화에 대한 해석을 서로 나누는 것도 재밌을 것이라고 관람 포인트를 전했다.


호러+스릴러+로맨스+오컬트+코미디=?

<잠> 스틸. 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잠>은 단순히 공포 영화라고 하기엔 그 전형과 거리가 멀기에 장르를 단정 짓기 어렵다. <잠>에는 스릴러나 미스터리, 오컬트 요소가 있지만, 해외에서는 장르를 코미디라고 칭할 정도로 복합적인 영화다. 또 한편으로는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고자 하는 부부의 이야기가 담겼으므로 로맨스라고 볼 수도 있는데, 직접 각본을 쓴 유재선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당시,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앞둔 상태였기에 대본에 부부 관계에 대한 화두가 담기게 되었다고 밝혔다.

<잠> 스틸. 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이 <잠>을 보고 “10년간 (본 것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라고 감상을 남겼듯, <잠>이 쌓아 올린 공포의 결은 일반적인 공포와는 정 반대다. 주인공이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 공포영화의 주된 구조인 반면, <잠> 속 공포의 대상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매일 같은 침대를 공유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 연기 미쳤다” 소리 절로 나오는 이선균 X 정유미의 호흡

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등장인물을 최소화한 <잠>은 러닝타임 내내 두 주인공의 호연이 영화를 빈틈없이 채운다. 이선균과 정유미는 <첩첩산중>(2009), <옥희의 영화>(2010), <우리 선희>(2013) 등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여러 차례 호흡한 적이 있는데, 이때의 일상적인 연기는 현실적인 공포를 소재로 한 <잠>의 캐스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실제로, <잠>을 본 봉준호 감독은 “배우들 연기 미쳤다”라는 말을 유재선 감독에게 전했다고.

<잠> 스틸. 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이선균은 “(유재선 감독이) 봉 감독에게 배우다 보니까,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대본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보통 데뷔작이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텐데, (<잠>은 그렇지 않고) 시나리오가 굉장히 간결했다”라고 유 감독과의 작업 경험을 회고했다.


제한된 공간 ‘집’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연출

<잠> 스틸. 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잠>은 1장, 2장, 3장으로 나뉘어 있다. 각 장은 두 주인공의 상황 변화에 따라 나뉘는데, 각 장 사이에는 시간 공백이 있다. <잠>을 관람하는 관객은 그 사이에 어떤 사건이 있었을까, 하며 상상해 보는 것도 재밌을 터.

등장인물을 최소화한 것처럼, 유재선 감독은 <잠> 속 공간적 배경의 변화도 최소화했다. 사건은 줄곧 현수와 수진의 보금자리인 신혼집에서 펼쳐진다. 장이 진행됨에 따라 달라지는 집의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 포인트 중 하나. 집의 분위기는 캐릭터들의 심리를 대변하는데, 1장은 알콩달콩하고 아기자기한 집이라면, 2장은 차갑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분위기의 집이 된다.

<잠> 스틸. 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또한 유 감독은 <잠>에서 현란한 카메라 워크를 배제하고자 했다.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친밀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카메라 워크가 두 사람의 심리를 가장 잘 대변해야만 했다. 그래서 유 감독은 감각적인 촬영 대신, 실제로 인물이 물리적으로 있을 수 있는 곳에서만 촬영을 했다. 그 때문에, 관객은 마치 내가 주인공의 옆에 나란히 누운 것처럼 서서히 조여오는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