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BBC>가 '역대 최고의 코미디영화' 리스트를 발표했다. 영미권은 물론 전세계 영화 전문가들에게 코미디영화 베스트 10편을 앙케이트 받아 득표순으로 총 100개 영화를 선정했다. '역대'가 기준인 만큼 우리에게 다소 낯선 1960년대 이전 영화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 봐도 재미 면에선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상위 20위권에 속한 영화들 가운데 에디터 취향대로 10편을 골라 간단한 소개를 덧붙였다. 우선 상위권에 랭크된 20개 영화 목록부터 보자.

20. 브레이징 새들스 Blazing Saddles, 1974
19. 레이디 이브 The Lady Eve, 1941
18. 셜록 주니어 Sherlock Jr., 1924
17. 아이 양육 Bringing Up Baby, 1938
16. 위대한 독재자 The Great Dictator, 1940
15. 몬티 파이튼의 성배 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 1975
14. 그의 연인 프라이데이 His Girl Friday, 1940
13. 사느냐 죽느냐 사느냐 죽느냐 To Be Or Not To Be, 1942
12.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1936
11. 위대한 레보스키 The Big Lebowski, 1998
10. 제너럴 The General, 1926
9.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 This Is Spinal Tap, 1984
8. 플레이타임 Playtime, 1967
7. 에어플레인 Airplane!, 1980
6.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Life Of Brian, 1979
5. 식은 죽 먹기 Duck Soup, 1933
4.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1993
3. 애니 홀 Annie Hall, 1977
2.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
1.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 1959




20위

불타는 안장
(Blazing Saddles, 1974)

<불타는 안장>은 흑인이 백인에게 부려지던 시대, 흑인 보안관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서부극이다. 백인이 이룩한 미국 신화를 그리는 서부극의 정체성을 비틀려는 의지가 확연하다. 백인 중심의 개척정신을 '수정'하겠다는 뜻을 넘어 '조롱'을 던지면서 관객에게 폭소를 선사했다. 멜 브룩스 감독은 흑인의 편에 더 큰 무게를 싣는 것이 결과적으로 흑과 백의 '화합'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방향이다. 마치 뮤지컬 영화처럼 4개의 주제가가 등장하는데, 멜 브룩스가 직접 쓴 "그는 우리의 밤을 낮으로 바꾸었다" 같은 가사는 웃음 그 이상의 쾌감을 준다. 

브레이징 새들스

감독 멜 브룩스

출연 클리본 리틀, 진 와일더

개봉 197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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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위

레이디 이브
(The Lady Eve , 1941)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다. 1930년대 신분 격차가 있는 남녀 주인공이 재치 있는 대사로 옥신각신하며 사랑과 갈등을 이어가는 게 특징이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가 무엇보다 중요해서 차진 대사를 지켜보는 것으로도 이야기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레이디 이브>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지만, 여타 작품들보다는 느긋하고 진지한 시선이 엿보인다. 여성 남성 가릴 것 없이 두 주인공이 팽팽히 긴장을 만드는 장르의 특징과 달리, <레이디 이브>는 둔하고 무력한 찰스를 남자주인공으로 설정해, 사기꾼과 사랑스러운 연인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는 바바라 스탠윅이 분한 진 해링턴에게 온전히 집중한다.

레이디 이브

감독 프레스톤 스터지스

출연 바바라 스탠윅, 헨리 폰다

개봉 194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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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위

셜록 2세
(Sherlock Jr., 1924)

찰리 채플린과 함께 무성영화 시절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부로 추앙 받았던 버스터 키튼의 대표작. 탐정이 되고 싶은 극장 영사기사 주인공이 연적이 뒤집어 씌운 누명을 쓰지만 별별 사건들 끝에 결국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을 45분 내내 경쾌한 리듬으로 담았다. 깜빡 잠든 주인공이 상영 중인 영화에 들어가면서 주인공 셜록 2세가 돼 한바탕 좌충우돌을 경험하는 전개가 극한의 재미를 선사한다. 대사 없이 인물의 (무)표정과 현란한 액션으로 관객의 흥분을 놓지 않는다. <셜록 2세>만큼 "영화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담는다"는 명제를 완벽하게 실천한 예가 또 있을까.

셜록 2세

감독 버스터 키튼

출연 버스터 키튼, 캐스린 맥과이어

개봉 192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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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위

몬티 파이튼과 성배
(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 1975)

영화사상 가장 정신나간 영화를 꼽는다면 그 주인공은 주저없이 <몬티 파이튼과 성배>가 되지 않을까. 영국의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튼과 애니메이터 출신의 테리 길리엄 감독이 의기투합해 예수의 생애와 성경 이야기를 패러디했다. 진지한 구석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을 겨를 없이,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형상인 건지 의아할 만큼의 맛간 설정들(예컨대 기사들이 말이랍시고 코코넛을 두드리면서 달그닥거린다)이 줄지어 나타난다. 그야말로 '병맛'의 연속인데, 자세히 뜯어보면 알알이 새겨져 있는 신랄한 풍자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무엇보다 미친 듯이 웃기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

감독 테리 길리엄, 테리 존스

출연 그레이엄 채프먼, 존 클리즈, 에릭 아이들, 테리 길리엄

개봉 1975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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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위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1936)

한국인에게 아주 친숙한, 위대한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공장에서 종일 나사못을 조이는 찰리가 정신병원에 갔다가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출소한 고아인 소녀를 도와주면서 행복으로 향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지금 봐도 획기적인 기계문명의 이미지 속 기계 부품으로 전락해버리는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저 유명한 시퀀스는 유머와 냉소를 동시에 선사한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채플린의 말처럼, 그의 영화는 늘 웃음과 슬픔을 함께 품고 있었다.

모던 타임즈

감독 찰리 채플린

출연 찰리 채플린, 파울레트 고다드

개봉 193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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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위대한 레보스키
(The Big Lebowski, 1998)

직업도 계획도 없이 사는 레보스키는 동네의 같은 이름의 부자로 오인돼 도둑의 침입을 받는다. 그로 인해 아끼던 카펫이 망가지자 그는 부자 레보스키를 찾아가고, 마침 사라진 그의 아내의 몸값을 대신 전달하는 임무를 맡는다. 두 갈래의 코엔 형제 영화가 있다. 진지하거나 우습거나. <위대한 레보스키>는 후자의 대표주자다. <파고>(1996) 직후에 연출한 이 영화는 황당무계한 애초의 설정을 고스란히 이어가 관객의 예상을 보기 좋게 배신하며 못 던진 볼링공마냥 아무렇게나 굴러간다. 제프 브리지스, 존 굿맨, 스티브 부세미, 줄리안 무어,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등 미국의 위대한 배우들이 분한 캐릭터는 아주 선명해서 그들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는 것으로도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위대한 레보스키

감독 조엘 코엔

출연 제프 브리지스, 존 굿맨, 줄리안 무어, 스티브 부세미, 피터 스토메어, 데이빗 허들레스톤

개봉 199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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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
(This Is Spinal Tap, 1984)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극영화 '모큐멘터리'의 시초다. 영화는 스파이널 탭이라는 영국 헤비메탈 밴드의 1982년 투어를 보여준다. 총 17장의 앨범을 발표한 밴드는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투어 여정에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얼뜨기 티를 벗지 못한 그들은 자의식 충만한 채로 음악에 대한 개똥철학을 늘어놓거나, 무대로 가다가 길을 잃고, 연주 중에 말 그대로 폭발해 사라진다. 시종일관 농담조가 끊이질 않는 가운데서도, 스파이널 탭의 행보를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그만 이들의 열정에 감동을 느껴버리고 만다. 앞으로도 이 작품보다 웃긴 록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지 의문.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

감독 로브 라이너

출연 로브 라이너, 마이클 맥킨, 크리스토퍼 게스트, 해리 쉬어러, 브루노 커비

개봉 198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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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

플레이타임
(Playtime, 1967)

자크 타티는 <윌로 씨의 휴가>(1953)와 <나의 아저씨>(1958)에 이어 허당의 왕 윌로 씨를 소환해 완벽하게 직조된 미래도시에 데려다 놓는다. 전작들처럼 윌로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의 현란함은 적지만, 숨막힐 듯 구성된 도시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모습은 150분간 웃음을 놓치지 않는다. 차분히 이어지는 소동들은 옛 삶의 방식과 현대문물의 충돌에 대한 직선적인 은유다. 영화에 새겨져 있는 모든 오브제들이 극상의 미감을 자랑한다. "무려 50년 전 영화임에도 여전히 세련됐다"는 말따위로는 부족한, 절대적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플레이타임

감독 자크 타티

출연 리타 메이든, 프랑스 럼밀리, 바바라 데넥

개봉 1967 프랑스,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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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식은 죽 먹기
(Duck Soup, 1933)

<식은 죽 먹기>의 주역 '막스 형제'는 한국 관객들에겐 다소 낯선 존재다. 네 명으로 이뤄진 그들은 19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가로 군림하며, 미국 코미디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이름으로 남아 있다. 재정 위기에 처한 프리도니아 정부는 어느 부자 과부의 조달 대가로 망나니 같은 파이어플라이(그루초 막스)를 집권자로 앉히려 한다. 그리고 이웃나라에서 프리도니아를 집어삼키기 위해 두 명의 스파이를 파견한다. 가상의 국가를 둘러싼 소동이 막 가는 언어유희와 철저하게 계산된 슬랩스틱 코미디로 점철돼 있다. 어처구니 없는 무리수들이 그루초를 비롯한 네 막스 형제의 화려한 언술과 액션으로써 당위를 얻는다.

식은 죽 먹기

감독 레오 맥커리

출연 그루초 막스, 하포 마스, 치코 마르크스, 제포 마르크스

개봉 193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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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 1959)

이변은 없었다. 할리우드 황금기의 스타 감독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가 1위를 차지했다. '역대 최고 코미디영화'를 뽑는 자리에서 늘 순위권을 지켰던 바 있다. '살인사건을 목격한 두 재즈 뮤지션이 범인에게 쫓기던 중 여장을 한 채 악단에 들어가 슈거(마릴린 먼로)와 사랑에 빠진다'는 시놉시스에서 유추할 수 있는 요소-여장남자, 음악, 그리고 마릴린 먼로-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코미디를 만들었다. 토니 커티스와 잭 레먼의 능수능란한 유머뿐만 아니라 능숙해 보이지 않아 더 시선을 끄는 마릴린 먼로의 퍼포먼스가 2시간을 빼곡 채운다. 오감만족.

뜨거운 것이 좋아

감독 빌리 와일더

출연 마릴린 먼로, 토니 커티스, 잭 레먼

개봉 195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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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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