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는 지난겨울 <라라랜드>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한동안 짝사랑은 멈출 줄 몰랐고, 극장에서 N차 관람을 찍다가, 매일 <라라랜드>의 OST를 듣다가, 핸드폰 배경화면을 바꾸다가, LA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길고도 길었던 지난 연휴,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짧은 여행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지 3주째. 여전히 LA의 풍경은 눈앞에 선명하다. 오늘은 추석을 LA와 함께 보낸 에디터의 뒤늦은 여행기를 전하려 한다.


라라랜드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라라랜드>를 봤다. 세 번을 보고 네 번을 봐도 여전히 처음 봤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볼 때마다 울컥하던 그 장면에서 여지없이 눈물이 흐르고, 미아(엠마 스톤)의 물음에 대한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답은 늘 서운하고, 엔딩은 언제나 아쉽다. (나는 직관적인 해피엔딩이 좋으니까!)

사람마다 여행하는 방법이 가지각색이다. 지역의 명소를 직접 가보는 것, 아무것도 안 하고 종일 쉬다 오는 것,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사치를 부리는 것, 유명한 맛집을 끼니 때마다 찾아가는 것, 기타 등등. 나의 경우에는 쉬엄쉬엄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터라 이번 여행에서도 하고 싶었던 것은 딱 두 가지였다. 그리피스 천문대 가기, 동네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

늘 그렇듯 여행지에서의 첫날은 한 것 없이 훅 지나가버리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아니, 저녁이 밝았다. 전날 뜻하지 않은 과음의 여파로 눈을 뜨니 저녁 6시였다. 같이 간 친구가 소리쳐 깨우지 않았다면 그 다음날 아침 일어났으리라. 부랴부랴 밖으로 나왔다. 전날 집에 들어올 때 봤던 그 풍경과 그 하늘색이었다. 그렇게 눈을 뜨자마자 야경을 보러 갔다. 그리피스 천문대로.

영화 속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이 충동적으로 향한 그리피스 천문대는 참 한산하던데. 목요일 저녁인데도 천문대 앞이 차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주차할 곳이 없어서 한참을 뱅뱅 돌다 보니 어느새 영업 종료 시간인 10시에 가까워졌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아 천문대를 눈앞에 두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사흘 후, 일요일에 다시 찾았다. 그리피스 천문대는 월요일 휴관이다. 혹시 여행 계획이 있다면 참고하시길. 화요일 아침에 떠나야 하니 오늘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분명 여유 있게 올라가서 일몰을 감상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또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9시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맨 위층 망원경이 있는 곳으로 갔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앞으로 뒤로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9시 30분이 넘도록 사람들의 줄이 좀체 줄지 않자 안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피스 천문대는 금일 오후 10시에 마감입니다. 내일은 휴무이니 화요일에 다시 찾아주세요!" 아니, 화요일에 올 수 없다고요. 한국 가야 한다고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다행히 바로 다음 차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불행히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영화에서처럼 돌연 하늘로 붕 떠오르는 것도, 은하수가 촤르르 펼쳐지는 것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에서 바라본 하늘의 풍경은 맨눈으로 봐도 기름종이를 한 장 덧댄 듯 흐려 보였다. 고로 별은 고사하고 뿌연 하늘만 보다 왔다는 말씀. 그리고 10시가 되자마자 칼같이 폐장했다. 사람들은 우르르 빠져나갔고 정신 차려보니 그곳엔 친구와 나 둘만 덜렁 남아있었다.

그제야 영화 속 그리피스 천문대가 보였다. 구불구불 굽이진 산길을 따라 올라와 천문대 앞에 쿨하게 차를 대놓던 그 장면이 특히 생각났다. 전에도 LA의 대표 명소였지만, 영화 속 인기에 힘입어 더욱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 막상 사람들이 있을 땐 제 모습을 볼 수 없다가 사람들이 없어져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했다. 그래서인지 어둠 속에 우뚝 서있던 천문대의 모습이 더욱 기억에 남았다.

내가 묵은 집은 위치가 참 좋았다. 할리우드·다운타운·한인타운과 모두 인접해있어 접근성이 좋았고, 시끌벅적한 관광객들 대신 동네 주민이 많은 조용한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날 천날 영화 속에서만 보던 할리우드 사인을 집 앞에서 바로 볼 수 있었다. 눈에 담긴 충분했지만 카메라에 담기엔 너무 작았던 그 사인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명예의 거리로 향했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이름이 발밑 곳곳에 새겨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가 크게 흥행하며 지난해 이곳에 입성한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의 손과 발을 볼 수 있었다. 직접 만난 것도 아닌데 괜한 반가움에 쭈그려 앉아 엠마 스톤의 손바닥에 내 손을 슬며시 맞대보기도 했다. 집 앞에서보다 조금 더 크게 보이던 할리우드 사인도 물론 봤다.

영화에 나오는 명소들을 모두 가본 것은 아니었지만, <라라랜드>는 며칠 안 되는 일상 속에서 더 크게 느껴졌다. 오프닝 장면에서 볼 수 있었던 교통체증은 차를 타고 나갈 때마다 눈앞에 펼쳐졌고,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영화관과 영화사 간판들은 이곳이 영화가 사랑하는 도시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도시 LA라는 걸 실감나게 해주었다.

이번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다음 여행은 어떤 영화를 보고 떠나게 될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다.

라라랜드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엠마 스톤, 라이언 고슬링

개봉 201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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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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