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한데요. 이젠 하다하다 예술계 블랙리스트까지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2016년 맞죠? 이거 꿈 아니죠?) 일명 '청와대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공개되었는데요. 추측이 실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사용하는 '블랙리스트'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계신가요? 네! 모두가 알고 계시다시피 (정부의) 감시를 당하는 사람의 명단입니다. 살생부라고도 합니다. 무시무시한 단어입니다.

띄어쓰기를 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하지만, 세계 영화의 중심지인 할리우드에서 '블랙 리스트'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아! 주의하실 것이 있습니다. (별표 돼지꼬리 땡땡!) 이 때는 꼭 띄어쓰기를 해야합니다.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 시나리오'라고도 하는데요. 대체 이게 뭘까요? 너무 궁금해집니다. (하하)

THE BLACK LIST

왠지 무겁고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지만, 의미는 간단합니다.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란 (여러가지 이유들로) 시나리오가 발표된 그해, 영화화되지는 못했지만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인정을 받은 시나리오들을 모아놓은 리스트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쉽게 말하면 시나리오(Script)는 아주 재미있고 나이스하지만 아직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한 시나리오들을 일컫습니다. 그런 시나리오들을 모아 놓은 것이 '블랙 리스트'입니다. 아주 간단하죠? 1년에 딱 한 번, 12월 둘째 주 금요일에 리스트가 발표됩니다.


언제부터, 누가, 왜?
블랙 리스트 창시자, Franklin Leonard

대체 누가 만든 거야?
블랙 리스트는 2005년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지금까지 총 11개의 블랙 리스트가 발행되었습니다. 이 블랙 리스트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Franklin Leonard'입니다. 그는 평생 블랙 리스트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우연히 블랙 리스트를 만들게 되었는데요. (세상 모든 천재는 우연으로 나오나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설립한 영화 프로덕션인 '애피언 웨이'에서 일하던 그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발굴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영화 관계자들에게 시나리오 평가를 부탁하게 됩니다. 이렇게 지인 몇명에게 평가받은 시나리오 리스트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블랙 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여 문서 파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짠!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지인의 평가로부터 시작한 블랙 리스트는 현재 약 600명 이상의 영화 관계자들에게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영향력있는 영화 사이트 중 하나가 되었죠.

https://blcklst.com (블랙 리스트 홈페이지)

왜 만든 거야?
'블랙 리스트'의 가장 큰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새로운 시나리오 작가 발굴과 탄탄한 시나리오를 더 많은 영화 관계자들과 공유하기 위함입니다. 시나리오가 넘쳐 흐르는 할리우드에서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읽히지도 못하고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그는 '블랙 리스트'를 통해 신인 시나리오 작가들이 제작사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만들고, 제작사들 역시 참신한 시나리오를 발견할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스템을 만든거죠.


뭐가 좋은 시나리오인데?

작품성보다는 '좋아요'
블랙 리스트에 올라가는 시나리오를 선정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다수의 영화 관계자들의 투표로 선정되는데요. 이때 투표자들은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에 투표를 하는 게 아닙니다. 가장 흥미로운 작품에 투표를 하게 됩니다. 즉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에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네가 읽어보고 가장 재밌는 시나리오에 투표를 해봐"라는 것이죠.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아닌 개인의 취향을 더욱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시나리오들이
영화화에 성공했을까?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에 오른 시나리오는 약 1067개. 그리고 이중에서 영화 제작에 성공한 작품들은 약 320여편인데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들도 많습니다. 왜 진작에 영화화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도 많구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요?


<주노>, 2007
각본: Diablo Cody
2005 블랙 리스트 선정

블랙 리스트에 오른 시나리오 중 처음으로 '최우수 각본상'을 받은 작품은 <주노>입니다. 영화의 포스터에 써있는 타이틀처럼 이 영화는 세상을 발칵 뒤집었습니다.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7위로 시작한 이 영화는, 개봉 5주차에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합니다. 미국 박스오피스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깁니다. 저예산 영화로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 시상식에서 상을 거머쥐게 되죠. 특히나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게 되는데요.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던 영화가 이렇게 성공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2008
각본: Simon Beaufoy
2007 블랙 리스트 선정

<주노>가 ('블랙 리스트'에 오른 작품 중) 첫 각본상을 안겨준 작품이라면,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처음으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작품상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는데요.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주제가상, 음향상까지 모두 8개의 트로피를 거머쥐게 됩니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우리가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때는 스타도 없고 힘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각본이 있었고, 그 각본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감독이 있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탄탄한 시나리오의 성공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플래쉬>, 2015
각본: Damien Chazelle
2012 블랙 리스트 선정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작품 <위플래쉬> 역시, 2012년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에 선정되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최고의 시나리오로 등극하며 많은 영화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위플래쉬>는 계속해서 영화화에 실패했죠. 젊은 신예 감독인 '다미엔 차젤레'에게 누구도 선뜻 투자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미엔 차젤레는 먼저, 단편영화를 제작한 뒤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했습니다. 이 단편영화는 상을 받게 되었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죠. 이렇게 어렵게 영화화에 성공한 <위플래쉬>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는데요!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남우조연상, 편집상, 음향상을 수상했습니다.

'뜻밖의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 세 작품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알 만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스포트라이트>, 2016
각본: Josh Singer&Tom McCarthy
2013 블랙 리스트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수상

<라이프 오브 파이>, 2012
각본: Yann Martel
2006 블랙 리스트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외 3개 부문 수상

<아르고>, 2012
각본: Chris Terrio
2010 블랙 리스트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색상, 편집상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에 올랐던 영화들

이렇듯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에 오른 시나리오들은 영화화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블랙 리스트'의 창시자인 Franklin Leonard는 "시나리오(작가)가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영화 제작의 원동력은 이야기다"라고 말했는데요. 이 말이 실제로 증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블랙 리스트'를 향항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블랙 리스트'에 오른 시나리오들 중에는 유명 작가가 쓴 작품들도 있고, 아직 제작만 착수하지 않았을 뿐 언젠간 다 영화로 만들어질 시나리오였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블랙 리스트'에 오른 시나리오들 가운데는 신인 작가들이 쓴 작품이 많습니다. 또한 영문으로 된 각본만 쓸 수 있다면 누구든지 '블랙 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있으니 신인 작가들에게는 기회의 문이 되었죠.

다음주 12월 12일, 1년에 딱 한 번 발행된다는 '블랙 리스트'가 공개되는 날입니다. 당장은 어떤 작품들이 성공할지는 알 수 없어도, 한 번 제목이라도 쓱~ 훑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나중에 스크린으로 만날 수도 있는 작품들이니까요! (https://twitter.com/theblcklst - '블랙 리스트' 트위터)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유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