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한 지 25년, 여전히 ‘대한민국 미남 배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우성이 영화 <증인>으로 돌아왔다. <증인>에서 처음으로 변호사 연기를 맡은 정우성. 지난 20여 편의 출연작에서 그는 어떤 직업을 맡았을까. 정우성의 직업 연대기를 엮어봤다.
따라하면 안 돼요 범죄자 직업군
<본 투 킬> 길 - 킬러
1994년 <구미호>로 데뷔한 정우성의 두 번째 영화. 그가 맡은 길은 고아로 어릴 적부터 킬러로 길러졌다. 어느 날 근처 아파트에 사는 호스테스 수하(심은하)와 사랑에 빠진다. 길거리 인생인 킬러와 호스테스의 로맨스, 조직의 추격, 극한으로 치닫는 유혈 낭자의 장면들. 90년대를 흔든 홍콩 느아르 계열의 아류작이지만, 정우성과 심은하라는 두 스타의 리즈 시절만큼은 진품이다.
<비트> 민 - 깡패
정우성의 출세작이자 불세출의 청춘 영화. 민은 싸움꾼이지만, 로미(고소영)를 만나 개과천선하고자 분식집을 연다. 하지만 철거반과 싸우다 감옥에 가고, 돌아갈 곳이 없어 다시 뒷골목에 발을 들인다. 착하게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민이 정우성의 얼굴을 통해 그려질 때, 누가 봐도 나쁜 놈이지만 일말의 연민이 생길 것이다. 민의 매력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흔들었는데, 정우성 때문에 오토바이를 배웠다는 남자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데이지> 박의 - 킬러
박의는 화가 혜영(전지현)에게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킬러라는 자신의 직업 때문에 혜영 앞에 나서지 못하는 순정파. 네덜란드의 이국적인 배경에 정우성이 사랑에 고뇌하고 있다…. 로맨스 영화로는 치트키 사용이 아닌가? 어쩌면 박의를 첫눈에 반하게 하는 전지현이 치트키인 것 같기도 하고.
<감시자들> 제임스(‘그림자’) - 범죄조직 리더
범죄 의뢰를 받으면 계획을 짜고 지휘하는 조직의 리더. 나쁜 놈이어도 보통 선량한 면이 있는 정우성의 캐릭터 중 진짜 악역에 걸맞은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그의 생애 첫 악역. 부하를 지휘하는 리더십, 일당백도 가능할 것 같은 싸움 실력, 완전 범죄를 설계하는 두뇌까지. 넘사벽 능력에 외모까지 갖췄는데, 좀만 더 착하게 살면 탄탄대로가 아니었을까.
몸으로 때운다 육체파 직업군
<태양은 없다>도철-권투선수
한때 잘 나갔던, 그러나 지금은 후배에게도 퇴물 취급받는 권투선수 도철. 복싱계를 떠나 흥신소의 해결사가 된다. 하필 그곳에서 만난 게 사기꾼 홍기(이정재). 도철은 홍기와 함께 온갖 사고에 휘말린다. 영화는 안 봤어도 이 영화 포스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전설의 영화 <태양은 없다>. 특히 정우성이 입은 하와이안 티셔츠는 캐릭터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치이자 정우성의 ‘옷걸이’ 파워를 느낄 수 있다.
이 영화 최고 수확은 이정재, 정우성이란 절친듀오의 탄생.
<무사> 여솔 - 호위무사
극 중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는 이지헌(송재호)의 호위 무사. 호위 무사라는 직책처럼 무술 실력이 상당해 적 장수마저 그의 실력을 탐할 정도. 액션 소화력이 끝내주기로 소문난 정우성이 정통 사극에서도 보기 힘든 창술을 유려하게 소화한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생머리 장발도 정우성에게는 엘라스틴급으로 찬란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놈> 박도원 - 현상금 사냥꾼
만주의 현상금 사냥꾼. 박창이(이병헌), 윤태구(송강호)에 비해 과거사가 잘 드러나지 않아 캐릭터성이 옅었지만, 정우성의 비주얼과 스턴트로 삼인방 중 최고의 멋을 자랑한다. 다른 캐릭터보다 정통 웨스턴에 가까운 스타일은 정우성에게 한층 더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안겨준다.
정우성 본인도 <놈놈놈>의 액션은 “목숨 걸고 한 것”이라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최철수 - 목수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한 마디에 혹하지 말자. 최철수의 진짜 매력은 유능한 실력파 목수라는 사실. 거기에 공사장에서 못 하는 게 없는 능력자다. 때문에 그의 거뭇거뭇한 수염과 수더분한 머리도 뭇 여성들의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터프한 상남자 같지만 사랑만큼은 직진하고 결코 돌아보지 않는 순정남이란 사실.
월급 중 녹봉이 최고지요 공직자 직업군
<유령> 이찬석(431) - 해군 장교
훈련 도중 상관 살해로 체포된 이찬석. 그는 사형을 선도받지만, 죽음 대신 핵잠수함 탑승을 명받는다. 하지만 핵잠수함 ‘유령’은 함장(윤주상)과 부함장 202(최민수)의 대립으로 긴장감이 흐른다. 한국 영화에서 군대 영화는 많지만 해군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영화는 별로 없다. 배우들에게 <유령>은 특별한 경험을 안겨준 행운이었을 터. 특히 반항아 이미지가 강한 최민수와 정우성이 대립하는 장면들은 영화 전체의 거친 톤을 유지해준다.
<새드무비> 이진우 - 소방관
옴니버스 영화 <새드무비>에서 정우성이 맡은 역은 소방관 이진우. 여자친구 안수정(임수정)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정우성은 스틸컷으로 배역을 위해 소방 훈련을 받았음을 인증했다. 다른 사람을 구조하는 활동을 하면서도 자신의 여자친구를 챙기는 데 서툰 이진우는 그간 로맨스 영화 속 정우성의 달달한 이미지와는 닮은 듯 사뭇 다른 모습이다.
소방 훈련을 받는 정우성의 모습.
<강철비> 엄철우 - 북한 요원
엄철우는 쿠데타로 난장판이 된 북한에서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 온다. 같은 이름을 가진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를 만나 전쟁을 막고 북한에 복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강철비>는 정우성이 북한 요원 역을 맡으며 ’영화 속 북한군은 늘 잘생겼다’는 항간의 농담에 정점을 찍었다. 모든 걸 시종일관 경계하다가 곽철우와 점점 정을 쌓으며 풀어지는 모습은 두 배우의 현실 케미를 보는 듯 생생하다.
녹봉에다 다른 것도 받아요 공직자 겸 나쁜놈 직업
<아수라> 한도경 - 형사
한도경은 형사다. 몹시 부-패한 형사. 그는 박성배(황정민) 시장의 도움으로 아내의 병원비를 내고 있어서, 그를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그의 약점을 잡고 접근해온다. 뭘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악의 굴레에 선 한도경은 신경질적인 시한폭탄이다. 정우성은 그곳에 던져진 한도경을 온몸으로 표현하는데, <비트> 등 젊은 시절의 반항아와는 다른 더티 섹시를 엿볼 수 있다.
<더 킹> 한강식 - 검사
검찰을 꽉 잡고 있는 엘리트 부장 검사. 상류층이 모인 파티에서도 그가 들어서면,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신임 검사 태수(조인성)는 그 앞에서 표정 한 번 찌푸렸다가 일장 연설을 듣고 만다. “자존심이나 정의, 촌스럽게 그딴 것 좀 버리자”라는 대사처럼 부당한 술수를 쓰고 축하 파티에서 춤추는 허당 같은 모습은, 평소 자화자찬 개그로 친근함을 자아내는 정우성의 안티테제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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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 장진태 - 특기대 훈련대장
수도경비 특수기동대, 일명 ‘특기대’의 간부로 어마어마한 실력자. 극 중 주인공 임중경(강동원)을 제압하는 장면도 나온다. 오랜 군 생활의 성과인지, 처세술도 뛰어나 공안부를 끊임없이 견제하면서 특기대의 입지를 다지는 플랜도 세운다. 임중경과 이윤희(한효주)가 이야기의 중심임에도 정우성의 장진태가 보여주는 액션은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명장면 중 하나.
두뇌까지 잘생겼나 두뇌파 직업군
<신의 한 수> 태석 - 바둑기사
<신의 한 수>에서 정우성은 바둑기사로 출연한다. 프로 바둑기사였으나 내기 바둑에 손댔다가 끝도 없이 추락한 태석 역이다. 작중 다루는 바둑이 정통바둑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로였던 기사라면 응당 빼어난 두뇌플레이를 펼쳐보였을 터. 아쉽게도 관객에겐 바둑보다 피비린내나는 액션이 남았지만, 바둑기사라는 직업은 정우성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독특한 직업 중 하나다.
<마담 뺑덕> 심학규 - 교수
<마담 뺑덕>의 심학규는 교수였으나 오해 속에 휴직 중인 문학강사다. 문학 강사로 지방에 내려온 어느 날, 매표소 직원인 덕이(이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학규는 교수 복직이 확정되자 덕이를 버리고 서울로 간다. 정우성의 우아한 이미지가 교수라는 지식층을 설득시키면서 동시에 이런 사람도 욕망의 노예임을 조롱하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