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이름을 걸고 강력히 권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새해와 함께 개봉한 <굿타임>이다. 은행을 털어 한탕 하려던 코니가, 지체장애를 앓는 동생 닉이 붙잡히자 그를 빼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불운(제목 '굿타임'의 아이러니!)의 연속을 늘어놓으며 관객들의 집중을 붙든다. 연출, 촬영, 음악, 연기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데 없는 아드레날린의 향연이다.

굿타임

감독 베니 사프디, 조슈아 사프디

출연 로버트 패틴슨, 베니 사프디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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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ed by
조쉬 and 베니 사프디

조쉬 사프디, 베니 사프디

조쉬 사프디와 베니 사프디, 이른바 '사프디 형제'는 당대 영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뉴욕 퀸스에 사는 아버지와 맨해튼에 사는 어머니/계부 사이에서 자란 그들은 영화광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영화를 만드는 걸 익혔다. 형제 모두가 보스턴 대학에 입학해 꾸준히 단편들을 연출했고, 2008년 조쉬는 장편 <도난 당하는 것의 기쁨>을, 베니는 단편 <외로운 존의 지인들>을 만들어 그해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상영돼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 두 번째 장편 <대디 롱렉스>부터 본격적인 협업 체제를 시작해,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고교 농구선수로 손꼽혔던 레니 쿡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레니 쿡>(2013)과 뉴욕의 헤로인 중독 홈리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은 <헤븐 노우스 왓>(2014)을 내놓으며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로 성장했다.

대디 롱렉스 / 헤븐 노우스 왓

2017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네 번째 장편 <굿타임> 역시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여전히 절도, 마약, 폭력이 난무하는 뉴욕의 밤을 쫓아가지만, 서사는 한껏 탄탄해졌다. 마약에 찌든 이들의 일상을 그린 <헤븐 노우스 왓>이 자극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내러티브가 느슨했던 반면, <굿타임>은 '탐미'와 '재미' 두 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으면서 작년 한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혔다.

작년 칸 영화제에서 로버트 패틴슨과 함께

벌써 두 편의 차기작이 예정된 상태다. 사프디 형제의 아버지가 맨해튼의 다이아몬드 거리에서 일하던 시절에서 영감을 얻은 <언컷 젬스>, <굿타임>을 연출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걸로 알려진 월터 힐의 1978년작 <48시간>의 리메이크가 물망에 올라 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도시 뉴욕이 어떻게 그려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가득하다.


written and edited by
로널드 브론스타인

사프디 형제와 브론스타인(가운데)

사프디 형제 영화의 크레딧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유독 로널드 브론스타인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2007년 연출작 <프라운랜드>를 발표한 감독이기도 한 그는 주연도 맡은 <대디 롱렉스>부터 사프디 형제와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브론스타인의 존재는 '각본', '편집' 두 역할에서 두드러진다. 시나리오의 조쉬, 편집의 베니의 크레딧 옆에 브론스타인의 이름이 늘 같이 등재돼 있다.


connie nikas
로버트 패틴슨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굿타임>은 곧 로버트 패틴슨의 영화다. 은행털이에 실패하는 것도 모자라 동생을 놓치면서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주인공 코니를 연기한 그는 러닝타임 대부분에 출연하며 <굿타임>의 얼굴 노릇을 톡톡히 한다. 꼬여만 가는 상황 때문에 금방이라도 돌아버릴 것 같은 다급한 심정을 시종일관 감추지 못하지만, 여러모로 서툰 동생을 어르고 달랠 때의 눈빛은 형언하기 힘든 온기를 머금고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뒤 크로넨버그의 걸작 <코스모폴리스>(2012)에 출연하면서 '연기 잘하는 배우'의 이미지도 획득한 그는 <굿타임>을 통해 그야말로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평을 받았다. 칸 영화제 당시 남우주연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게 결코 과장이 아니다. 패틴슨의 연기를 홀린 듯 좇아가는 것만으로도 <굿타임>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nick nikas  베니 사프디
corey ellman  제니퍼 제이슨 리
ray  마크 듀프레스
crystal  탈리아 웹스터

베니 사프디

눈썰미가 좋은 관객이라면 <굿타임>의 동생 닉의 배우가 바로 감독 베니 사프디라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물론 영화는 로버트 패틴슨이 거의 장악하고 있지만, 영화의 문을 여는 베니의 얼굴은 이 다이나믹한 범죄극에 기묘한 '감성'을 맴돌게 하는 힘을 내뿜는다. 전혀 닮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코니와 닉 사이엔 복잡한 가정사가 얽힌 것처럼 보인다) 끈덕진 형제애를 설득하고, 닉이 오랜 세월 느껴왔을 외로움과 불안까지 선명히 전달한다. 베니 사프디는 편집, 음향 크레딧에도 이름을 올렸다.

제니퍼 제이슨 리

제니퍼 제이슨 리의 존재는 특유의 쇳소리 같은 음성으로부터 드러난다. 나이들었지만 성숙한 기미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코니의 애인 코리는 단 세 신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절박한 상황의 코니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지 단번에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작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배우 크레딧에서 로버트 패틴슨과 베니 사프디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버디 듀레스

황당무계하게 코니와 연을 맺게 되는 무뢰한 레이 역은 버디 듀레스가 연기했다. 눈에 익지 않은 이 배우는 사프디 형제의 전작 <헤븐 노우스 왓>에서 주인공 할리의 애인 마이크로 출연해 '막사는 남자'의 모습을 선보인 바 있다. <굿타임> 속 레이는 육두문자와 독특한 억양을 마구 쏟아내며 팍팍한 이야기에 이상한 웃음을 제공한다. 그의 성대모사를 연습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탈리아 웹스터

감독이 힘주어 소개하고 싶은 신인 배우를 오프닝크레딧에서 'introducing OOO'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굿타임>의 배우 크레딧 마지막 순서는 'INTRODUCING TALIAH WEBSTER'라는 문구가 차지하고 있다. 탈리아 웹스터는 얼결에 코니를 돕게 되는 소녀 크리스탈을 연기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매사에 시큰둥한 크리스탈은 이렇다 할 감정을 드러내진 않지만, 코니의 각박한 하룻밤에 아주 미약하게나마 숨통을 트이게 하는 존재다.


director of photography
션 프라이스 윌리엄스

션 프라이스 윌리엄스

션 프라이스 윌리엄스는 미국 독립영화계 스타 촬영감독이라 부를 만하다. <굿타임>의 카메라를 관장한 윌리엄스는 <헤븐 노우스 왓>에 이어 다시 한번 사프디 형제와 협업했다. 앞서 언급한 로널드 브론스타인의 연출작 <프라운랜드>로 데뷔한 윌리엄스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또다른 스타 알렉스 로스 페리의 모든 작품의 촬영을 담당하는 등 지난 10년간 30편에 가까운 작품들을 작업하는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고 있다. 사프디 형제의 <헤븐 노우스 왓>과 <굿타임> 속 다수의 과격한 클로즈업과 그걸 뒤덮고 있는 핑크/퍼플 색채로 뒤엉킨 이미지는 분명 윌리엄스의 카메라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년 한국에서 개봉해 묵묵히 호평 받은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역시 그가 촬영을 맡았다.

리슨 업 필립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original score by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

<굿타임>은 일찌감치 음악 팬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당대 일렉트로니카 신에서 훌륭한 작업물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가 <굿타임>의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작한 오리지널 스코어는, 여느 영화음악처럼 간간이 등장해 감정을 북돋는 수준으로 쓰인 걸 넘어, 러닝타임 내내 막무가내로 스피커를 울려대며 영화가 내뿜는 긴장을 극대화하는 '귀의 호사'를 선사한다. <굿타임>의 상영관에서 발을 구르는 부류는 둘 중 하나다. 코니의 더럽게 좋은 운수에 어쩔 줄 몰라하거나,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의 전자음에 몸을 들썩이거나.

<굿타임> 사운드트랙

<굿타임>의 에필로그는 그때까지 관객들이 느낀 흥분이 무색할 만큼 차분하고 서정적이다. 이 순간을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의 앰비언트 위로 로큰롤의 전설 이기 팝이 시적인 가사를 읊조리는 노래 'The Pure and The Damned'가 수식한다. 이 트랙의 뮤직비디오는 (영화 속 장면을 짜깁기한 방식이 아닌) 사프디 형제, 로버트 패틴슨, 션 프라이스 윌리엄스 등 <굿타임>의 주요 스태프들이 모두 참여한 또 하나의 단편영화처럼 제작됐다. 반드시 감상할 것.

Oneohtrix Point Never & Iggy Pop - The Pure and The Damned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