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헤인즈 감독와 배우 마크 러팔로가 의기투합한 신작 <다크 워터스>의 상영 중이다. 헤인즈는 이전에 70년대 글램록 신에 보내는 헌사 <벨벳 골드마인>(1998)와 밥 딜런의 전기영화 <아임 낫 데어>(2007) 등 음악영화를 연출한 바 있다. 이번주 '영화음악 감상실'은 <아임 낫 데어>를 음악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
Bob Dylan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의 전기영화를 표방하지만 그의 일대기에 관한 정보는 여기저기 흩뜨려져 있다. 밥 딜런이라는 이름 대신, 딜런의 사실들을 마구잡이로 공유하고 있는, 각자 다른 여섯 배우가 연기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임 낫 데어>를 작업하면서 딜런과 단 한번도 소통하지 않았던 토드 헤인즈는 밥 딜런이라는 신비한 아티스트를 팩트로써 보여주기보다 차라리 그 팩트를 지워나갈 기세로 그의 존재를 'NOT'의 영역에 두려 한다. 그 뜻은 도입부부터 자명하다.
백스테이지에서 무대로 향하고, 대차게 시동을 건 모터사이클이 평행을 가로지르고, 주드 퀸(케이트 블란쳇)의 시신이 싸늘하게 누워 있는 모습 등이 무심하게 지나면 본격적인 오프닝 크레딧이 시작된다. 딜런이 66년 발표한 걸작 <Blonde on Blonde>의 트랙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과 함께 지하철과 거리에서 만나는 군중을 찍은 푸티지가 하나둘 지나간다. 그들 대부분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본다. 하지만 영화 제목대로, 밥 딜런은 거기에 없다. 다큐멘터리 같은 흑백 이미지에 이어 바로 컬러의 픽션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그때 뜨는 자막, "밥 딜런의 음악과 여러 삶에서 '영감'을 얻었음". 'based on'이 아닌 'inspired by'.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를 흠모하던 딜런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우디(마커스 칼 프랭클린)가 달리는 기차를 향해 뛰어오고 있다.
The Lonesome Death of Hattie Caroll
Mason Jennings
<아임 낫 데어> 속 음악은 밥 딜런의 오리지널과 후대 뮤지션의 리메이크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물론 그 두 가지 방향이 적용되는 방침은 명확하지 않다. 영화 속 배우들이 노래할 때 대개 리메이크 버전이 쓰였다.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잭 롤린스는 딜런이 스타덤에 오르기 전인 60년대 초중반, 민중 앞에서 기타와 목소리로써 그들의 애환을 대변하며 '포크의 혁명가'로 불리던 시절이 겹쳐지는 캐릭터다. 잭이 노래하는 'The Times They Are A-Changin'과 'The Lonesome Death of Hattie Caroll' 역시 딱 그 시기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The Times They Are A-Changin'>에 수록된 곡이다. 딜런 특유의 갈라지는 보컬이 아닌, 메이슨 제닝스의 포근한 음성을 노래를 베일이 립싱크로 연기한다. 당시 딜런의 연인이었던 포크 뮤지션 존 바에즈(Joan Baez)에 빗댄 게 분명한 앨리스 파비안(토드 헤인즈의 뮤즈인 줄리안 무어가 연기했다)이 조목조목 잭 롤린스의 위상을 설명하는 신 또한 이 대목이 <아임 낫 데어>를 통틀어 가장 팩트에 부합하고 있음을 제대로 보여준다.
Cold Irons Bound
Tom Verlaine and
The Million Dollars Bashers
'Cold Irons Bound'는 <아임 낫 데어> 안에 모인 리메이크 가운데 가장 독특하다. 80년대 이후 흘러간 거장 쯤으로 기억되던 밥 딜런이 97년 발표해 세상을 놀래킨 서른 번째 앨범 <Time Out of Mind>에 수록된 노래를, 전설적인 펑크 밴드 텔레비전(Television)의 기타리스트 톰 벌레인(Tom Verlaine)이 완전히 탈바꿈 했다. 원래 쾌활하고 야성적이었던 원곡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시종일관 느릿느릿 몽환적인 분위기가 이어진다. 영화도 그 지점을 정확히 간파해 드문드문 'Cold Irons Bound'를 배치했다. 드문드문? 한 노래를 한 시퀀스에서만 썼던 대부분의 경우와 달리, 'Cold Irons Bound'는 짤막한 소품처럼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됐다. 밥 딜런'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그 몽롱함을 극대화 하는 식이다. 우디가 기차에서 만난 괴한들을 피해 강물에 떨어졌을 때, 잠이 싫어서 각성제를 먹어서 한 달간 자본 적이 없다는 주드 퀸이 눈을 반쯤 뜬 채 미디어의 단순한 태도에 골몰하는 일련의 신에서 톰 벌레인의 아름다운 기타 노이즈가 빛을 발한다.
I Want You
Bob Dylan
히스 레저가 연기한 로비 클라크는 잭 롤린스의 전기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다. 토드 헤인즈가 설정한 밥 딜런의 범위가 얼마나 멀리 나아갔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로비를 통해 조명하는 건 딜런의 사랑과 결혼이다. 로비는 뉴욕의 한 카페에서 프랑스인 유학생 클레어(샬롯 갱스부르)를 처음 만나 서로에게 매혹된다. "지붕 위의 고양이들은 사랑에 빠져 교성을 질러댔고 난 들을 준비가 돼 있었다" 하는 내레이션과 맞물려, 로비와 클레어는 정열적으로 사랑을 나눈다. 앞서 언급한 <Blonde on Blonde>의 트랙 'I Want You'는 두 연인이 격렬하게 몸을 섞는 풍경을 수식한다. 다채로운 악기들로 채워진 포크록 사운드가 안겨주는 무한한 쾌감은, 파랗게 질린 듯한 방 안에서 살갗이 부딪히는 사랑의 열기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클레어는 그림을 그리고 로비는 독서하는, 오픈카를 탄 채 노랗게 물든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평화로운 풍경까지 아우른다. 'I Want You'가 이다지도 많은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하는 인용이다.
Ballad of a Thin Man
Stephen Malkmus and The Million Dollar Bashers
90년대 초 미국 인디록 씬을 호령한 페이브먼트(Pavement)의 스티븐 말크머스(Steven Malkmus)가 리메이크 한 'Ballad of a Thin Man'은 <아임 낫 데어>의 야심이 응축된 시퀀스에 등장한다. 깡마른 얼굴과 빠글빠글한 헤어 스타일부터, 포크 가수였던 밥 딜런이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록의 세계로 투신해 다수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던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주드 퀸. 그는 끈질기게 따라붙어 특정한 이미지를 강요하는 질문만 던지는 기자 키넌 존스(브루스 그린우드)와 설전을 벌이다가 결국 차에서 내린다. 이때부터 등장하는 'Ballad of a Thin Man'은 딜런과 미디어(와 대중)의 대립을 상징하는 6분이 넘는 시퀀스에 흐른다.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당신은 그게 뭔지 몰라. 안 그래, 미스터 존스?" 하는 후렴구가 일침을 가하는 듯한 노래를 주드가 무대에서 선보이는 가운데, 제 시선만 믿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미디어를 상징하는 키넌이 여기저기를 헤매는 난해한 이미지가 교차된다. 말크머스 버전의 'Ballad of a Thin Man'은 늘어지듯 시작해 점점 텐션이 붙어 작렬하는 에너지로 들뜷고 마는 원곡의 매력을 모범적으로 구현해 토드 헤인즈의 야심을 완성했다.
Goin' to Acapulco
Jim James and Calexico
밥 딜런은 샘 페킨파의 웨스턴 영화 <관계의 종말>(1973)에 조연 엘리아스로 출연한 바 있다. 리처드 기어가 연기한 빌리 더 키드는 <관계의 종말>의 주인공이었던 캐릭터였고, <관계의 종말>에서 빌리 더 키드 역을 맡았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아임 낫 데어>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이름으로 소개하면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빌리 더 키드는, 고속도로를 세운다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이 떠나 흉흉해지고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던 중 장례식을 보게 된다. 초점 없이 창백한 모습의 여자의 시체가 놓인 가운데, 얼굴을 하얗게 칠한 가수와 유니폼을 차려입은 악단이 딜런의 'Goin' to Acapulco'를 노래한다. 마이 모닝 재킷(My Morning Jacket)의 프론트맨 짐 제임스(Jim James)와 포크 밴드 칼렉시코(Calexico)가 협업해 딜런의 노래를 리메이크 했는데, 이들은 음악 작업뿐만 아니라 직접 <아임 낫 데어>에 출연해 장례식 신의 비감을 살렸다. 'Goin' to Acapulco'는 66년 딜런이 목숨을 잃을 뻔한 모터사이클 사고 이후 두문불출 하던 시기 밴드(The Band)와 함께 진행한 레코딩 세션 중에 만들어진 곡이다.
Knockin' on Heaven's Door
Antony and the Johnsons
2시간 넘게 영화를 지켜보면서 예상하듯, 관객은 결국 <아임 낫 데어>를 보면서 밥 딜런이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알게 되지 못한 채 (혹은 알 수 없는 사람이란 것만 알게 된 채) 결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딜런이 남긴 수많은 명곡으로 채워졌던 영화는 3개의 노래로 엔딩크레딧을 올린다. 딜런이 'Like a Rolling Stones'에서 "기분이 어때? 구르는 돌처럼 살아가는 것 말야"라고 내뱉는 걸 보다 보면, 영화 제목이기도 한 'I'm Not There'의 소닉 유스(Sonic Youth) 리메이크가 따라붙는다. 침잠하는 듯한 분위기만 빼면 원곡의 그림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해석이다. 수록곡 목록이 뜨면서 크레딧이 점점 마무리 되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앤토니 앤 더 존슨스(Antony and the Johnsons)의 'Knockin' on Heaven's Door' 리메이크가 나타난다. 연기뿐만 아니라 음악감독까지 맡은 <관계의 종말> 사운드트랙을 통해 처음 공개된 노래는 앤토니의 절절한 보컬이 더해지면서, 영화를 내내 감싸고 있던 죽음의 뉘앙스를 보다 또렷하게 한다. 밥 딜런은 <아임 낫 데어>가 개봉한 2007년에도, 13년이 지난 현재에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세상 어느 뮤지션보다 독창적인 태도로 라이브를 소화하고 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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