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력>

리얼은 피했는데 염력을 못 피하다니….

<염력>의 관람객 평이다.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신작으로 1월 극장가의 최대 기대작이었던 <염력>은 개봉과 동시에 혹평 세례를 받았다. 대다수는 극의 ‘노잼’ 현상을 지적하며, <리얼>을 비롯한 졸작들과 비교해 <염력>을 놀리기에 바빴다. 이런 현상이 2주 정도 지속되고 나서야 일부 관객들이 <염력>에 대한 평가 절하에 반박했지만, 이미 극장가에서 간판을 내린 후였다.

내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염력>을 미리 봤던 분들은 대개 고개를 가로젓거나, 갸우뚱거렸다. 어리둥절한 예고편 분위기에 흥미를 잃었던 나는 그 반응이 재밌어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 내부 반응도 비슷했다. 중반까지 조용했던 관객들은 후반부로 가면서 졸거나, 헛웃음을 터뜨리거나,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미소지었다. 나는 이 영화, <염력>이란 영화 자체가 무척 재밌었다.

재밌다는 건 <염력>이 영화적 쾌감을 안겨줬단 게 아니다. 다른 이들처럼 중후반부에서 지루함을 느꼈는데, 그럼에도 미소지으며 봤던 건 이 영화가 가진 태도, 실제 사건을 동반한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염력>은 실화를 취하면서 거기에 코미디를 섞는 바람에 절룩거렸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느꼈다).

<염력>

나는 <염력>을 웃음이 섞인 탄식으로 해석했다. 영화는 ‘용산 참사’라는 비극(정치적 관점 말고 사람이 죽었다는 점만 보자)에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영웅이 있었다고 가정한다. 히어로물의 원류인 미국 할리우드 영화라면 당연히 이 영웅이 점차 성숙해져서 사태를 무마시키고 악당에게서 승리를 거둘 것이다. 그게 관객들이 히어로물에 기대하는 재미니까.

<염력>은 그와 정반대로 움직인다. 석헌(류승룡)이 초능력을 점차 발전시켜 각성하는 성장영화의 묘미를 취하지도, 실제 사건을 끌어왔지만 그걸 시종일관 비극적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까놓고 말해서 석헌은 진작에 가족을 내팽개치고 도망쳐 죄책감 때문에 루미를 도와주고, 악역들은 평범하게 영수증 운운하거나 대기업 홍 상무(정유미)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석헌은 마지막까지 고군분투하고 나름의 성과를 거두지만, 그걸 환희에 가득 찬 결말로 그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코미디와 사회 고발의 경계도, 상상의 카타르시스나 현실을 향한 비탄도 애매하다.

<염력> 촬영장에서 연기 지도 중인 연상호 감독.

나는 그 애매한 지점들, <염력>이 끊임없이 보여주는 이 모호함이 ‘진짜’라고 느꼈다. <염력>이 기반으로 하는 ‘현실에 압도적으로 강한 영웅이 있었다면’이란 일련의 상상은 정말 허구고, 그 어떤 요소도 명백하게 구분 지을 수 없이 혼재한 상태가 <염력>의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허구적인 상상(좀비)에 현실적인 요소(뉴스, 내부 분열 등)를 섞었던 감독의 전작 <부산행>과 비교했을 때, <염력>의 지나치게 영화적으로 보이는 석헌의 과정된 몸짓과 홍 상무의 연극적인 캐릭터가 그 단서로 보였다. 

연상호는 애초 희망적인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보자. <돼지의 왕>, <창>, <사이비>, <부산행>과 <서울역>. <부산행>에서도 어떻게든 살려고 논쟁하는 이들 뒤에서 홀로 남겨진 종길(박명신)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놀고 있네”다. 인간들의 생존 욕구가 최전방에 있어야 할 좀비 영화에서 그런 대사가 나왔다. 그것만 봐도 연상호의 인간관을 얼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는 늘 ‘괴물 같은 인간’을 묻고 그런 인간상을 주시한다. 

<부산행>

그런 연상호 감독이 만든 <염력>은 희망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 희망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상상(용산 참사는 이미 지나간 일이며, 초능력을 가진 인간은 있을 수 없다)과 결합돼 충돌을 일으킨다. 마음 놓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 이질감은, <염력>을 통해 연상호가 전하는 현실에 대한 조롱으로 보인다. 물론 들어간 제작비에 비해 아쉬운 퀄리티나 배우들의 과잉 연기까지 ‘변명’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염력>이 굳이 관객들의 기대에 어긋난 이야기와 배경을 취한 데는 이런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군함도>가 떠올랐다. <군함도> 역시 배경을 하지마 섬으로 선택해 ‘이런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상상하게 했다. 그러나 강제 징용자들의 권력 다툼을 플롯의 일부로 택하면서 기대를 배반했다. 나는 <군함도>에서도 강제 징용자들을 관객이 눈물을 쏟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캐릭터로 가공해 이야기를 장르적으로 풀어내려는 류승완 감독의 야심을 느꼈다. 물론 그게 결코 좋은 선택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호불호를 떠나 영화 자체가 많이 아쉬웠으니까.

<군함도>

하지만 적어도 이런 용기가 “되는 대로 찍었냐”는 식의 비아냥을 들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안전한 영화만 선택하고 그걸 옹호한다면, 모든 영화는 안전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안전해지면, 모든 영화는 결국 돈의 싸움으로 결판날 것이다. <염력>도 그렇다. 한국 영화계가 꼭꼭 숨겨놨던 이야기를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두 영화는 실패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하든 개인의 자유다. 조롱할 수도 있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이 왜 이렇게 나왔는지 생각해볼 여지 또한 충분하지 않을까.

염력

감독 연상호

출연 류승룡, 심은경

개봉 2017 대한민국

상세보기
부산행

감독 연상호

출연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수안, 김의성, 최우식, 안소희

개봉 2016 대한민국

상세보기
군함도

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

개봉 2017 대한민국

상세보기

씨네플레이 에디터 성찬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