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한 <씨네플레이> 기자
감출 수 없는 것과 이룰 수 없는 꿈
★★★★☆
감출 수 없는 가난의 흔적은 숨겨지지 않는 체취로 남아있다. 반지하에 걸쳐진 삶은 지상을 향하는 욕망과 지하로 추락하는 공포가 공존한다. 내 손에 쥔 행복을 나눌 수 없기에 서로의 간극은 더 넓혀질 뿐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어떤 호러보다 처절한 두려움을 선사한다. 인물들의 연기는 빈틈 하나 없이 모든 장면에 꽉 채워 들어앉았고, 예상할 수 없는 전개에 넋을 놓고 따라가다가도 송곳 같은 유머를 만나 키득거린다. 감춰진 상징과 의미를 모두 덜어내더라도 영화가 선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동시대를 살고 있어 만난 행운 같은 영화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봉준호의 새로운 걸작
★★★★☆
우리의 마음에는 무엇이 기생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무계획이 계획’인 삶으로 몰아넣는가. 그 탐구를 위해 감독의 시선은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간다. 기막힌 박자감과 유머가 뒤섞인 한바탕 난장처럼 보이지만, 뜯어볼수록 미술과 음악을 포함해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더없이 정교하다. 더욱 중요한 건 극장 밖을 나서는 순간 관객들에게 이어지는 실감이다.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의 반지하들, 흔한 지하철 속 풍경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과는 조금 달라진다. 스스로는 잘 느껴지지 않던 나의 냄새를 맡아본다. 마음에는 무거운 돌덩이가 착 달라붙는다. 이 슬픈 실감이야말로 <기생충>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일 것이다. 감독의 상상력을 완벽한 실재로 구현해낸 배우들의 연기는 감탄 그 이상을 부른다. 납득되기 어려운 무언가를 배우들의 연기로 넘어서게 만드는 지점들이 있다. 송강호라는 믿음직한 코어를 중심으로 모든 배우들이 저마다 완벽에 가까운 음을 쌓아올린다. 특히 조여정과 이정은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싶다. 결코 쉽지 않은 역할을 경이로운 내공으로 소화한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블랙 코미디로 그린 계급사회의 지형도
★★★★☆
봉준호 감독은 꼬리 칸 승객들은(<설국열차>) 앞 칸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이라도 칠 수 있었지만 그럴 수도 없거니와 그럴 의지마저 박탈당한 현시대의 공기를 <기생충>에 담아냈다. 고지대와 저지대, 지상과 지하 등 공간의 낙차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계급성을 부각시키고, 각종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가 된다. 서로 다른 계급의 가족들이 부딪쳐서 생겨나는 불협화음에 키득키득 웃다 보면 어느새 입안에 쓴맛이 가득 고인다.
이화정 <씨네21> 기자
더 넓게, 더 깊게. 확장의 시력으로 현 사회 계급을 탐색하는 봉테일적 시각
★★★★☆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수평과 수직 가로지르기다. 신자본주의 사회 이분법적인 빈부의 세계를, 이렇게 나눠진 구조 안에서 하층민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바닥을 치고 올라가고자 했던 한 평범한 가족의, 바닥을 친 모멸감이 뚫고 올라와 일으킨 비극. 전원 백수, 반지하에 사는 한 가족이 지금의 ‘하녀’, ‘을’의 입장에서 꿈꾼 잠깐의 설렘이 1960~70년대 김기영의 <하녀>가 이루고자 했다 실패한 소박한 신분 상승의 욕망과 오롯이 겹쳐진다. 이 사건을 결과만 놓고 보면 어떻게 이들의 행동을 납득시키고 설명하지 하는 그런 식의 이야기를 보았다. 그 누구의 악의도 없이 일어난, 건널 수 없는 이 사회의 모난 형태. 웃기다가 슬프고 거기 더해 씁쓸함이 입안에 남아 감돈다. 봉준호의 최고작인가를 떠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그간 고민하고 성취해 온 지점을 파고파고 확장시키고, 또 이어붙여 만든 잘 정련된 최상의 포트폴리오임에는 틀림없다. 남김없이 끝까지 간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다 떠나서 일단, 재밌다
★★★★☆
장르영화의 최전선에서, 장르의 규칙은 조금씩 비틀며, 기존 장르영화와는 결이 다른 장르물을 그려 온 ‘봉준호리즘’의 확장판.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을 능구렁이처럼 혼합한 손맛이 찰지다. 김기영 감독 <하녀>의 세계관을 <설국열차>에 태워 <마더>의 잔혹성에 잠시 정차했다가 <살인의 추억>의 사회 부조리를 경유해 <지리멸렬>한 세상으로 향한다. 하강의 아찔함을 치밀하게 설계한 수직의 로케이션, 배우 동선에 리듬을 부여하는 세트 디자인, 쉬지 않고 터지는 블랙 유머도 <기생충>과 공생한다. 웃다가 경탄하다가 경악하다가 종국엔 서글퍼지는, 작품성과 오락성이 팽팽하게 배합된 봉준호식 짜파구리. 다 떠나서 일단, 재밌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봉준호 월드의 도약
★★★★☆
전작 <옥자>가 봉준호 월드의 확장이었다면, <기생충>은 봉준호 월드의 도약이다. 단숨에 최고층에 올랐다기보다는 작품마다 쌓은 주제가 견고한 계단을 놓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자본주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는 실내극 형식을 취하면서 이전보다 직접적이고 밀도 높게 그려졌다. 중반까지 속력을 내는 코미디와 전환점 이후에 넘실대는 장르의 변주는 완벽한 계획대로 실행되며 재미를 안긴다. 장르적 쾌감에 비례해 메시지는 가슴을 짓누른다. 자본주의의 온갖 격차를 체감하는 관객의 급소를 찌르고 후벼 판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정확히 조준하는 봉준호의 일격 화살, 봉준호 월드에서 가장 아린 새드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