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맞아 영화 속 선생님 캐릭터를 모았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하는 노랫말을 기꺼이 바치고 싶은 분이 있는가 하면, '님'이라 부르기도 아까운 족속도 있다. 

키팅
<죽은 시인의 사회>

창립된 지 100년을 훌쩍 넘긴 모교 월튼 아카데미로 부임한 키팅(로빈 윌리엄스). 영문학 교사인 그는 첫 수업부터 이론 부분을 찢어버리고, "현재를 즐겨라"(Carpe diem)라며 공부보단 삶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보수적인 학교에서 보기에 파격일 수밖에 없는 그의 교육법은 끝내 벽에 부딪히고 만다. 아이들은 키팅을 "캡틴"이라 부른다.


<굿 윌 헌팅>

윌(맷 데이먼)은 천재적인 지능을 갖고 있지만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채 MIT 청소부로 살아간다.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하고, 그래서 늘 날이 서 있다. 심리학 교수 숀은 그런 윌에게 따끔하게 충고하면서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다독인다. 그 말을 몇 번이나 밀어내도, 보다 더 따뜻한 음성으로"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로빈 윌리엄스이기에 더 힘있게 와닿는 위로일지도.

윌킨슨
<빌리 엘리어트>

발레를 하고 싶은 빌리(제이미 벨) 앞을 가로막는 벽은 "발레는 여자만 하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아버지다.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윌킨슨(줄리 워터스)은 빌리에게 발레의 기술을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그 벽을 딛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할 수 있게끔 발벗고 나선다. 어린 시절 빌리의 곁을 떠난 어머니가 남긴 "너 자신이 되어라" 라는 메시지를 이룰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또 다른 어머니 같은 존재다.

플렛처
<위플래쉬>

플렛처(J.K. 시몬스)는 무능을 참지 않는다. 그가 발탁해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온 앤드류(마일스 텔러)는 불과 몇 분만에 단원에게 폭언을 퍼붓는 걸 목격한다. 온갖 차별적인 표현을 끌어와 모욕하는 건 차라리 예삿일, 폭행을 가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그의 폭압적인 태도가 과연 다 제자 잘돼라고 하는 뜻일까? 글쎄. 플렛처는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두고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걸 빌미 삼아 제자의 커리어를 완전히 끝내고자 기행을 저질러버리는 인간밖에 되지 않는다.

듀이
<스쿨 오브 락>

허구헌 날 오버스러운 쇼맨십으로 무대를 망치고 마는 듀이(잭 블랙)는 얹혀 사는 친구에게 들어온 사립학교 임시교사 직을 가로챈다. 락에 살고 락에 죽는 그는 고매하게 클래식을 가르쳐야 하는 자리에서 장르의 역사, 무대에서 폼 잡는 법 등 락에 대한 강의를 시작한다. 아이들의 장점을 기가 막히게 잡아낼 줄 알아서 꽤 능숙하게 밴드를 이끌며 각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기만으로 선생이 된 듀이가 특별한 반성 없이 오로지 제 뜻을 채우기 위해 달려가는데, 결과는 한없이 유쾌하다.

봉두
<선생 김봉두>

봉두(차승원)는 이름처럼 '봉투'를 밝힌다. 서울 학교에서 촌지를 챙기며 차별대우를 일삼다가 강원도 산골 분교로 좌천된다. 전교생은 딸랑 다섯. 정작 이 작은 학교에서 무언가 배우는 사람은 아이들이 아닌 봉두다. '독수리 5형제'와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는 사이,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눈감았던 가치를 깨닫는다.

루앤
<위험한 아이들>

해병대를 전역하고 영어교사로 전업하려는 루앤(미셸 파이퍼)은 교내 문제아들이 모인 학급을 담당한다. 뻗대기만 하는 아이들에게 군인 출신의 카리스마를 내세워 다가간 후, 밥 딜런의 노랫말과 딜런 토마스의 시를 가르친다. 미국 사회 주변부에 자란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루앤에게 마음을 연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환경에 굴복하지 않는 미셸 파이어의 곧은 자세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어도 여림을 감출 수 없는 학생들의 맑은 얼굴을 끄집어낸다.

사하이
<블랙>

2살 때부터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된 미셸(라니 무케르지)에게 세상은 그저 'BLACK'이다. 사하이(아미타브 밧찬)는 미셸에게 어둠을 빛으로, 침묵을 소리로 이끄는 법을 가르친다. '불가능'을 제외한 세상 그 어떤 단어도 미셸에게 가르치고 싶은 그는 몸이 점점 말을 듣지 않자 그녀 곁을 떠난다. 사하이로부터 얻은 희망을 쥐고 빛을 되찾은 미셸은, 망가진 육체와 사라진 기억으로 '블랙'의 세상을 살고 있는 선생님에게 처음 자신이 배운 단어 '물'을 보답한다.

들로리스
<시스터 액트 2>

몸을 피한 수녀원에서 성가대를 이끌며 갱생하게 된 들로리스(우피 골드버그)는 선생님이 되어 문제아들을 가르친다.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까진 자신도 방탕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산 사람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려 아이들에게 노래와 종교의 힘을 전한다. 주인공 들로리스의 매력보다는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 무게가 실려 속편이 더 좋다는 호평을 받았다.

윌리엄 포레스터
<파인딩 포레스터>

전설적인 데뷔작을 발표한 후 40년간 두문불출 하는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숀 코너리). 그저 창문을 통해 내다볼 뿐 바깥에 나오지 않던 그는, 농구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지만 사실 문학에 뜻이 더 큰 흑인 소년 자말(롭 브라운)의 습작노트에 빼곡히 코멘트를 덧붙여 먼저 마음을 연다. 나이도 인종도 전혀 다른 자말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윌리엄 역시 다시금 세상을 매만진다.

이규호
<땐뽀걸즈>

거제여상에서 체육을 담당하는 이규호 선생님은 '땐뽀'반을 이끈다. 졸업하면 평생 보고 자란 조선소로 취업을 준비하는 게 수순인 아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비도 주고, 흰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을 위해 매직으로 까맣게 칠하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일일이 챙긴다. 저마다 다른 고민을 안고 어른이 되는 아이들에게 그나마 다른 추억을 안겨주는 게 낙인 선생님. 그 어떤 거창한 이야기 속 선생님보다 고마운 분이다.

존 킴블
<유치원에 간 사나이>

유치원에 파견된 강력계 형사 존(아놀드 슈왈제네거)은 동료가 병이 나는 바람에 교사 역을 떠맡게 된다. 처음엔 윽박이나 지를 줄 알던 그는 경찰학교 커리큘럼에서 착안한 지도법으로 아이들은 물론 학교 관계자에게 신뢰를 얻는다. <유치원에 간 사나이>는 액션 스타의 매력을 발산한 <토탈 리콜>과 <터미네이터 2> 사이에 놓인 작품이다. 액션은 물론 코미디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하던 슈왈제네거의 역량이 빛을 발한다.


<하프 넬슨>

댄(라이언 고슬링)은 교육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그의 멘탈은 교육에 대한 의지보단 건강하지 못하다. 수업 때만큼은 열과 성의를 다하지만, 코카인에 중독돼 점점 망가져간다. 역경은 13살 흑인 소녀 드레이(샤키라 엡스)에게 비밀을 들이키면서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세상을 바꾸겠다면서 스스로의 삶은 고치지 못한다. 영화는 꽤 오랫동안 그들을 둘러싼 갈등을 좀체 거두지 않으면서, 담담하지만 단단하게 현실의 벽을 세운다.

오판수
<싸움의 기술>

1년 사이이 개봉된 세 영화 <싸움의 기술>, <천하장사 마돈나>, <타짜>의 연결고리. 매사에 설렁설렁 여유로워 보이지만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고수를 백윤식이 연기한다는 점이다. 멕시코의 푸른 바다로 떠날 날만을 기다리며 유유자적 살아가는 오판수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병태(재희)에게 싸움의 기술을 전수한다. 얼핏 고등학생 병태를 등처먹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속없어 뵈는데, 요령만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가르침을 던져줘 주인공을 각성케 하고 직접 부조리에 뛰어들기까지 한다.  

페이 메이
<킬 빌 2>

무적처럼 보이던 베아트릭스(우마 써먼)는 버드(마이클 매드슨)에게 잡혀 땅 속에 묻혀, 페이 메이(유가휘)에게 극한의 수련을 받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송판을 하도 쳐서 젓가락질을 못하는 와중에도 개처럼 밥을 먹어선 안 된다며 곧은 태도를 강조하는 페이 메이의 하드 트레이닝은 결국 베아트릭스에게 탈출과 복수의 환희를 선사한다. <킬 빌>이 '무협'영화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다.

수학 선생님
<스윙걸즈>

푹푹 찌는 여름방학, 얼결에 밴드부 땜빵을 서게 된 아이들은 음악의 맛을 알게 된다. 수학 선생님(다케나카 나오토)은 악기 연주에 열을 올리는 걸 보고 보충 수업에 빠지려고 저런다고 궁시렁댄다. 사실 열혈 재즈 마니아라 재즈를 망치는 꼴을 참을 수가 없었던 그는 몰래 아이들의 연주를 훔쳐보다가 '덕질'을 발각당해 재즈 선생 노릇까지 하게 된다. 희귀음반을 방 한가득 갖고 있어도 색소폰 소리 한번 제대로 낼 줄 모르는 선생의 지도 하에 아이들의 연주력은 쑥쑥 자란다.

기타노
<배틀 로얄>

수업을 거부 당하고, 학생에게 칼을 맞던 기타노(기타노 타케시)는 2년 후 '배틀 로얄'의 진행자로 돌아온다. 딴짓 하면 이마로 칼을 던지고, 저항하면 목에 걸린 폭파장치를 작동시키는 데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냉혈한은 "이 나라는 맛이 간 건 너희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과거의 제자들이 서로를 죽여 살아남는 게임에 처넣는다. <배틀 로얄>의 기타노(기타노 타케시)가 상징하는 바는 명징하다. 망가진 세상을 아이들에게 떠넘기는 실패한 아버지다. 학생들이 서로를 잔인하게 죽일수록 어른이 풍기는 악취는 더욱 심해진다.

유봉
<서편제>

명창이 되지 못했다는 자괴를 외면하기 위해, 유봉(김명곤)은 소리를 가르치는 자식들을 혹사시켜가며 예술혼을 불태운다. 떠돌이 생활을 전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딸 송화(오정해)에게 한을 심어준다며 약을 먹여 눈을 멀게 한다. 자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사실 피도 섞이지 않은)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기는 선생 혹은 아버지의 추악한 초상이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