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툼레이더>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의 변천사.

라라 크로프트는 가장 유명한 비디오 게임 속 여자 주인공이다.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사실이다. 위키피디아 한국판에 따르면 라라 크로프트는 2016년 6월 기준으로 각종 매거진 표지로 총 1100회 등장했다. 2년 전 통계이니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영국에서 탄생한 캐릭터 라라 크로프트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영국 더비라는 도시에는 라라 크로프트의 이름을 딴 도로도 있다. 영국의 사이버 홍보대사라고도 알려져 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 주연의 리부트 영화 <툼레이더>의 개봉에 맞춰 게임과 지난 영화 두 편의 라라 크로프트의 모습을 돌아봤다. 라라 크로프트의 변천사 혹은 연대기다.


1996년
<툼레이더 1> (1996)

<툼레이더 1> 당시로는 획기적인 그래픽
1990년대 중반은 3D 그래픽이 각광받던 시대였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로 입체화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다. 1995년 개봉한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열풍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영국의 아이도스 사는 3D 그래픽 관련 회사다. 비디오 압축 기술을 개발했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아이도스는 3D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기획했다. 문제는 컨텐츠였다. 기술력은 있지만 이야기를 만들 전문가가 없었다. 결국 아이도스는 코어디자인이라는 게임 개발사를 인수하고 <툼레이더>를 선보였다. 번역하면 ‘도굴꾼’이 되는 다소 거친 제목의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툼레이더>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아류작이라는 우려는 기우일 뿐이었다. 오히려 게임으로 제작된 <인디아나 존스>보다 더 인기를 얻었다. <툼레이더 1>의 라라 크로프트는 지금 보면 조악하기 이를데 없지만  1990년대 중반임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진보였다. 라라 크로프트의 상징과도 같은 탱크톱, 핫팬츠, 쌍권총은 1편부터 존재했다.

1997년
<툼레이더 2> (1997)

<툼레이더 2> 시리즈의 최고작
1편의 인기는 <툼레이더 2>에서 폭발했다. <툼레이더>의 팬들은 <툼레이더 2>를 시리즈의 최고작이라고 평가한다. 

1998년
<툼레이더 3> (1998)

<툼레이더 3> 극악의 난이도
<툼레이더 3>는 잘나가던 <툼레이더> 시리즈에 처음으로 제동을 건 게임이다. 그래픽 기술은 더욱 발전했지만 문제는 너무 어려운 게임의 난이도였다. 

1999년
시리즈 4편 <툼레이더: 마지막 계시록> (1999)

<툼레이더: 마지막 계시록> 매너리즘에 빠지다
<툼레이더: 마지막 계시록>은 시리즈의 4편째 작품이다. 시리즈가 더해감에 따라 제목에 번호를 붙이지 않고 부제를 달기 시작했다. 3편과 큰 차이를 주지 못한 4편 이후 <툼레이더>의 명성은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2000년
시리즈 5편 <툼레이더: 크로니클> (2000)

<툼레이더: 크로니클> 회상 속 라라
<툼레이더: 크로니클>은 4편에서 돌연 사망한 라라 크로프트의 주변 인물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스토리의 게임이다. 팬들은 라라의 죽음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고, 지지부진한 평가를 남겼다.

2001년
<툼레이더> (2001)

<툼레이더> 가장 성공한 게임 원작 영화
2001년 <툼레이더>가 개봉했다. 영화 <툼레이더>의 성공은 순전히 라라 크로프트의 캐릭터를 누가 연기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흥행작 <콘 에어>의 감독 사이먼 웨스트의 이름을 누가 기억할 것인가. 결과적으로 라라 크로프트에 낙점된 안젤리나 졸리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 게임 속 캐릭터 라라 크로프트가 안젤리나 졸리를 모델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좋았다. 안젤리나 졸리는 살아있는 라라 크로프트였다. 이후 발매된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는 분명 안젤리나 졸리의 영향을 받았을 거다.

이토록 완벽한 매칭이 또 있을까 싶지만 막상 게임의 팬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그들에게 안젤리나 졸리의 라라 크로프트는 <007> 시리즈의 본드걸처럼 섹스 어필을 하는 눈요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라라 크로프트는 그저 섹시한 여전사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흥행은 성공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툼레이더>는 비디오 게임 원작 영화 1위에 올라있다. 영화가 개봉한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고로 2편 <툼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는 6위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다. 게임 원작의 영화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평론가들은 악평을 쏟아냈다. 로튼토마토의 평론가들은 라라 크로프트에게 20%의 썩은 토마토를 안겼다. 참고로 <툼레이더>에서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

제임스 본드가 되기 전 다니엘 크레이그.
툼 레이더

감독 사이먼 웨스트

출연 안젤리나 졸리, 존 보이트, 노아 테일러, 이아인 글렌, 다니엘 크레이그

개봉 2001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상세보기
2003년
시리즈 6편 <툼레이더: 엔젤 오브 다크니스> (2003)

<툼레이더: 엔젤 오브 다크니스> 최악의 실패작
<툼레이더: 엔젤 오브 다크니스>는 실패작으로 평가받는다. 게임의 조작감도 이상했고 무엇보다 4편에서 사망한 라라 크로프트에 대한 설명이 5편에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부활시켜버렸다. 시리즈의 팬들이 분개할 만하다. <툼레이더: 엔젤 오브 다크니스>의 패착에는 영화 <툼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가 영향을 미쳤다. 영화의 개봉에 맞춰 신작을 개발하느라 시간이 부족했다.

<툼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

<툼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 그 상자 열지 말 걸
<툼레이더 2>는 나오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안젤리나 졸리가 입은 잠수복은 멋졌지만 스토리는 엉성하기만 했다. 게임 원작 영화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스피드>의 얀 드봉 감독이 너무 힘을 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화려한 액션만으로 관객을 자리에 붙들어두기는 힘든 법이다. 1편의 앙코르와트, 아이슬란드에 이어 등장한 그리스의 에게해, 중국의 만리장성, 아프리카 초원의 이국적 풍경도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툼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의 지지부진한 흥행 성적과 원작 게임의 실패가 더해져 이후 라라 크로프트를 극장에서 만나기까지는 무려 15년이 필요했다. 참고로 1편에 등장한 다니엘 크레이그처럼 2편에서는 <300> 이전의 제랄드 버틀러가 라라 크로프트의 옆에 있었다.

<300> 이전 제랄드 버틀러.
2006년
시리즈 7편 <툼 레이더: 레전드> (2006)

<툼레이더: 레전드> 부활의 시작
<툼레이더: 레전드>에서 라라 크로프트의 모습이 확 달라졌다. 게임의 조작성과 스토리도 탄탄해졌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 <툼레이더>를 기획한 아이도스 사가 지난 게임 타이틀의 실패에 따라 개발사를 바꿔버렸다. 크리스털 다이나믹스가 그들의 새로운 파트너였다. 기존 개발사였던 코어디자인의 핵심 인력이 점점 더 섹시 여전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캐릭터가 되어가는 라라 크로프트와 경영진에 불만을 품고 크리스털 다이나믹스로 이직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2007년
시리즈 8편 <툼레이더: 애니버서리> (2007)

<툼레이더: 애니버서리> 원작에 충실한 리메이크작
<툼레이더: 애니버서리>는 <툼레이더> 탄생 10주년을 기념해 1편을 리메이크한 게임이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년
시리즈 9편 <툼레이더: 언더월드> (2008)

<툼레이더: 언더월드> 대중성과 만나다
<툼레이더: 언더월드>는 시리즈 중 가장 쉬운 난이도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오래된 팬들이 아닌 새로운 게임 유저를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반면 <툼레이더: 언더월드>는 곤란을 겪기도 했다. 게임 유저가 라라 크로프트의 누드를 볼 수 있는 패치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대중성을 키우고 다소 황당한 화제를 모았지만 게임 자체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마침 미국에 불어닥친 금융 위기와 맞물리면서 결국 아이도스 사는 재정난에 시달리다 일본의 스퀘어에닉스에 인수됐다.

2013년
리부트 <툼레이더> (2013)

<툼레이더> 리부트의 시작
2013년 게임 <툼레이더>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라라 크로프트의 모습도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녀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핫팬츠가 사라졌다. 그녀는 더이상 ‘섹시 여전사’가 아니었다. 이런 변화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 리아나 프래쳇의 영향이었다. 그녀는 게임 업계의 여성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라라 크로프트가 탐험가, 도굴꾼에 걸맞는 적절한 의상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게임에 반영했다. <툼레이더> 리부트에서 확 달라진 라라 크로프트는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닥터 조 윌슨 역으로 유명한 영국 배우 카밀라 러딩턴의 연기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할리우드의 모션캡처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를 연기한 영국 배우 카밀라 러딩턴.
2015년
리부트 2편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 (2015)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의 완벽한 부활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는 <툼레이더>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실사로 착각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그래픽과 액션, 퍼즐, 탐험 등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재미가 골고루 녹아든 작품이다.

2018년
알리시아 비칸데르(왼쪽)와 안젤리나 졸리.

라라 크로프트는 영원히 안젤리나 졸리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라 크로프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동의어라고 해도 반론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리부트 영화 <툼레이더>의 제작을 발표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라라 크로프트 역을 맡았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어색해한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잠깐,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라라 크로프트는 2013년 리부트된 게임을 원작으로 제작하는 영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핫팬츠의 라라 크로프트가 아니라는 말이다.

알리사아 비칸데르(왼쪽)가 연기란한 라라 크로프트와 리부트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

그러니까 리부트 게임의 라라 크로프트와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비주얼로 봤을 때 크게 이질감이 없어 보인다. 리부트 이전과 이후 라라 크로프트는 많이 다르다. 안젤리나 졸리와 알리시아 비칸데르만큼 다르다. 리부트 게임의 성공에 힘업어 영화도 리부트됐다. 예상하긴 어렵지만,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라라 크로프트를 더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툼레이더

감독 로아 우다우그

출연 알리시아 비칸데르

개봉 201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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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