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감독 조선호 출연 김명민, 변요한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반복되는 최악의 하루
★★
타임 루프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시간이 반복되는 개연성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며, <하루>도 왜 그 끔찍한 하루가 반복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으며, 결국 과거를 소환하여 문제적 하루를 해결한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긴 하지만 지루하진 않다. 편집의 힘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영화가 죽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건 역설이다.
 
정시우 <이투데이 비즈엔터> 기자
짧은 러닝타임이 가장 큰 장점
★★☆
시작은 좋다. 재기발랄한 편집과 빠른 호흡으로 타임루프 소재가 지닌 식상함을 타파해나간다. 그러나 기존 타임루프의 공식을 비틀기 시작하는 후반부터 영화가 급격하게 길을 잃는다. 세 인물의 사연을 이어붙이는 플롯이 거칠고, 인과관계의 설득력을 충분한 획득하지 못한 탓이다. 김명민 변요한 유재명 세 배우의 연기는 너무 뜨거워서 오히려 아쉬운 쪽이다. 같은 극끼리 모여서 밀어내는 느낌이랄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러닝타임이다. 90.


엘르
감독 폴 버호벤 출연 이자벨 위페르, 로랑 라피트, 앤 콘시니

송경원 <씨네21> 기자
게임의 법칙을 뒤집은 생존 드라마의 파괴력
★★★★
성범죄 피해를 당한 여성의 복수담이란 겉옷을 입고 있지만 실은 세상의 폭력에 맞선 여성의 생존기에 가깝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의 뒤틀린 욕망을 통로로 인물의 심연 속으로 파고든다. 자극적인 사건이나 볼거리 대신 인물의 내면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집중력이 도드라진다. 차갑고 미니멀한 연기로 영화 전체의 불안을 조율하는 이자벨 위페르의 존재감이란! 전복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문제작. 탁월하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안티 클리셰
★★★★☆
애써 복선을 깔거나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를 만들거나 반전을 꾸며내지 않지만, 폴 버호벤의 <엘르>를 보면서 관객은 감독의 이야기에 질질 끌려다니게 된다. 예상하기 힘든 영화. 온갖 자극적 요소들이 넘실거리지만, 그것들은 기막히게 배치되어 선정주의의 함정을 벗어난다. 이자벨 위페르는 여전히 모방 불가능한 톤을 만들어낸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복수의 기묘한 감각
★★★★
미셸(이자벨 위페르)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그녀를 쾌락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던 남자들에게는 이상한 여자, 몇몇 부하 직원들에게는 마녀, 아들에게는 정 없는 엄마. 주변의 남자들이 미셸을 마음대로 재단하려 드는 것과 상관없이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가장 어두운 트라우마까지 직시하는 주체다. 덕분에 그녀의 복수는 전형적인 복수극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매 순간 예측을 불허한다. 서스펜스와 스릴, 심지어 코미디까지 아우르는 <엘르>의 기묘한 복수극은 그녀로 인해 완성된다.


나의 붉은 고래
감독 양선, 장춘 목소리 출연 계관림, 소상경

이화정 <씨네21> 기자
동양적 사고관으로 구축한 바다 아래, 거대한 세상
★★★
인간 세상의 바다 아래,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판타지적인 가설. 성장기에 접어든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향한 호기심, 이성에 대한 사랑을 촘촘하게 엮어낸다. 윤회사상과 삼신할멈, 세계의 또 다른 문 같은 삶과 죽음에 관한 동양적 사고관을 바탕으로 구현한 세계와, 선으로 표현된 그림체가 어우러져 스펙터클한 감흥을 안겨준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음악을 만든 요시다 기요시의 음악이 장중하고 아름다운 바다 세계를 완성해준다.


중독노래방
감독 김상찬 출연 이문식, 배소은, 김나미

정유미 <맥스무비> 기자
볼수록 끌리는 노래방 사람들
★★☆
판타지, 미스터리, 블랙 코미디가 어우러져 기묘한 화음을 내는 독특한 영화다. 한국영화에서 무분별하게 소비했던 노래방이라는 공간을 장르 영화의 무대로 설정해 삶의 페이소스를 채워넣었다. 연출의 이음새나 대사, 마무리 등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띄지만 이문식, 배소은, 김나미, 방준호의 캐릭터 연기만큼은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지난해 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장편)’ 부문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배소은)을 받았다.


안티포르노
감독 소노 시온 출연 토미테 아미, 츠츠이 마리코

정유미 <맥스무비> 기자
로망 포르노의 중심에서 안티 포르노를 외치다
★★★
로망 포르노이면서 포르노에 반기를 드는 도발적인 영화다. 소노 시온 감독은 여성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세태를 자신만의 표현 방법으로 꼬집는다. 기괴한 설정과 관념적인 대사, 미스터리한 구성, 연극적 요소가 한데 섞여 강렬한 퍼포먼스를 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감각적인 연출이 백미다. ‘영화는 예술적 행위임을 실천하는 감독이자 시인, 화가, 행위 예술가 소노 시온이 선물하는 통큰 화폭을 꼭 스크린에서 감상하시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로망포르노, 부활 혹은 해체
★★★
혹시 에로틱한 쾌감이나 끈적끈적한 스토리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사절. 제목이 직접적으로 내걸 듯, 소노 시온 감독은 안티의 입장에서 포르노가 지닌 성적 판타지를 깨부순다. 관음적 시선을 차단하고 카메라의 존재를 드러내며, 자연스레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경계를 넘나든다. 닛카츠의 로망포르노 리부트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 ‘일반적이거나 점잖은취향을 가진 관객이라면 괴로울 수도 있겠다.


더 바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출연 블랑카 수아레즈, 마리오 카사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설정만으론
★★
어느 에 갇힌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사투를 그린 스릴러. 한정된 공간과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최후 승자를 가려내는 방식은 그다지 새롭지 않지만 언제나 흥미롭다. 이런 장르의 영화가 성공하려면, 대신 매우 촘촘하면서도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더 바>에선 이런 점이 아쉽다. 그냥 이 장르의 관습을 착취하고 소비하는 느낌. 사실, 장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익숙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게 쉽진 않지만 말이다.


24
감독 앤 조라 베라치드 출연 줄리아 옌체, 비얀 미들

이화정 <씨네21> 기자
누구도 대신 재단할 수 없는 임신, 출산, 낙태
★★★☆
아마 다운증후군 아이를 임신한 사실, 그 자체가 산모인 아스트리드의 가장 큰 고민줄기가 아닐까 싶을 거다. <24>는 우리가 생각하는 예측을 번번이 벗어나는 이야기다. 아스트리드가 출산을 결심한 것은, 이 영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가깝다. 보통의 휴먼드라마와 결이 달라지는 지점이다. 영화는 출산을 고결함, 숭고함, 모성애라는 틀 안에 가두지 않는다. 여성의 임신, 출산, 낙태에는 그보다 더 복잡다단한 줄기들이 있고, 그 결정은 누구도 끼어들거나 대신해 줄 수 없는 문제다. 유명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사회적 활동과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책임감 사이에서, 아스트리드의 판단과 고민, 유보, 갈등의 시간들이 마치 곁에서 지켜보는 듯 세밀하게 묘사된다.


재밌으셨나요? 아래 배너를 눌러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영화 이야기, 시사회 이벤트 등이 가득한 손바닥 영화 매거진을 구독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