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가 <어벤져스>로 흥행몰이에 성공하고, 슈퍼히어로의 대명사였던 슈퍼맨과 배트맨보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유명해진 작금의 시대에 DC 팬들은 DC 실사화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켜야 했는지. <원더우먼>이 호평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DC 실사화 프로젝트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았다. 최근 <조커>로 기사회생에 성공하긴 했으나 엄밀히 <조커>는 DC가 그간 진행해 왔던 실사화 유니버스와는 관계없는 별도의 작품이라는 점도 어찌 보면 안타까운 부분이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가 DC 실사화 전력을 이야기할 떄 아직도 언급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DC코믹스가 꾸준히 갖고 있었던 현실성과 히어로의 고뇌에 대해 심도 있게 풀어낸 대중성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연배우가 크리스찬 베일이라서, 혹은 조커를 맡은 배우 고 히스 레저가 명연기를 펼쳤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영화가 잘 만들어졌고 재미있었으며 대다수의 관객에게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관건은 결국 영화의 완성도다.

제임스 건이 연출한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제임스 건이 마블 스튜디오에 발탁되었을 때 그가 맡을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만인의 기대를 얻기엔 너무도 부족한 소재였다. 원작 코믹스가 마블 코믹스를 대표할 수 있을 만큼 인기 있고 인지도 높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었고, 마블 입장에서는 개개인의 히어로 캐릭터에 대한 묘사 없이 팀업 무비나 다름없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내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부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멋지게 성공을 거뒀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비슷한 듯 다른 구조, 하지만 엇갈린 성패

<수어사이드 스쿼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기본적인 골지는 나쁜 놈들이 모여서 히어로가 된다는 것으로 유사해 보인다. ‘스타로드’ 피터 퀼, 로켓 라쿤, 가모라, 드랙스, 그루트, 그리고 네뷸라까지 구성원의 모두가 정의롭게 살아가는 히어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말할 것도 없이, 구성원 대부분이 죄질이 나쁜 범죄자이며 DC 쪽의 어지간한 빌런 캐릭터들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합류한 이력이 있다. 나쁜놈들 급을 나누는 게 의미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수어사이드 스쿼드 쪽이 더 흉악한 셈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멤버들. (왼쪽부터) 슬립낫, 부메랑, 카타나, 인챈트리스, 릭 플래그, 할리퀸, 데드샷, 킬러 크록, 디아블로

이런 흉악한 캐릭터들을 모아 놓고 강제로 어떤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 사실 흉악범인 이상 조직에서는 부담이 덜할지도 모른다. 국내 드라마이자 최근 영화로도 제작된 <나쁜 녀석들> 역시 ‘범죄자들이 범죄자들의 심리를 가장 잘 알고 있기에 가장 수사를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사회를 어지럽게 만들어 격리되었던 죄수들이 역으로 사회를 위해 행동한다, 나름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성공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었으나,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좋은 말을 듣지 못했다. 망한 영화 대잔치(...)인 라즈베리 어워드에서 최악의 조연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골든슈모스 어워드의 과대평가상 수상에 빛나는 성과를 거둔(?)다.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슈퍼히어로 코믹스 원작 영화로는 최초로 분장상을 수상하기는 했다.

흥행성공의 주역으로 꼽힌 윌 스미스와 마고 로비(…)

국내에선 200만 관객도 돌파하는, 여타 히어로무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이라 대차게 망했다고 기억하는 관객들도 대다수. 하지만 글로벌 흥행 결과만 보면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의 합산인 3억 3천만달러를 높게 상회하는 7억 4천만달러를 벌어들여 흥행 자체는 성공했다. 여기에는 데드샷 역으로 출연한 윌 스미스와 마고 로비의 할리퀸이 큰 역할을 했다고들 하지만, 어쨌든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평가는 참패한 셈이다.


DC의 제임스 건 기용,

웃기도 울기도 힘들다

그래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속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팬들의 반응은 반반...아니 부정적이었다. 할리퀸은 다시 보고 싶지만 이대로는 안된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상세한 확정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출연진이 대거 교체될 것이다, 각본가로 어떤 인물이 지명될 것이다 하는 루머들만 가득한 가운데, 바로 그 사건이 터진다. 제임스 건 이슈였다.

현지 언론사 The Daily Caller의 폭로기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감독으로 두 편의 영화를 성공시키면서 인기 감독이 된 제임스 건. 이 감독은 평소 트위터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걸로 유명했고 영화 관련 트윗도 자주 하고 있었는데, 트럼프 취임 이후 도널드 트럼프의 행보에 관한 비판적인 글(대개는 비꼬는 내용이었다)을 게시하곤 했다. 이에 반감을 가진 한 현지 보수 언론이 제임스 건의 과거 트윗이 문제성 내용으로 가득하다는 점을 폭로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단순히 정치적인 성향 문제였다면 일파만파 사건이 커지지는 않았겠지만, 제임스 건의 과거 트윗에는 아동성애와 레이시즘 등 이른바 'PC'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일부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경우까지 있어 엄청난 사건으로 번지고 말았다. 거기에 트윗 건수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많아 아무리 과거의 일이라고는 하나 문제의 정도가 심각했다.

이에 디즈니는 폭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임스 건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 감독직에서 해임했고, 이에 따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3편도 당초 계획에서 빠지면서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제임스 건은 당시 3편의 각본을 완성한 상태였으며 이 때문에 각본가 역시 재고용이 필요했고, 마블로서는 추가 작업이 많아진 셈이었는데.

해임 이후 출연진들이 제임스 건 복귀 성명서를 냈고, 일부 팬덤에서도 전 세계적인 복귀 서명운동을 진행하면서 디즈니 역시 이에 따라 복직을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반대 여론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아동성애에 관해서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강력 범죄로 취급되는 게 사실이고, 이와 관련하여 트윗뿐만이 아니라 제임스 건 본인이 과거에 물의성 코스프레를 했던 사진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제임스 건이 경질되면서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DC 측에서 제임스 건 고용을 논의 중이라는 루머성 보도가 나온다. 초기에는 여러모로 부담이 많을 작품인 <그린 랜턴>의 리부트작을 맡기게 될 거라는(아마 제임스 건 입장에서도 마블 복귀가 불가능하다면 그린 랜턴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내용이었는데, 제임스 건이 맡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수어사이드 스쿼드> 후속작이었던 것.

‘DC는 자존심도 없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자존심 차릴 상황이 아니었던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면, 거기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성공작으로 만든 제임스 건이라면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제임스 건은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맡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이 전작의 속편이 아닌 완전한 리런치작이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언급했고, 팬들은 감독의 추문에 걱정하면서도 리런치라는 소식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2편이 아닌 리런치, 신구의 조화로운 캐스팅?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리런치(relaunch) 작품이라는 것은 기존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그려진 세계관을 공유하되, 전작과는 다른 형태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팀은 유지하고 일부 캐릭터는 그대로 가져가지만(즉 세계관은 그대로지만) 전편과 이야기가 이어지는 작품은 아니라는 의미다. 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프랜차이즈 자체를 쇄신하겠다는 의지도 들어 있는 셈이다.

그에 따라 제임스 건이 공개한 캐스팅 명단에는 기존 배우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기존 출연진 중 아만다 월러, 캡틴 부메랑 등이 그대로 캐스팅되었으며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될 가능성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왼쪽부터 아만다 월러(비올라 데이비스), 릭 플래그(조엘 킨나만), 할리 퀸(마고 로비), 캡틴 부메랑(제이 코트니)

현재까지 출연이 확정된 명단 중 전작의 캐릭터를 이어갈 배우들은 총 4명이다. 할리 퀸 역에 마고 로비, ‘캡틴 부메랑’ 조지 하크니스 역에 자이 코트니, 아만다 월러 역에 비올라 데이비스, 릭 플래그 역에 조엘 킨나만이다. 데드샷 역을 맡았던 윌 스미스는 스케줄 문제로 이번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데, 캐릭터 자체가 삭제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후속편이 제작된다면 출연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왼쪽부터)숀 건, 마이클 루커, 타이카 와이티티, 이드리스 엘바는 각각 크래글린, 욘두, 코르그, 헤임달로 마블 영화에 출연했다.

그 외 재미있는 점은 MCU 시리즈의 감독이었던 제임스 건의 경력 덕인지, MCU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수 보인다는 것이다. 일단 본인의 동생이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욘두 우돈타의 화살을 물려받았던 ‘크래글린’ 숀 건과 <토르> 시리즈에서 아스가르드의 수문장이자 토르의 빈자리를 채우는 조력자 역할을 했던 ‘헤임달’ 이드리스 엘바가 캐스팅되었다.

거기에 배우 겸 감독으로 <토르: 라그나로크>를 성공시키며 <토르> 시리즈를 회생시킨 타이카 와이티티가 이번에는 배우로서 출연할 예정이기도 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욘두 우돈타 역의 마이클 루커 역시 출연한다. 더불어 감독과는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해임 논란 당시 “제임스 건의 각본이 아니라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03>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던 데이브 바티스타의 카메오 출연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으니, 익숙한 얼굴들을 다수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자레드 레토의 조커

제임스 건은 캐스팅 명단을 공개하면서 이들이 각각 어떤 캐릭터로 등장할지는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는데, 캐스팅 확정 명단 외에도 추가 캐스팅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조커 역을 맡았던 자레드 레토만은 빠져 있는데… 사실 원작 코믹스에서 조커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멤버였던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빠지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부분이지만, 전작에서 개봉 전부터 워낙 부각되었던 캐릭터였던지라(물론 본편의 분량은 비극적인 수준이었고 배우 본인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쉬움은 남는다.

현실적으로 보면 평판이 그리 좋지도 못했던 자레드 레토의 조커를 다시 등장시키는 게 그리 안전한 선택 같지는 않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가 제작 발표 초기에 있었던 우려를 종식시키고 10억 달러 영화 반열에 접어들었음은 물론, 히어로 코믹스 기반 영화로서는 최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대성공을 거둔 이상 이 조커 캐릭터에 굳이 집착할 이유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작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부각되었던 할리퀸과 조커의 애정관계 덕에 조커와 할리퀸의 듀오 무비가 나오지 않겠냐는(농담섞인) 이야기는 이제 가능성이 희박한 것 같다.


악마의 재능, 제임스 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제임스 건 감독은 아마도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만 보더라도, 정의롭지 않은 캐릭터들이 힘을 모으게 되는 과정이 대단한 대의나 정의감 없이도 자연스럽게 묘사되었으며 그들의 첫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탈옥 장면 역시 유쾌하다.

또한 <어벤져스: 엔드게임> 전까지 가장 장렬하고 멋진 최후를 맞은 조연 캐릭터이자, 다시 보고 싶은 캐릭터 중 압도적인 위치를 자랑하는 ‘참아버지’이자 마블의 메리 포핀스인 욘두의 이야기도 만들어낸 감독이기도 하다. 거기에 히어로 무비 감독으로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원작 코믹스에 대한 애정도 높은 편이다.

저지른 사건이야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패착이었지만(퍼거슨은 또 1승을 올렸다), MCU의 많은 작품에 관여했음은 물론 이외에도 <더 보이>의 제작을 맡는 등 할리우드 영화 업계에서 좋은 성과를 내 왔던 감독인 것만은 확실하다.

제임스 건

또한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마자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으며 사건 이후 얼마 안 되어 발표된 디즈니의 강경한 해임 조치에 대해서도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듯,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 듯하다.

사건의 정도가 심각한 덕에 그를 옹호하는 동료 배우들과 영화계 인물들까지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디즈니는 그를 다시 재고용했으며 워너브라더스에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리런치 타이틀의 각본 및 감독을 맡겼다.


평가는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

분명한 것은 제임스 건이 능력 있는 감독이라는 점이다. 다수의 작품을 성공시켰으며 오랫동안 각본가로 활동해 온 만큼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 면에서도 재능이 있다. 그만큼 팬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높았던 게 사실이지만, 지난 오랜 시간 동안 해 왔던 위험하고 공격적이며 문제의 소지가 큰 발언들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말했듯 사과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미국의 한 상원 의원은 그의 트윗이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기소해 마땅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국내 감독이었다면 얄짤없이 매장되었을 만한 이슈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관객이 영화에 바라는 것들에는 다양한 관점과 지점이 있다. 여기에는 윤리적인 측면과 대중적인 측면, 나아가 영화의 완성도까지가 모두 포함된다. PC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겐 제임스 건의 재고용과 더불어 DC와 마블 양쪽에 참여하게 된 이 사건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소식이 결코 유쾌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기대감을 갖게 하는 부분은 있을지 모른다.

아마 더 이상 번복은 없을 테고, 2021년 개봉이 예정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리런치 타이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그리고 아직 개봉일은 미정이지만 그 이후에 공개될 예정인 말 많고 탈 많았던 우여곡절 끝의 작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 역시 제임스 건의 손을 거치게 될 것이다.

아직 개봉까지는 1년 이상 남은 상황이고,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제 막 촬영을 시작한 상태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겠지만, 팬들은 어쨌거나 ‘좋은’ 영화를 원한다. 더 이상 작품 속 캐릭터들이 불미스러운 어른의 사정에 휘둘려 비틀거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희재 / PNN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