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파서블 러브>

한동안 잠잠했던 장맛비가 다시 찾아올 예정이다. 그 말인즉슨, 지독한 습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 온몸이 끈적거리는 습기의 불쾌감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임파서블 러브>은 장맛비 같은 단 한 번의 사랑을 담고 있는 영화다. 주인공 '라쉘'의 삶을 풍요롭게 함과 동시에 수습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몬 단 한 번의 사랑. 바깥 광경은 잊은 채 아름다운 프랑스 풍경에 젖어들고 싶다면 7월 28일 개봉한 <임파서블 러브>를 추천한다.


<임파서블 러브>

로맨스 영화에서 해피 엔딩을 맞이한 커플은 끝을 알 수 없다. 카메라는 오직 사랑에 빠진 순간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에만 집념하기 때문이다. 사실 누가 궁금해하겠는가. 나중에 나이 들어 성격 차이, 집안 차이, 윤리관 차이 등으로 헤어지는 모습을. 그래서 해피 엔딩의 로맨스 영화는 매력적이다.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평생 서로를 사랑할 것처럼 보여서 환상적이다. 모든 사랑이 사랑으로만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피곤한 감정은 현실로도 족하다.

하지만 제목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임파서블 러브>는 불가능한 사랑을 조명한다. 로맨틱한 프랑스의 치명적인 로맨스 영화를 기대하고 들어왔다면 미리 사과하겠다. 이 영화는 로맨스 장르가 아니다. 사진만 봐서는 어째서 이들의 사랑이 불가능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듯하다. 주인공 '라쉘'과 '필립'은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환상의 케미스트리를 자랑하는 커플이니까. 그러나 뭐든지 간에 겉보기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들이 파티에서 서로를 붙잡고 춤을 추어도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사랑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해야지만 완전한 사랑이다.

<임파서블 러브>

타이피스트로 일하고 있는 '라쉘'은 프랑스 샤토루의 한 식당에서 '필립'을 처음 만난다. 인근 군부대에서 통역사로 일하던 '필립'이 '라쉘'에게 첫눈에 반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마음이 통한 둘은 자주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낸다. '라쉘'은 종종 무심하고 사려심 없는 '필립'의 말에 상처받는다. 무엇보다 자신과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말이 가장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쉘'은 사랑이라는 명목 하나로 '필립'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필립'이 파리로 직장을 옮기게 되고 '라쉘'은 자신이 임신했음을 깨닫는다. 편지로 그 사실을 밝힌다.

'라쉘'의 가난한 가족에 대한 모멸감을 은연중에도 드러냈던 '필립'이기에 그의 결정은 뻔하다. '필립'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딸 '샹탈'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야 딸의 존재를 인정할 뿐이다. 양육비를 보낸다든지 뒤늦은 결혼을 한다든지, 부모로서 책임진 건 없다. 종종 집에 들러 '샹탈'과 놀아주고 '라쉘'과 사랑을 나눈 것뿐이다. 하지만 '라쉘'은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가 올 때마다 반겨주고 재워준다. 진짜 가족이라고 할 순 없어도 나름대로 가족의 형태를 갖추었다. 믿기지 않지만 '필립'이 가끔 방문한다는 사실만으로 '라쉘'의 사랑은 연명한다. 이 영화엔 아름다운 사랑이 없다. 혼자만의 사랑이 비참하게 지속되고 있을 뿐. 하지만 딸 '샹탈'은 그 사실을 모른다.

<임파서블 러브>

친부 불명이라 쓰여있는 '샹탈'의 출생신고서가 모녀의 삶을 대변한다. '샹탈'은 어머니의 성을 따랐으며 아버지 없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렇다면 아버지인 '필립'이 미울 만도 한데 '샹탈'에겐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뒤늦게라도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온 것에 기뻐하고 '필립'을 멋진 아빠라고 표현한다. 아마 '샹탈'이 아빠에게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는 데에는 '라쉘'의 노력이 컸을 듯하다. '라쉘'은 자신의 딸에게 '필립'에 대한 모든 사실들을 함구하였다. 이는 딸을 위한 행동이지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고장 난 서랍장을 고칠 바엔 그 위에 천을 덮어버리는 사람처럼. '라쉘'은 가끔 찾아오는 사랑의 윤곽에만 집중한다. 그녀가 답답하고 미련하게만 보이는가?

지금의 시점에선 이 이야기가 시대착오적이며 가학적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영화 <임파서블 러브>는 1950년대의 프랑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크리스틴 앙고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작가의 어머니 시대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다. 딸 '샹탈'의 시선이 작가의 시선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라쉘'이 딸과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밝히지 않았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거의 여성들은 부당한 처우를 당하고도 스스로 감내하고 살아야만 했었으므로. 더불어 국적을 넘어서 생각해 보자. 과연 '라쉘'의 상황이 특수한 상황일까? 어쩌면 누군가에겐 지금도 <임파서블 러브>가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임파서블 러브>

갑작스레 연락해온 '필립'은 아버지 행세를 하고 싶어 한다. '라쉘'은 그를 거부하지 않고 '샹탈'과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만든다. '필립'과 만난 '샹탈'은 눈에 띄게 행복해하고 얼마 안 가 그를 동경하기까지 한다. 얼핏 보기에 셋은 행복하고 완벽한 가족처럼 보인다. '샹탈'이 '필립'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에게 숨겨왔던 감정이 들춰진다. <임파서블 러브>는 한 여성의 일생을 135분 안에 담은 영화다. 섬세하고 솔직한 문법으로 '라쉘'이 경험한 일들을 연출해냈다. 이 영화엔 명료하지 않은 장면이 없다. 연출과 서사, 전부 리얼리티에 가까운 영화로 볼 수 있다.

<임파서블 러브>의 감독 카트린 코르시니는 "페미니즘의 첫 세대가 된 우리 엄마들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에 걸맞게 이 영화는 '샹탈'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아빠이기에 '필립'을 동경했던 '샹탈'이 엄마의 시점으로 그를 되돌아보았을 때 어떤 심경이었을까. 처음부터 '필립'을 끊어내지 못한 엄마가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 세대가 견뎌왔던 폭력을 딸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건 긍정적인 제스쳐다. '샹탈'은 '라쉘'이란 여성의 삶을 복기함으로써 엄마를 용서하고 있다. 대물림된 악연이 원망스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은 엄마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이 영화 자체가 모녀가 공유하는 일종의 치유 과정으로 읽힌다.

<임파서블 러브>는 현재 로튼토마토 신선도 100%를 유지하고 있는 '퀄리티가 보장된 영화'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볼 수 있는 세자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신인여우상, 각색상, 음악상을 수상한 쾌거를 이뤄냈다. 지극히 사실적이기에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영화 <임파서블 러브>를 극장에서 만나보길 바란다.


씨네플레이 김다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