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귀여움과 강인함을 선보여 세대를 가리지 않고 국민적인 사랑을 독차지한 배우였습니다.
한국에서 '스타'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렸던 배우, 최진실의 생전 기록을 돌이켜보며 그녀의 8주기를 추모해보고자 합니다.
삼성전자 VTR CF (1989)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최진실이 대중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전설적인 전자제품 CF 속 멘트죠. 당시 무명이었던 그녀는 이 CF 하나로 단번에 인기스타가 됐습니다. 여기서 얻은 '귀여운 새댁' 이미지는 오래도록 최진실을 대표하는 수식이었습니다.
영화 <남부군> (1990)
<남부군>은 최진실의 영화 데뷔작입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는, 빨치산 종군기자 이태(안성기)와 부상당한 그를 간호하는 인민군 간호사 박민자(최진실)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초반에 할애합니다. 거친 분장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화한 최진실의 연기에 대한 의지에 청룡영화상은 신인여우상으로 화답했죠.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0)
로맨틱 코미디는 신인시절 최진실의 귀엽고 생글생글한 이미지와 가장 적합한 장르가 아닐까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풋내기 작가 영민(박중훈)과 미영(최진실)의 파란만장한 신혼생활을 펼쳐놓습니다.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사소한 오해로 티격태격 싸우는 젊은 부부의 생기는 1990년대 초반을 대표하던 두 청춘스타의 케미로 빚어진 것이었죠.
드라마 <질투> (1992)
1992년. 이미 최진실은 스타였지만 진정한 전성기는 드라마 <질투>에서 시작됩니다. 하경 역의 단발머리 최진실은 그야말로 90년대 초 20대 여성의 상징과도 같았죠. 하경과 영호(최수종)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서로의 곁을 맴돌기만 합니다. '질투'라는 단어만 들어도 드라마 주제가와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영화 <마누라 죽이기> (1993)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호흡을 맞췄던 박중훈-최진실이 3년 만에 다시 부부로 만났습니다. 그땐 끽해야 부부싸움이나 하더니만 이번엔 아예 남편이 킬러까지 고용해 아내를 죽이려고 합니다. 코미디인 <마누라 죽이기>는 살인청부라는 자칫 위험해 보이는 소재를 유쾌하게 그려, 두 배우는 물론이고 강우석 감독의 커리어까지 승승장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1994)
최고의 스타로 90년대를 가로지르던 최진실은 양귀자의 소설을 영화화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생애 가장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남성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들을 상담하며 남성에 대한 분노를 키우다가 최고 인기의 남자배우를 납치해 길들이는 강민주가 바로 그. 최진실은 당시 한국영화계에서 드물던 페미니스트 캐릭터를 선보였습니다.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1997)
<별은 내 가슴에> 하면 안재욱이죠. 무명이었던 그가 이 드라마로 일약 최고 스타 자리에 올랐으니까요. 하지만 재벌(차인표)과 톱스타(안재욱)의 구애를 받으며 성공을 쟁취하는 고아원 출신의 디자이너 이연이(최진실)가 없었다면, 이 전형적인 캔디형 드라마는 성립되지 못했을 겁니다. 49.3%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중국에 수출돼 '최초의 한류 드라마'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영화 <편지> (1997)
<편지>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멜로'의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우연하게 만난 정인(최진실)과 환유(박신양)가 꿈같은 신혼생활을 보내다가 환유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비디오 편지에서 작별을 말하는 박신양의 초췌한 모습만큼이나, 신혼의 행복함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 비통함이 동시에 담긴 최진실의 얼굴이 선연하게 남은 영화입니다.
드라마 <장밋빛 인생> (2005)
<장밋빛 인생>의 맹순은 지금도 사람들이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최진실의 얼굴이 아닐까 합니다. 이혼 후 슬럼프에 빠질 뻔했던 그녀는 억척스러운 아줌마란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죠. 늘 목부분이 살짝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온갖 걱정을 짊어지고 살 것 같은 맹순에게서, 하루하루 일상을 사는 자신을 비춰 보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2008)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유명한 스타와 입주 가사도우미로 다시 만난 첫사랑 남녀의 로맨스를 그립니다. 캐치한 설정 때문에 '줌마렐라'라는 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죠. <장밋빛 인생>만큼 망가지지만, 그보다는 밝고 행복한 최진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배우 최진실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드라마가 되고 말았죠.
최진실의 여러 모습을 이렇게나마 모아보니 그녀가 참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배우였구나, 새삼 곱씹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