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그 아파트가 가장 두려운 장소가 되면 어떻게 될까? 나를 보호해야 할 집이 가장 위협적인 공간이 된다면 도망갈 곳은 사라지고 만다. 퇴근 후, 편안했던 집이 유독 조용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어딘가 불길하고 음습한 기분이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얼른 나와!”라며 허세를 부리며 집안으로 들어가지만 한번 스며든 불안함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이렇게 일상의 공포를 파고드는 한국형 아파트 스릴러 6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 해당 영화들에 대한 내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파트 스릴러의 대표작 <숨바꼭질>은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믿는 집에 대한 관념을 전복한 영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언가 위협을 느낄 때, 집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 집이 가장 위험하다면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 <숨바꼭질>은 2009년 말, 서울 관악구를 시발점으로 퍼진 초인종 괴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초인종 밑에 □1○1△2 같은 수상한 표식이 동시다발적으로 속출해 시민들은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영화는 피부로 느끼는 공포에 주목하며 남의 집에 숨어 사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풀어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전 욕구가 있다. 자신의 집에 숨어든 자를 찾아내려는 성수(손현주)와 그 집에 숨어드려는 존재는 대립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원하는 건 동일하다. 성수는 이전처럼 깨끗하고 안전한 집을 되찾고자 하고, 숨어든 이 역시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집을 갈망한다. 영화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안전에 대한 욕구를 자극해 서스펜스를 만들어 낸다. 한국에 있는 수많은 집들 중 내 몸 하나 뿌리 내릴 공간이 없다는 불안과 절망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두려움이다.
-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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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허정
출연 손현주, 문정희, 전미선
개봉 2013 대한민국
아파트는 많은 이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지만, 당장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잠깐 눈인사를 하는 그 이웃 사람이 사실은 살인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아파트의 단절된 벽은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열흘 간격으로 발생하는 연쇄살인사건으로 인해 강산맨션 거주민들은 두려움에 떤다. 영화는 처음부터 범인을 밝히고 시작한다. 영화 속 인물은 모두 류승혁(김성균)을 범인으로 의심하고 있다. 관객의 눈에는 범인 한 명과 다수의 대결구도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상황을 1 대 1로 인식하고 있다.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연대를 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살인마도 소녀도 죽은 소녀의 엄마도 경비원도 모두 이웃사람이지만 서로는 서로를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내 옆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것임과 동시에 불안한 요소다. <이웃사람>은 뉴스 속 살인마도 어딘가에 살고 있고 그 곳이 내 옆집일 수도 있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이웃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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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휘
출연 김윤진, 마동석, 천호진, 김성균, 김새론, 임하룡, 장영남, 도지한
개봉 2012 대한민국
‘나는 살인을 봤고, 살인자는 나를 봤다’는 가정으로 시작하는 영화 <목격자>는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과 눈이 마주친 목격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성민은 영화에서 살인을 봤지만, 자신과 가족을 위해 못 본 척 해야 하는 주인공 상훈 역을 맡았다. “살인을 봤다면 신고할 거야?”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답하던 상훈은 막상 사건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자 방관하려 한다. <목격자>는 일상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을 서늘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관객들에게 현실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일반적인 스릴러는 집 안 혹은 으슥한 길거리를 배경으로 하지만 <목격자>는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이기적이지만 현실적이다. 주인공 상훈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이다. 정의감은 있지만 지켜야 할 가정이 우선이다. 살인을 목격했지만 범인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불안감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인해 그는 쉽게 입을 열 수 없다. 결국 목격자는 방관자가 되고 만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신기하게도 조용하다. 영화는 아파트의 고요한 평화가 비명 소리를 소음으로 치부하는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말하며 일상에 공포를 비집어 넣는다.

-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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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규장
출연 이성민, 김상호, 진경, 곽시양
개봉 2017 대한민국
고 장진영과 김명민의 깊은 내면 연기가 돋보이는 <소름>은 다른 공포영화와 결을 달리한다. 공포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 속 인물들은 504호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며 귀신이 끊임없이 언급되지만 실체는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우는 건 서정적 스릴러라는 말이 잘 어울릴 만큼 고요하고 암울함이다. 영화는 택시기사 용현(김명민)과 아이를 잃어버리고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여자 선영(장진영)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선영은 남편을 살해한 뒤 용현에게 도움을 청한다. 용현은 선영을 도와 시체를 매장하고 둘은 잠자리까지 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두 사람은 가까워진 거리만큼 천천히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소름>은 윤종찬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짙게 들어간 작품이다. 그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아내를 잃는 비극을 경험했는데, 그때 “내가 이 순간 여기에 있는 것이 과연 운명일까, 아니면 아무런 의미 없이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세상에 그저 던져진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모티프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그는 “인간의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삶에 대해 논하고 싶어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더불어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질 때 그는 “아내와 함께 남일처럼 바라봤지만 사실은 언제든 재앙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언급했다.
<소름>의 허물어져가는 아파트는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잡아준다. 영화의 배경이 된 금화아파트는 서대문구의 경기대학교 뒤편에 있는 것인데, 1971년 완공돼 한때는 빈민촌을 밀어 내고 지은 고급 아파트였다.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았으나 현재는 철거하고 재개발을 한 곳이다. 마치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은 유기된 인간, 용현과 선영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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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종찬
출연 김명민, 장진영
개봉 2001 대한민국
밤 9시 56분이 되면 건너편 아파트 불이 동시에 꺼진다. 주인공 세진(고소영)은 주민들이 의문의 죽음과 이 현상이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주민들에게 이를 알리지만 오히려 범인으로 몰리고 만다. <아파트>는 강풀의 웹툰 <아파트>를 원작으로 한 공포영화다. <폰>(2002), <분신사바>(2004)를 통해 공포영화로 이름을 알린 안병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원작에서 주인공은 남성이지만 영화에서는 고소영으로 교체해 스타마케팅을 노렸다.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지만 관객수 64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안병기 감독은 시사회가 끝난 후 “(공포영화 연출을) 4편째 하다 보니 어떤 공포 상황이든 한 번씩은 해봤던 게 현장에서 연출됐다. 새로운 공포를 하고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적인 면에서 그렇게 되지 못했다”며 <아파트>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아파트>는 초반부터 삐걱댔다. 이 영화는 실제 경기도에 있는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공포영화의 배경으로 쓰이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던 주민들이 상영금지를 요구한 바 있다. 결국 주장은 기각됐지만 실제 배경에서 공포영화 촬영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알려준 사건이다. 참고로 <목격자>의 경우에는 각각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 것을 한 장소처럼 보이게 편집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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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안병기
출연 고소영, 강성진, 장희진
개봉 2006 대한민국
<어느날 갑자기 두번째 이야기 - 네번째 층>(이하 <네번째 층>)은 아파트가 아닌 오피스텔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원래 영화의 배경은 아파트였으나 장소 섭외에 어려움이 있었고, <아파트>가 같은 해 7월에 개봉했기 때문에 배경을 오피스텔로 바꿨다고 한다. 감독은 오피스텔이라는 배경에 대해 “잠시 머물러가는 자리이자 아파트와는 달리 이웃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공간”이라고 설명하며 “자신들이 사는 공간이나 터에 대해 집착하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를 오피스텔에 결합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공포영화로 바꿔 이야기한다. 싱글맘, 홀로 남겨진 아이, 새집 증후군, 층간소음, 재개발을 위한 철거 문제 등 관객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문제들을 악몽처럼 보여주며 관객들을 겁먹게 한다. 저예산에 단기간 촬영한 영화지만 김서형과 김유정의 열연으로 영화는 흡입력을 얻었다. 특히 당시 일곱 살이던 김유정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소름 돋는 연기를 펼쳤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엽다가도 어색함 없이 순식간에 뒤틀린 모습을 보여준다.

- 어느날 갑자기 두번째 이야기 - 네번째 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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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권호영
출연 김서형, 김유정
개봉 2006 대한민국
씨네플레이 김명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