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서스페리아>(1977),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포스터

70년대 호러 영화의 고전 <서스페리아>가 40년 만에 돌아온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스페리아>의 리메이크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맡았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아이 엠 러브>를 시작으로 <비거 스플래시>를 지나 올해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이르는 욕망 3부작을 완성하고 차기작으로 공포영화를 택했다. 구아다니노가 선택한 <서스페리아>는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그가 새로 탄생시킨 <서스페리아>는 어떨지 알아봤다.


이태리산 호러의 정수, 지알로(Giallo)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호러 영화의 한 갈래인 지알로 장르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바로 ‘화려함’이다. 쨍한 색감의 원색 조명, 극단적인 클로즈업 등을 사용해 잔혹성을 현란하게 부각하는 지알로는 다분히 탐미적인 형식의 호러 스릴러 영화의 흐름을 일컫는다. 이탈리아어로 지알로(Giallo)는 노란색을 의미하는데, 대부분 노란색 표지로 덮였던 이탈리아의 장르 소설을 지칭하는 은어였다가 영화 용어로 파생됐다. 아마도 대부분의 지알로 영화가 엉성하다고 느낄 만큼 단순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딥 레드>(1975)

흔히 이 장르를 언급할 때 있어 조건 없이 거론되는 세 명의 이탈리아 지알로 명장이 있다. 마리오 바바, 루치오 풀치, 그리고 다리오 아르젠토. <서스페리아>(1977)는 3대 거장 중 가장 후발대에 진출한 다리오 아르젠토의 작품이자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대표작이다. 그는 <서스페리아> 말고도 <딥 레드>(1975), <인페르노>(1980), <쉐도우>(1982), <페노미나>(1985) 등 많은 걸작을 남기며 호러 영화계에서 굵직한 영향력을 보여준 인물이다. 아르젠토는 최근까지도 활동하며 2012년에는 지알로 버전의 <드라큘라>를 만들었지만 이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페노미나>(1985)

지알로가 이야기로서의 재미보다는 이미지가 줄 수 있는 강렬한 자극과 예술성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맥 빠지는 결말이라거나, 개연성이 아쉽다는 말을 들을 여지는 있다. 그러나 다수의 후대 감독들은 이 세 명의 거장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해왔다. 브라이언 드 팔마, 로버트 로드리게즈, 쿠엔틴 타란티노, 제임스 완 등 언급하려면 수도 없다. 지알로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프랑스의 젊은 감독 엘렌 카테와 브루노 포르자니도 꾸준히 지알로에 매혹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엘렌 카테, 브루노 포르자니 <더 스트레인지 컬러>(2013)


원작 <서스페리아>는 어떤 영화?

<서스페리아>(1977)

독일의 발레 학교에 유학 온 미국인 소녀 수지가 기숙사에서 불가사의하고 섬뜩한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룬 <서스페리아>(1977)는 지금까지도 호러 마니아들의 입에 연일 오르내리며 이탈리아의 대표 호러 영화로 지칭되고 있다. 붉은색의 사용을 거의 극단까지 밀어붙인 <서스페리아>에는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 장면들이 즐비하다. 높게 솟은 천정에서 떨어진 목을 매단 시체, 붉은색과 푸른색 등 원색의 강한 조명에 비친 얼굴, 얼굴에 떨어진 구더기 신(scene) 등등.

<서스페리아>(1977)

이에 버금가게 <서스페리아>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영화의 사운드트랙이다. 정신을 교란하며 혼을 쏙 빼놓는 괴기스러운 음악은 록밴드 고블린의 것이었다. 고블린은 70-80년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다수의 호러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다리오 아르젠토 역시 고블린의 음악을 자주 영화에 사용했는데, 그 조화가 아르젠토의 영화를 더욱 아르젠토 다운 것으로 만들었다.


원작의 주인공 '제시카 하퍼' 출연

<서스페리아>(1977)의 제시카 하퍼.

원작 <서스페리아>의 미국인 소녀 수지 역할을 맡았던 배우 제시카 하퍼는 구아다니노의 리메이크작 <서스페리아>에서 다시 환생한다. 원작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그는 앳된 얼굴에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졌는데 이러한 신체적 특징은 고스란히 <서스페리아>의 스산하고도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불안을 동반한 외로움을 연기하기에 제시카 하퍼는 안성맞춤이었다.

<서스페리아>(1977)의 제시카 하퍼.

1974년 브라이언 드 팔마의 공포 뮤지컬 영화 <천국의 유령>으로 데뷔해 몇 개의 작품을 남겼지만 현재는 배우 활동을 이어가지 않고 있는 제시카 하퍼의 이번 출연 소식에 반응이 뜨겁다. 하지만 <서스페리아>측은 하퍼의 역할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지는 양상. 혹시 원작의 극 초반부에 등장한 선례의 희생양을 연기하지는 않았을지 슬쩍 예상해본다.

제시카 하퍼의 최근 모습.

한편, 지난 4월 26일 시네마콘에서 공개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서스페리아> 상연 이후 제시카 하퍼는 “지금껏 본 영화 중 가장 놀라울 정도로 무서운 영화였다. 구아다니노의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톤이지만 특유의 영리함과 재능을 십분 보여준 영화였다”는 감상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

루카 구아다니노 <서스페리아>(2017) 포스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제대로 간질였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이 호러 영화의 리메이크라는 점은 일견 의아하다. 하지만 이탈리아 출신의 감독에게 이탈리아 호러의 대표 영화 <서스페리아>의 재해석에 대한 결심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서스페리아>에서는 다코타 존슨이 주인공 수지 배니온을 연기한다. 또, 마담 블랑 역에 틸다 스윈튼, 사라 역에 미아 고스가 함께 했다. 얼마 전 <서스페리아>는 공식 포스터와 예고편까지 공개해 관객들을 만날 채비를 마친 상태다. 예고편에는 원작 <서스페리아>에서 볼 수 있었던 갖은 소스들을 새롭게 변형한 장면들이 눈에 띈다. 개봉일은 북미 기준, 오는 11월 2일로 맞춰졌다.

<서스페리아>(2017)의 다코타 존슨.

한편, 원작에서 핵심이 됐던 영화음악은 어떻게 구성했을지도 초미의 화두다. 2018년 버전의 <서스페리아>에서는 다름 아닌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가 영화의 모든 음악을 담당했다. 영국의 현존하는 전설적인 밴드 라디오헤드의 리드싱어이자 작곡가인 톰 요크의 음악이 영화에 쓰인 경우는 처음이 아니지만 정식으로 영화의 음악감독으로 데뷔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천재 아티스트 톰 요크의 영화 참여에 대해 “꿈이 이루어졌다”며 “불안과 혼란을 표현한 영화인만큼 톰 요크보다 더 나은 사람을 생각할 수 없었다”는 말을 남겼다.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영화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에서 꾸준한 협업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톰 요크의 새로운 조합은 계속해서 환상의 파트너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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