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73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토록 원하는 제대로 된 사과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할머니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 39명만이 생존해 있고, 1992년 1월 8일부터 이어진 '수요집회'가 어김 없이 진행(2월22일 기준 제1271차)되고 있는 와중에도 일본 정부는 반성은커녕 후안무치한 태도로 그들을 대한다. 2015년 말, 당사자와의 합의를 빠뜨린 채 10억 엔을 받는 걸로 진행된 한일 양국 정부의 합의는 지금까지도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극영화 <눈길>과 다큐멘터리 <어폴로지>가 개봉한다. 김새론과 김향기가 출연하는 <눈길>은 일제강점기 말을 배경으로, 나이도 태어난 마을도 같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소녀가 일본군에 끌려가 살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TV용 단막극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재편집해 영화 버전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티파니 슝 감독의 <어폴로지>는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중국의 차오 할머니,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 세 분의 삶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적극적인 활동을 잇고 있는 길원옥 할머니와 달리,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용기를 여전히 곱씹는다.

3.1절을 맞아, <눈길>과 <어폴로지>와 함께 보면 좋을 위안부 문제 관련 영화 5편을 소개한다.


낮은 목소리
낮은 목소리 2
숨결
(1995~1999)

국제매춘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만들던 변영주 감독은 시야를 우리나라로 좁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초점을 맞춘 <낮은 목소리> 연출에 착수했다. 이전까지 할머니들은 자신의 과거를 수치스럽다고 여겨 침묵한 채 살아왔지만, <낮은 목소리>가 만들어지면서 그들은 당당히 세상으로 나가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폭력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투쟁을 이어나간 수요집회’, 함께 생활하는 공간 나눔의 집을 거점으로 그들의 일상을 조명했다. 다큐멘터리의 가장 중요한 방향은 결국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변영주 감독은 오랜 시간 그들과 연애하는 과정을 거쳐 돈독한 관계를 맺었고, 그로 인해 들을 수 있는 내밀한 고백들이 관객들에게도 전달됐다. <낮은 목소리2>(1997)강덕경 할머니, 시리즈의 마지막 편 <숨결>(1999)은 이용수 할머니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다. 변영주 감독은 이후 <밀애>(2002)를 시작으로 극영화 <발레 교습소>(2004), <화차>(2012) 등을 내놓았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2007)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배경은 일본이다. 일본군의 강제적 위안 행위를 입증하는 공식 문서가 1992년 일본에서 발견되고, 시민단체들은 위안부 100이라는 연락망을 만들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송신도 할머니를 알게 된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확고한 뜻을 펼치던 할머니는, 처음에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 모두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매순간 꼿꼿한 태도로 인해 영화는 감상적인 동정을 드러낼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강직한 태도 너머로 보이는 푸근한 웃음이야말로 이 다큐멘터리의 진정한 힘이다. 할머니와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10년에 이르는 기나긴 재판을 이어간다. ‘처벌이나 보상이 아닌 사죄를 원하던 할머니는 늘 전쟁을 하지 말라는 충고를 던진다. 제목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결과에 대한 송신도 할머니의 반응이다. 배우 문소리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그리고 싶은 것
(2013)

꽃 할머니라는 그림책이 있다. 작가 권윤덕이 위안부 피해자인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낸 책이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이 합작으로 제작한 책이다. 위안부라는 사안을 개인을 넘어 국가의 문제로 천착한 작가는 불행한 경험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여성의 희망찬 이야기를 담아달라는 일본 출판사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뜻을 굽히지 않은 채 책을 만들기 위한 방도를 모색한다.

<그리고 싶은 것>은 그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스스로도 성폭력 피해자였던 권윤덕 작가가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펜을 들고 참상을 그려내는 모습을 비출 때마다, 온 생애에 걸쳐 따라다니는 그 상처를 예술로 이겨내보고자 하는 작가의 안간힘이 떠오른다. 배우 김여진이 그림책 <꽃 할머니>를 구연하고,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음악을 만들었다.


소리굽쇠
(2014)

<낮은 목소리> 이후 한국에서 제작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대개 다큐멘터리였다. <소리굽쇠>는 극영화다. 다큐멘터리가 피해자 할머니들의 진술을 통해 그 역사를 기록해왔다면, <소리굽쇠>는 귀임 할머니(이옥희)와 손녀 향옥(조안) 두 세대의 여성이 경험한 처절한 사건을 보여준다. 향옥이 목을 매달려고 하고 할머니가 이를 말리려는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여는 영화는 꽤나 자극적인 설정으로 관객에게 심적인 인내를 요구한다.

이를 통해 <소리굽쇠>는 과거의 위안부 문제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문제와 연결해, 그 상처가 아직도 뼈저린 것임을 드러낸다. 배우와 스태프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져 어렵게 개봉했지만,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엔 할머니와 향옥의 사연이 소리굽쇠처럼 서로 공명하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평이 따랐다.


귀향
(2016)

위안부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 지 20년이 훌쩍 넘은 시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공유하고 있지만, 이를 다룬 영화가 많은 대중들을 만날 기회는 아직 요원했던 게 사실이다. 저예산과 비스타 배우진이라는 한계를 지닌 <귀향> 역시 손에 꼽을 만한 상영관에서 적은 관객을 만나는 걸로 그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75270명이 모금한 12억원으로 대규모 개봉에 성공했고, 설날 대목이 끝나 비교적 경쟁이 덜한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개봉 첫날 42.5%의 좌석점유율을 보인 <귀향>은 근 3주간 차트 상위권을 수성하면서 359만 명의 관객의 눈물과 역사적 자각을 이끌어냈다. 기적과도 같은 성적이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로 따자지면 다소 아쉬운 결과물이었지만, 대중들은 비판보다는 귀중한 목소리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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