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의 고전 <노팅 힐>이 4월 17일 재개봉 했다. 20년 만이다. <러브 액츄얼리>(2003)와 <어바웃 타임>(2013)의 리차드 커티스가 쓴 '남성용' 판타지 로맨스와 출중한 배우들이 만든 앙상블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재개봉을 기념하며 <노팅 힐>의 제작 비화들을 정리했다. 스포일러 주의!!!


<노팅 힐>의 오프닝은 애나가 어마어마한 스타라는 걸 단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유명 연예 프로그램 <엔터테인먼트 투나잇>이 제공한 줄리아 로버츠의 과거 영상을 모은 것이다.


윌리엄(휴 그랜트)이 사는 파란 문의 집은 실제 노팅 힐에 위치해 있다. <노팅 힐>의 시나리오를 쓴 리차드 커티스의 집이었다. 이 곳은 영화가 개봉하고 1년 후에 팔렸다. 새 주인은 수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에 질려 본래의 파란 문을 팔고 까만 문으로 바꿨다. 그 다음 소유주는 다시 문을 파랑으로 칠했다.


믿기지 않지만, 휴 그랜트는 줄리아 로버츠와의 키스신에 대해서 불평했다. 그녀의 큰 입 때문에 키스 할 때 희미한 메아리 같은 걸 들었다고 말한 것. 로버츠는 그의 무례한 코멘트를 용서했고, 그와 다시 작업할 의향도 있다 밝혔다.


애나가 윌리엄을 초대한 호텔룸은 그녀의 새 영화 언론 인터뷰가 열리는 장소였다. 어느 매체 소속이냐는 직원의 물음에 윌리엄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잡지 <말과 사냥개> 기자라며 둘러댄다. 물론 실제 발행되는 잡지다. 영국의 가장 오래된 승마 잡지인 <말과 사냥개>는 1884년 창간돼 현재까지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윌리엄의 동생 허니의 생일 파티. 자신을 배우라고 소개하는 애나를 알아보지 못한 버니(휴 보너빌)는 최근 출연료가 얼마였냐고 묻고, 1500만 달러였다는 대답을 듣고 벙찐 표정을 짓는다. 이 액수는 촬영을 거듭하며 점점 올라갔다. 시나리오와 리허설 때는 1000만 달러, 그 다음 테이크에선 1200만 달러, 3번째 테이크에서 결국 1500만 달러가 됐다. 1500만 달러는 줄리아 로버츠의 <노팅 힐> 개런티였다.


레스토랑에서 애나를 두고 험담을 하는 신에서 애나가 쏟아내는 말은 시나리오에 없는 대사였다.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거 알아요. 열등감 때문이겠죠. (아래를 훑어보며) 댁들 물건은 땅콩만 할 테니까.”


줄리아 로버츠가 제작진을 부끄럽게 만든 일화가 있다. 애나의 애인 역 물망에 오른 배우들 리스트를 본 줄리아 로버츠는 그들이 죄다 그녀보다 20살 이상 많다는 걸 지적했다. 호텔 방에서 윌리엄이 맞닥뜨리는 애나의 애인을 연기한 알렉 볼드윈은 로버츠보다 9살 연상이었다.

알렉 볼드윈


애나와 윌리엄이 옥상에서 새 영화 대사를 맞춰보는 신. 원래 분량도 더 길었고 애나가 연습하는 대사엔 욕설이 꽤 많았지만, PG13(13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기 위해 편집됐다. DVD 서플먼트에서 긴 버전을 볼 수 있다. 이 신은 기존 윌리엄의 집이 아닌 다른 곳의 옥상에서 찍었다.


애나는 윌리엄의 집 벽에 걸린 그림 포스터를 보고 "사랑은 저런 거죠, 푸른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샤갈이 1950년 그린 <신부>다. 런던을 떠나기 전 윌리엄의 서점에 찾아온 애나는 <신부>의 진품을 선물한다. 리차드 커티스는 평소 샤갈의 팬이었고, <신부>가 잃어버린 것을 갈망하는 마음을 그려내는 솜씨에 반해 영화에 쓰기로 했다. 제작진은 작품을 소장한 이와 촬영이 끝나면 가품은 바로 폐기한다는 걸 약속하는 조건으로 이 그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샤갈 <신부>


줄리아 로버츠가 이의를 제기한 대사가 하나 있다. 리타 헤이워스가 남긴 유명한 말을 인용한 “그들은 길다와 함께 침대로 향하지만, 늘 나와 함께 깨어나죠"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처럼" 싫어했지만, 결국 그 대사는 영화에 담겼다.

리타 헤이워드


애나가 떠난 후 윌리엄이 헛헛한 마음을 달래며 동네를 거니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빌 위더스의 'Ain't No Sunshine'이 흐르면서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한 장면 안에 슥 지나간다. 모두 하루 만에 촬영한 장면이다. 각자 따로 촬영한 계절 별 쇼트들을 이은 후 CG로 휴 그랜트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매만져 완성한 것이다.


윌리엄의 주장과 달리, 그의 서점에는 여행책만 파는 건 아닌 듯하다. 애나가 윌리엄에게 샤갈의 <신부>를 선물하는 신에서 두 책이 유독 눈에 띈다. 로저 사빈의 ‘Comics, Comix & Graphic Novels: A History Of Comic Art’와 조지 로저의 사진집 ‘Humanity and Inhumanity: The Photographic Journey of George Rodger’이 보인다. 둘 다 영국의 출판사 파이돈에서 나온 것 보면 광고가 아니었나 예상된다. 찰스 디킨스와 존 그리샴 소설이 있냐고 묻던 키 큰 남자에게 면죄부를.


애나가 런던에서 묵었던 리츠 호텔에 찾아가는 신은 실제 리츠 호텔에서 촬영했다. 실제 손님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새벽 2시부터 4시까지만 찍을 수 있었다고.


마지막 장면 속, 애나와 윌리엄 그리고 그들의 아이가 함께 앉아 있는 벤치는 지금 영국에 없다. 호주 이스트 퍼스의 퀸스 가든에 있다. 한 퍼스 시민이 익명으로 기증한 것. 밤에는 이용할 수 없다고.

퀸스 가든의 벤치


벤치에 앉아 윌리엄이 읽고 있는 책은 영국 소설가 루이 디 베르니에르 1994년 작 <코렐리의 만돌린>이다. 로저 미첼 감독은 <노팅 힐>의 다음 작품으로 이 소설을 영화화 하기로 했으나 건강 문제로 하차해, 그 자리를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9)의 존 매든 감독이 맡아 제작됐다.

원작 소설과 영화 포스터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는 애나와 윌리엄 역에 감독/프로듀서가 염두한 '원 앤 온리' 배우였다. 제작진은 실제로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할리우드 배우였던 줄리아 로버츠가 이 캐스팅을 수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시놉시스만 듣고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로버츠는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작품에 완전히 매료돼 출연을 결심했다.


애나 스콧의 모델은 사실 줄리아 로버츠가 아니었다. 리차드 커티스는 그레이스 켈리와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며 애나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오드리 헵번 / 그레이스 켈리


리차드 커티스는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보고서야 <노팅 힐>이 자기가 시나리오를 쓴 전작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과 아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영국 남자(휴 그랜트)가 미국 여자(앤디 맥도웰)와 사랑에 빠지고, 오랜 시간을 거쳐 그들이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는 골격은 정말 유사하다. 두 주인공 주변에 매력적인 친구들이 있다는 점 또한.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리차드 커티스는 노래 한 곡을 연거푸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써나갔다. 톰 웨이츠의 원곡을 에브리띵 벗 더 걸이 커버한 'Downtown Train'이다. 커티스가 담고자 했던 <노팅 힐>의 분위기가 담겨 있다고 한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마이크 뉴엘 감독은 <노팅 힐> 연출을 제안 받았으나 <에어 콘트롤>(1999)을 작업하기 위해 거절했다. 두 영화의 수익은 무려 43배나 차이났지만, 뉴엘은 <에어 콘트롤> 감독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의 안소니 밍겔라도 감독 물망에 오른 바 있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 현장의 마이클 뉴엘 / <에어 콘트롤> 포스터


<노팅 힐>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노래, 엘비스 코스텔로의 발라드 'She'다. 'She'는 본래 프랑스 가수 샤를 아즈나부르가 1976년 영어로 발표한 노래다. 영국 드라마 <여인의 일곱 가지 얼굴들>의 주제가로 쓰인 이 곡은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버전으로도 녹음됐지만 영국에서만 성공을 거뒀다. 멜로디를 기가 막히게 쓸 줄 아는 코스텔로지만, 그는 이 트랙에서 목소리만 보탰다. <노팅 힐>의 음악감독 트레버 존스와 여러 작품을 함께 한 줄리안 커쇼가 편곡하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현악 소리가 코스텔로의 목소리를 포근하게 감싼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