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라니! 그를 아는 영화 팬들은 이 소식을 쉽게 믿기 힘들다. 1957년생인 그는 이제 60살이다. 요즘 시대에 환갑이면 젊은 나이 아닌가. 특별히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제발 은퇴 번복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3회 수상한 유일한 배우, 현시대를 대표하는 명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대하여.
영화 출연, 일단 거절하고 본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이름을 들어는 봤어도 얼굴이 ‘팍’ 하고 단번에 떠오르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름 자체가 생소한 사람도 있을 테다. 그는 대중친화적인 배우가 아니다. 사생활을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할리우드 스타, 셀러브리티의 삶을 살지 않는다.
그의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데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너무나 단순한 이유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출연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거절한 캐스팅은 수없이 많다. 이 역할을 다 수락했다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톰 크루즈만큼 유명한 배우가 됐을지도 모른다.
우선 피터 잭슨의 러브콜을 거절했다. 그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아라곤 역할을 수차례 제안 받았지만 끝내 수락하지 않았다. 이 역은 비고 모텐슨에게 돌아갔다. 톰 행크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필라델피아>의 주연도 거절했다. 대신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택했다. 조지 클루니가 출연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솔라리스>,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의 조엘(러셀 크로우), 지나 데이비스 주연, 레니 할린 감독의 <컷스로트 아일랜드>, 랄프 파인즈가 출연한 <잉글리쉬 페이션트>,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도 거절했다.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은 거절하길 잘한 것 같다.
한마디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작품 선택에 있어 유난히 까다롭다. <갱스 오브 뉴욕>의 경우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제작사인 와인스타인 컴퍼니의 대표 하비 와인스타인이 직접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찾아가서 출연을 설득하기도 했다. 당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5년 간 영화에 출연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구두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구두 장인에게 기술을 배우는 중이었다. 스콜세지 감독과 와인스타인은 큰 역이 아니라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꼬드겼다고 한다. 결국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수락했다. 사실 이 역은 원래 로버트 드 니로의 것이었다.
‘미친’ 메소드 연기의 장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다른 사람이 된다. 한마디로 그는 메소드 연기의 달인, 아니 장인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세 편의 영화를 살펴보자. <나의 왼발>(1989),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링컨>(2012)으로 그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링컨>의 링컨 대통령 역할은 분장 때문에 원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 <나의 왼발>에서는 왼쪽 발만 움직일 수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 크리스티를 연기했다. 거의 30년 전 영화라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얼굴에 가깝다.
<라스트 모히칸>(1992), <아버지의 이름으로>(1994), <갱스 오브 뉴욕>(2003)도 살펴보자.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아버지의 이름으로>와 <갱스 오브 뉴욕>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라스트 모히칸>, <아버지의 이름으로> 포스터를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기분이 든다. <갱스 오브 뉴욕>의 콧수염 있는 악당(빌 ‘더 버처’ 커팅)은? 잘 모르겠다. 에디터의 눈에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지독한 배우다. 그 지독함 덕분에 이렇게 영화마다 변신을 거듭할 수 있다. 그는 오로지 연기를 위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한다.
<나의 왼발>을 촬영할 당시에는 촬영을 하지 않을 때도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갱스 오브 뉴욕>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갱들의 수장, 윌리엄 커팅, 도살자 빌(Bill the Butcher)을 연기했다. 역할을 위해 그는 실제 푸줏간 견습생으로 일을 배웠다. 영국 출신인 그는 촬영 기간 내내 뉴욕 악센트를 유지했다. 촬영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는 소품인 푸줏간용 칼을 갈았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 연기하며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 한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칼을 갈며 노려본 사람이 상대역 암스테르담 발론을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였기 때문이다. <갱스 오브 뉴욕>의 이탈리아 촬영지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19세기를 살았던 자신의 캐릭터 빌이 입던 그 당시의 낡은 코트만 입기를 고집했다. 20~21세기 코트를 거부한 결과, 의사가 항생제를 처방했다.
<링컨> 촬영을 위해서는 1년 동안 준비했다. 링컨 관련 도서를 100여 권 읽었다. 이쯤 되면 짐작하겠지만 그는 촬영 기간 내내 링컨으로 살았다. 심지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까지 그를 부를 때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불렀다.
<햄릿> 연극에 출연했을 때는 무대에서 탈진한 적도 있다. 햄릿이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는 장면인데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실제로 아버지의 유령을 만났다고 주장하며 이후 무대에 오르기를 거부했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악명을 떨쳤다. 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석유 개발 시대를 산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남자를 연기했다. 이 남자는 성공을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광기에 휩싸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 결과, 그의 상대역 일라이 선데이를 연기하기로 했던 켈 오닐이라는 배우가 촬영장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미친 메소드 연기에 겁을 먹고 말았던 것이다. 대신 그 자리는 <옥자>에 출연한 폴 다노가 연기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광기를 받아낸 폴 다노는 성공한 배우가 됐다.
은퇴하고 드레스를 만든다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시대를 대표하는 명배우라는 점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연기에 대한 집요함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 집요함은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는 연기에 지쳤을까. 사실 그는 자주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다. 까다롭게 선택하고 지독하게 연기한다. 2012년 개봉한 <링컨>이 마지막이다. 메소드 연기의 집요함에서 오는 피곤함이 은퇴의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갑작스런 은퇴 이유는 도대체 뭘까. 일부 언론에서는 과거 그가 구두 기술을 배우던 시절에서 은퇴 이유를 추측하고 있다. 올해 성탄절에 그가 출연한 영화가 개봉한다. 5년 만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레드>(가제)라는 작품이다. 1950년대 런던의 패션업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패션디자이너 역할을 맡았다.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구두 기술을 배우던 그다. 배우가 되기 전에는 목공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목공과 구두 기술은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유추가 가능하다. ‘미친’ 메소드 연기의 장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디자이너 연기를 위해 의상 공부를 했다. 촬영 중에는 당연히 디자이너로 살았다. 손재주가 좋은 그는 촬영이 끝난 뒤 진짜 드레스를 만들고 싶어진 게 아닐까.
아직 준비가 덜 됐다. 디자이너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맞이하기에는 이르다.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더 만나고 싶다. 집요한 메소드 연기의 무시무시함을 더 보고 싶다. 농담이지만 은퇴 번복의 아이콘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을 만나봤으면 좋겠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