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욕구, 창작욕이라는 것은 꽤나 보편적이어서 카피를 오래 하다 보면 대개는 자기만의 것을 만들고 싶어지게 되는 것 같다. 음악을 예로 들자면 아마추어 밴드에서 뭐 메탈리카라던가 메가데스라던가 유명한 밴드들의 곡들을 카피해 연주하다가 자작곡을 만들게 되고 시를 좋아해서 계속 읽다 보면 자신만의 시를 한 번쯤 써 보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술도 마찬가지여서 바에서 바텐더가 만든 칵테일을 맛보는 사람들 중 일부는 집에 홈 바를 만들고 스스로 칵테일을 만들어 보게 된다. 어떤 때는 클래식 칵테일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자신만의 칵테일 레시피를 만들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곤 하는데 대부분은 실패하지만 아주 가끔은 맛있는 칵테일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맛보고 맛있어서 아 이건 나만의 레시피일거야하고 혼자 득의양양했다가 정작 구글에 검색해보면 그냥 있는 레시피 수준이 아니라 무려 IBA(International Batenders Association; 국제 바텐더 협회)의 공식 칵테일인 경우가 대부분.

각설하고, 모든 창작 행위는 분야에 따라 어느 정도 다를 수는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어떤 한가지 선결조건을 요구한다. 바로 카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되겠다. 그리고 그 모방의 대상은 대개 고전이란 한 단어로 요약된다.

고전’, 즉 클래식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시대를 넘어 다수에게 사랑받는 품격 있는 것들을 아울러 지칭하는 것이다. 선인들이 밟아온 발자취를 따라 밟으며 선인들이 이룬 업적을 발판 삼아 더 나은 진보를 이뤄내는 바탕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고전의 참된 존재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영화사에서도 그런 고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좋은 영화들이 정말 많이 있다. 오늘은 그런 고전 영화 중 <카사블랑카>를 이야기하려 한다.

카사블랑카는 마이클 커티즈 감독이 만들어 1942년에 개봉된 영화다. 오래된 영화다 보니 16:9도 아닌 4:3에 가까운 비율로 만들어진 무려 흑백영화고 2007년 미국 영화 연구소 100대 영화 중 3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주연 배우는 그 유명한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 여담이지만 영화는 실제 카사블랑카가 아닌 할리우드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모로코의 도시 카사블랑카는 영화 속에서 나치를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이 들르는 도시로 묘사된다.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곳이 아닌 이태리 경찰과 프랑스 레지스탕스, 나치 세력들이 혼재된 카사블랑카에서 릭(험프리 보가트)은 카페이자 바,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 카페에 릭의 옛 연인 일자(잉그리드 버그만)가 남편과 함께 들어가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릭과 일자의 로맨틱한 사랑, 사람과 사람 간의 질투, 정치적 갈등 등이 샘(둘리 윌슨)의 연주와 섞여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고전 영화로서 손꼽히는 영화답게 영화 속, 특히 릭의 카페에서 등장하는 술들 역시 고전적인 형태의 술들이 많다. 버번, 브랜디, 샴페인 등의 다양한 술들이 등장하는데 특이하게 샴페인 칵테일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일자의 남편 빅토르(헨리드) 국경을 건널 수 있는 통행권을 암거래하기 위해 릭의 카페에서 이야기하다가 시키는 칵테일, 이름 역시 문자 그대로 샴페인 칵테일이다.

고전 영화 속 고전 칵테일답게 레시피 역시 옛날 스타일이다.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의 칵테일은 올드패션드처럼 1개의 술에 약간의 부재료(개인적으론 양념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가 더해진 레시피가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1942년에 개봉된 영화 속 칵테일이다 보니 샴페인 칵테일의 레시피 역시 올드패션드에서 다음 세대의 칵테일로 바뀌는 중간 단계의 레시피라고 보면 정확할 듯싶다. 잔에 각설탕을 넣고 앙고스투라 비터즈를 살짝 적신 후 샴페인 90ml를 부어 넣고 코냑 10ml를 아주 조심스럽게 잔에 따라 넣은 뒤 마라스키노 체리를 가니쉬로 사용하는 것이 IBA의 공식 레시피이지만 경우에 따라 레몬 껍질을 둘러서 넣는 경우도 있다.

샴페인 칵테일 출처 : esquire.com

와인을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는 샴페인을 갖고 칵테일을 만드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은 편이라 수많은 칵테일 중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칵테일 중 하나인데 개인적으론 키르 로열도 그렇고 칵테일을 샴페인으로 굳이 못 만들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단 설탕이 들어가기 때문이 달지 않은 샴페인을 쓰는 게 좋다. 


10년 남짓 술을 공부해 오면서 집에서 이런저런 칵테일들을 만들어보고, 또 마셔보기도 했는데 이럭저럭 내 칵테일이라고 말할 만한 칵테일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내 입맛에 맞게 만들 수 있는 칵테일은 5개가 채 안 되고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내 시그니처랄까, 그나마 먹을 만한 오리지널 레시피의 칵테일은 딱 하나이다. 그것도 복잡한 것을 창조한 것이 아닌, 칵테일 아메리카노(커피 아니에요 ^^)에 페르넷 브랑카를 넣은 정도의 변주.

그래도 그건 나 나름대로는 작으나마 내디딘 한 걸음이고 그건 무엇보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낸 선배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런 선인들의 노력과 기록을 토대로 발전해 왔다.

영화도 마찬가지, 지금 보면 약간 어색할 수도, 유치할 수도 있지만 안 좋은 화질과 웅웅거리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고전이 주는 감동을 가리지는 않는다. 마치 푸르트벵글러와 하이페츠, 그리고 빌리 홀리데이의 음반들이 여전히 감동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SNS에서 소설 표지 릴레이라는 걸 시작했다. 첫날은 예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앵무새 죽이기> 표지를 올렸다. 내일은 뭘 올려야 되나 벌써부터 고민이 되는데 글을 쓰다 보니 이왕이면 고전 소설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책은 <전쟁과 평화>. , 러시아 소설은 사람 이름 구별하다가 날 샐 텐데…….

카사블랑카

감독 마이클 커티즈

출연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폴 헌레이드

개봉 194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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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렉 / 술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