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의 필모그래피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는 그의 말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보여준다.  <학교 2013>(2012)에서 '숏컷 걔'로 얼굴을 알린 그는 이제 영화 <결백>(2020)에서 당당히 주연을 맡았다. 그의 행보를 톺아보면 드라마틱 한 변화나 전개는 없다. 조금씩 성장하며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간 자의 노력이 보일 뿐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데뷔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실제로 시작하니까 그게 아니더라. 나는 너무나 작은 사람이었다."라고 얘기하며 불안정 속에서 꾸준히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밝힌 적이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믿고 묵묵히 걸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진심을 담아 걸어온 힘. 신혜선은 신뢰가 주는 단단한 매력이 있는 배우다. 오늘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았다. 


시작조차 어려웠던 시간, 그리고 드디어 시작
'예고 전지현'이라 불리던 고등학교 시절 신혜선

신혜선은 8살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다고 말했다. 본인을 냄비처럼 확 끓어올랐다가 식어버리는 성격이라고 말하며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열망은 변함이 없었다고 밝혔다. 어려서부터 애니메이션과 연기, 이 두 가지만큼은 꾸준히 좋아한 그는 남들이 허황된 꿈이라고 말할 때에도 흔들릴지언정 포기하지 않았다. 

드라마 <학교 2013> 속 '숏컷 걔'

계속해서 꿈을 지켜 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선배님들 인터뷰 보면 '오디션 100번 떨어졌다' 이런 말 있잖아요. 저는 그 말도 부러웠어요. 늘 서류에서 떨어져서 오디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거든요. 정말 암울했죠."라고 말하며 데뷔  전 심정을 언급했다. 미래를 모르는 채로 준비를 한다는 것, 손에 잡히는 성과조차 없다는 것은 뼛속부터 배우 같아 보이는 신혜선에게도 불안한 일이었다. 이름 없는 단역조차 맡지 못하던 기간이 지나고, 그는 드라마 <학교 2013>으로 데뷔했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제 자리에서 빛을 발했던 그는 '숏컷 걔'로 불리며 시청자들에게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

(왼쪽부터) 영화 <리턴매치>(2014), 드라마 <인생은 새옹지마>, (2014)드라마 <엔젤 아이즈>(2014)

2014년에는 영화 <리턴매치>의 주연 역, 드라마 <인생은 새옹지마>에서 소라 역, 드라마 <엔젤 아이즈>에서 차민수 아역 역을 맡으며 착실히 실력을 키워나갔다. 전부 비중이 거의 없는 단역 및 조연이었지만 그는 어느 한 작품에서 튀는 법 없이 역할에 녹아들었다. 이후, 그는 드라마 <고교처세왕>에서 정수영(이하나)의 직장동료 고윤주를 맡았다. 젊은 커리어 우먼의 카리스마를 연기하며 까칠함, 도도함, 적당히 속물적인 모습을 자유자재로 보여줘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드라마 <고교처세왕>(2014)

볼 때마다 초면인 배우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2015) / '덜컹'하는 모습까지 청순할 수 있나.

본격적으로 신혜선의 얼굴을 알린 작품을 꼽으라 하면, 역시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아닐까. 그는 <고교처세왕>에서 함께한 유제원 감독과 양희승 작가와의 인연이 이어져 <오 나의 귀신님>에도 합류했다. 신혜선 스스로도 가장 아름다운 인연을 꼽으라 한다면 <고교처세왕>때의 인연을 꼽을 정도로 그에겐 발돋움이 된 작품이었다. <오 나의 귀신님>은 발돋움이 도약으로 이어진 모습이었다. 사고로 은퇴한 발레리나 강은희 역을 맡으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이때부터 그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로 불리며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2015)

청순함이 찰떡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 얄밉지만 싫어할 수 없는 뷰티 어시스트 한설 역을 맡아 푼수 모습을 보여줬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휙휙 새로운 옷을 입는 그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볼 때마다 초면인 배우'라 부르며 그의 캐릭터 소화력에 감탄을 표했다. 

(왼쪽부터) 드라마 <아이가 다섯>(2015),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2016)

드라마 <아이가 다섯>에서는 풋풋하고 순수한 연애를 하는 선생님 이연태 역을,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논리정연한 문화재 보존 과학자 차시아 역을 맡아 상반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름 있는 조연으로 성장한 그는 매 작품마다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어 내공이 탄탄한 배우임을 입증했다. 마치 백지 같은 모습에서 화려함까지, 그는 '도대체 못 하는 게 뭘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매력을 뽐냈다. 


드디어, 주연을 맡다
드라마 <비밀의 숲>(2017)

그는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수습 검사 영은수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메인급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출연한 작품 중에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것도, 단독 포스터가 있는 것도 <비밀의 숲>이 처음이었다고 밝히며 남다른 감회를 드러냈다. 풍부한 감정을 드러냈던 이전의 캐릭터와 달리, <비밀의 숲>에서는 욕망과 목적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인물이다. 새로운 도전을 한 신혜선은 '영또(영은수+또라이), 영꿀오소리(영은수 + 벌꿀오소리), 불나방'이란 별명을 얻으며 변신에 또 한 번 성공했음을 알렸다. '아빠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면 앞뒤 없이 달려드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민폐 캐릭터로 생각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을 때도 있었지만 우려가 무색할 만큼 시청자들은 영은수의 저돌적인 모습을 사랑했다.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2017)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주인공 서지안 역을 맡으며 이제는 명실상부한 주연급 배우임을 인정받았다. 서지안은 비굴해져야만 하는 인생 속에서도 끈기를 잃지 않고 가는 캐릭터였다. 섬세한 감정 연기가 필요한 역이었는데,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그는 2018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여자 최우수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최고 시청률 45.1%를 달성하며 '믿음 가는 배우'로 성장한 신혜선.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2018)

그는 이후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서 열일곱 살에 코마에 빠졌다가, 서른 살에 깨어난 우서리를 연기했다. 우서리는 정신과 육체가 불일치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뒤늦은 성장통을 겪는 캐릭터다. <고교처세왕>, <그녀는 예뻤다> 이후로 세 번째 함께 작업하는 조성희 작가는 그를 '좋은 배우'라고 표현하며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었다.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그 인물처럼 보이게 연기해내는 좋은 배우란 믿음이 백 퍼센트를 넘어 만 퍼센트 정도 있었다"라며 그를 캐스팅한 이유를 말했다. 무조건적인 믿음이 가는 배우. 그만큼 신혜선을 표현하기 좋은 말이 있을까. 

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2019)

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에서는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선을 보여주며 '눈동자가 연기하는 배우'란 칭호를 얻었다. 그는 최고의 발레리나였지만 사고로 인해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연서를 연기했다. 드라마의 총괄 안무를 맡은 현대무용가 최수진은 완벽하게 발레리나로 변신한 신혜선의 모습을 보고 '대단한 노력파다. 너무 잘해줘서 눈물이 났다'라고 말했다. 단역부터 꾸준히 이어진 그의 노력은 어느 자리를 가나 변치 않았다. 신혜선의 빛나는 노력 덕분이었을까. 그는 2019 KBS 연기 대상에서 여자 최우수상과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다.  

이제 그는 TV를 넘어 스크린에서도 주연을 맡게 된다. 바로, 영화 <결백>(2020)이다. 신혜선은 대형 로펌 에이스 변호사 정인 역을 맡았다. 가족을 등진 채 홀로 성공한 그는 살인 용의자가 된 어머니 화자(배종옥)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다. 신혜선의 행보는 이제 신뢰의 한 걸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신혜선은 또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영화 <결백>은 6월 10일 개봉했다.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