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 볼 거야? 그럼 얘기해주고.” “얘기해도 돼요?” 당황한 눈빛이 역력하다. ‘도대체 왜 이러나’ 싶은 표정도 짓는다. 안절부절하기도 한다. 어딘가 불편한 기색도 보인다. 무슨 말이냐고? 에디터가 영화의 결말, 스포일러를 얘기해달라고 했을 때 동료 에디터들이 보인 반응들이다.
 

<식스 센스>
<유주얼 서스펙트>
식스 센스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출연 브루스 윌리스

개봉 1999 미국

상세보기
유주얼 서스펙트

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스티븐 볼드윈, 가브리엘 번

개봉 1995 미국, 독일

상세보기

그 반전이 궁금하다
그렇다. 에디터는 스포일러 당하기를 즐긴다. 스포일러를  즐긴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혹은 ‘이상한 사람이네’ 혹은 ‘극혐!’을 속으로 외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잠깐. 오해는 하지 말자. 에디터가 남들에게 스포일러를 하는 걸 즐기지는 않는다. 이 글에 반전으로 유명한 영화 <식스 센스>의 귀신이 누군지, <유주얼 서스펙트>의 범인이 누군지 쓸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아직 보지 못한 영화의 반전, 트릭, 장치가 궁금할 뿐이다. 그걸 미리 알고 영화를 보면 재미가 없지 않냐고? 아니! 재밌는 영화는 결말을 알고 봐도 재밌기만 하다. 어디까지나 에디터의 경우에는 그렇다.
 
스포일러 사랑은 언제부터?
어쩌다 그런 괴상한 변태 같은 습성을 갖게 됐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얘기를 더 해보려 한다. ‘씨네플레이’로 오기 전 영화주간지 편집기자로 5~6년 정도 일했다. 편집기자는 취재기자들이 쓴 기사, 영화평론가가 쓴 평론, 외부 필진이 쓴 칼럼 등을 미리 읽어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맞춤법, 오탈자 체크는 기본이고 문장이 매끄러운지 살피고, 틀린 정보가 있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또 제목을 정하고 글 중간중간 들어갈 중간제목도 만든다. 그 다음 편집장에게 해당 글을 넘긴다. 편집장이 글을 읽고 최종 오케이 사인을 하면, 편집 디자이너와 어떤 콘셉트의 디자인을 할지 의논하고, 인터뷰 기사의 경우에는 사진팀과 어떤 사진을 쓸지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이때! 편집기자는 스포일러가 듬뿍 담긴 글을 읽게 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영화잡지사에서 일한다고 해서 모든 영화를 미리 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숱하게 스포일러를 당하다 보니 스포일러 굳은살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자연스레 관심이 있는 영화의 반전이나 결말을 미리 알고 싶은 욕구가 커지게 됐다.

<컨택트>

결말 알고 보면 재밌나?
스포일러 당하는 거 좋아하는 건 알겠고! 결말, 반전을 알고 영화를 봐도 재밌다는 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좀더 얘기를 해보자. 사실 결말을 알고 보는 모든 영화가 재밌는 건 아니다. 분명한 것 하나는 있다. 원래 재밌는 영화는 결말을 알고 봐도 재밌고, 원래 별로인 영화는 어떻게 봐도 재미가 없다는 거다. 간혹 정말 스포일러를 당하게 되면 김이 빠지는 영화가 있는 경우도 있다. 딱 떠오르는 영화가 없는데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가 개봉을 앞둔 시점이 생각난다. 참고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최근작 <블레이드 러너 2049> 언론시사에서 티켓을 받을 때 감독이 직접 작성한 스포일러 노출 자제 요청글을 함께 받았던 기억이 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스포일러에 민감함 사람이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컨택트>를 언론시사로 미리 본 다른 매체의 기자에게 ‘영화 어떠냐’고 물었다. 그 기자가 답하길 “그냥 직접 봐야 돼요. 얘기해주면 재미없어요.” “어, 그래? 음… 그런데 무슨 얘기야? 외계인이 어떻게 되는데?” 에디터는 집요했다. 결국 그 기자는 “얘기해도 돼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컨택트>의 ‘장치’를 알고 봤다. 김이 빠지는 느낌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영화는 재밌기만 했다. 그 기자가 해준 일종의 ‘세미 스포일러’ 덕분에 오히려 영화에 더 집중하는 효과를 봤다. 도대체 어떻게 그 ‘장치’를 만들었을까. 드니 빌뇌브 감독이라면 얄팍한 장치를 허투루 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눈에 불을 켰다. 말하자면 스포일러 당하고 영화 보기는 영화를 좀더 분석적으로 보게 하는 힘을 준다. 한 영화평론가의 말이 떠오른다. 어디서 들었는지 지금 가물가물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보다 컴퓨터로 보는 게 더 좋다고. 이유는 언제든 결말을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말을 알고 보면 다른 시각, 관점이 생긴다는 뜻이다.

스포일러 요구는 이제 그만
영화잡지를 만들고, 지금은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을 하면서 에디터에게 스포일러는 좀 짓궂긴 해도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운 존재였다. 한때 이런 생각을 다른 에디터들에게도 전파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영화 기자, 에디터를 하면서 스포일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다소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것처럼 보기도 했다. 글을 쓸 때 간혹 자신이 보지 못한 영화를 부득이하게 언급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스포일러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스포일러에 덜 민감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접근이었던 것 같다. 선배랍시고 일종의 갑질을 한 게 아니가 싶기도 하다. 지금 반성하고 있다. 가능하면 스포일러를 얘기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을 작정이다. 그들이 불편해하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 이제 스포일러를 어떻게 즐겨야 하나. 열심히 ‘스포 포함’ ‘강스포’ 게시물을 찾아다녀야겠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