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다. 넷플릭스와 국내 대형 극장 프랜차이즈 업계는 <옥자>를 두고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극장, 대한극장 등에서는 <옥자> 예매를 시작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6월2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개봉과 함께 넷플릭스 서비스도 시작될 예정이다.
많은 기대와 화제를 만들어낸 <옥자>는 최근까지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메인 예고편이 공개되고서야 이 영화의 주인공(?) ‘옥자’에 대한 궁금증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 옥자는 돼지인데 하마 같이 생긴 동물이었다. 어쨌든 옥자는 돼지인 것이다.
돼지는 개나 고양이처럼 사람과 함께 살을 비비고 사는 반려동물은 아니다. 반려동물로 키우는 경우도 물론 있다. 대체로 돼지는 소, 닭과 함께 사람과 가깝게 살아간다. 왜냐면 사람이 잡아먹기 때문이다. 사람과 가까운 만큼 돼지가 등장하는 영화가 꽤 있다. 갑자기 궁금해서 찾아본 돼지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모아봤다.
주연급 돼지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 (1995)
‘돼지’ 하니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꼬마 돼지 베이브>다. 돼지는 사실 아이큐가 꽤 높은 동물이라고 한다. <꼬마 돼지 베이브>의 ‘베이브’의 경우에는 더 특출나다. 베이브는 음식(pork)이 될 운명을 타고났지만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동물(pig)로 살아간다. 양치기 돼지로 거듭난 것이다. <꼬마 돼지 베이브>는 단순한 아동용 영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꽤 묵직한 감동을 준다.
샬롯의 거미줄 (2006)
<샬롯의 거미줄>에도 돼지가 등장한다. 원작은 미국의 작가 엘윈 브록스 화이트가 1952년에 쓴 동화다. 2007년 국내 개봉한 영화에선 다코타 패닝이 새끼 돼지 월버와 친구가 되는 펀을 연기했다. <샬롯의 거미줄>은 돼지와 함께 거미 샬롯(줄리아 로버츠 목소리 연기)이 주인공인 영화이기도 하다. 제목에 왜 ‘거미줄’이라는 단어가 들어갔겠는가. 샬롯은 월버가 햄이 되어 식탁에 오를 비극을 막아준다. 어떻게 막아주냐고? 거미줄을 이용한다는 정도만 공개하겠다.
붉은 돼지 (1992)
<꼬마 돼지 베이브>와 <샬롯의 거미줄>에 ‘말하는 돼지’가 등장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에 등장하는 돼지는 단순히 말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탁월한 파일럿이고, 와인과 재즈를 즐긴다.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연인도 있다. 그야말로 로맨티시스트다. 그는 파시즘에 반기를 들고 스스로 돼지가 된 이탈리아인이다. 포르코 로소(Porco Rosso, 이탈리아어로 ‘붉은 돼지’)는 이렇게 말한다.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 쪽이 나아.” 포르코 로소는 우리가 만난 가장 멋진 돼지다.
조연급 돼지 영화
검은 사제들 (2015)
<검은 사제들>을 본 사람들은 의외의 캐릭터의 열연을 칭찬했다. 바로 돼지였다. 강동원의 품 안에서 돼지가 보여준 연기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이었다. 김윤석, 강동원, 박소담까지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검은 사제들>의 돼지는 신스틸러였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김 신부(김윤석)와 최 부제(강동원)가 삼겹살집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최 부제는 그 가게에 돼지를 데리고 왔다. 최 부제는 돼지와 친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 부제에게 “돼지와 친하게 지내라”고 시켰던 당사자인 김 신부는 “여기에 걔를 데리고 오는 건 좀 그렇지 않냐”고 말한다.
웰컴 투 동막골 (2005)
<웰컴 투 동막골>에는 멧돼지가 등장한다. 이 멧돼지는 강원도에 살고 있다. ‘옥자’도 강원도 출신이다.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 장면이 너무나 유명하지만 멧돼지 사냥 장면도 꽤 재밌다. 스포일러를 하자면 <웰컴 투 동막골>의 멧돼지는 <꼬마돼지 베이브>의 베이브나 <샬롯의 거미줄>의 월버와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남과 북, 미국까지 함께한 화합의 장에 자신을 희생했다.
스윙걸즈 (2004)
<스윙걸즈>에도 멧돼지가 희생된다. 이 멧돼지의 죽음이 없었다면 시골 고등학교의 스윙 밴드는 시작도 못했을지 모른다. 멧돼지를 잡은 포상금으로 악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스윙걸즈>는 언제 봐도 유쾌한 영화다. 토모코 역의 우에노 주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참고로 <스윙걸즈>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로는 <워터보이즈>가 있다. 두 영화 모두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작품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미야자키 하야오는 <붉은 돼지>에서는 돼지를 근사한 로맨티시스트로 보여주더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탐욕의 상징으로 전락시켜버렸다. 두 장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돼지가 사람에서 변한 것은 공통점이다.
돼지가 등장하는 진지한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 (2015)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감독 자신의 체험을 담은 영화다.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어느 겨울 감독은 살아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돼지를 찾아나선다. 돼지를 가까이에서 보면 볼수록 그녀는 육식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옥자>에서도 육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참고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패스트푸드네이션>(2008) 역시 햄버거를 통해 거대 자본과 육식에 대한 고민을 던지는 영화다. 아, 이 영화에서는 돼지가 아닌 소들이 등장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다.
추억(?)의 돼지가 등장하는 만화 영화
똘이장군: 제3땅굴편 (1978)
1970년대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분명 기억할 만한 사악한 돼지가 있다. <우뢰매> 시리즈의 김청기 감독이 만든 반공 만화영화(당시엔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았다) <똘이장군: 제3땅굴편>에 돼지가 등장한다. 지금 40대인 우리(?)들은 그 돼지가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사람의 가면을 쓴 악당이 알고 보니 돼지였다. 돼지를 먹기만 하는 탐욕스러운 동물로 치부한 데서 온 캐스팅(?)인 듯하다.
기타, 돼지와 관계 없으나 소개해보는 영화
<돼지의 왕> (2011)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에는 돼지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에는 등장한다. 이유는 이렇다. 학교 내 계급과 폭력을 다루는 이 애니메이션에서 항상 당하기만 하는 아이들이 돼지에 비교당하기 때문이다. 부잣집 일진 아이들에게 먹잇감이 되는 처지를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제목에도 ‘돼지’가 들어가지만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내부자들> (2015)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집니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에 돼지가 개와 함께 언급된다. 무심코 이런 말을 쓰기에 앞서 돼지는 알고 보면 머리가 좋은 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옥자>의 개봉을 기다리며 돼지가 등장하는 영화를 살펴봤다. <옥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 쓴, 조금 뜬금없는 포스팅이 되긴 했지만 누군가에겐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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