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맥도먼드

지난 3월 5일(한국시각) 열린 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는, <쓰리 빌보드>의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말할 때였다. 온몸 가득 흥분을 드러낸 채 <쓰리 빌보드>의 감독 마틴 맥도나, 동생 도로시, 그리고 남편 조엘 코엔과 아들 페드로에게 감사를 전하던 맥도먼드는, 트로피를 내려놓고 “여기에 계신 모든 부문의 여성 후보자들께서는 저와 함께 일어서주신다면 큰 영광일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같은 부문에 오른 메릴 스트립, 샐리 호킨스, 시얼샤 로넌, 마고 로비 네 배우는 물론 제작자, 프로듀서, 감독, 작가, 촬영감독, 작곡가, 디자이너 등 여성 영화인들이 일어나 환희를 공유했다. 그리고 맥도먼드는 두 단어를 남기고 무대를 떠났다.
 

Inclusion Rider

 
인클루전 라이더. 우리말로 ‘포용 특약’. 영어권 나라의 사람들에게조차(두 단어는 시상식이 있던 날 밤 미리엄 웹스터 사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낱말이었다) 낯설게 들리는 이 단어, 대체 무엇일까? ‘포용 특약’은 인권/노동 변호사 칼파나 콜터걸과 배우 팬셴 콕스가 초안을 작성하고 미디어학자 스테이시 스미스가 전개시킨 개념이다. 할리우드 대작의 주연을 맡는 소위 A급 배우가 출연 계약 시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인물을 배우 및 제작진으로 구성할 수 있게끔 요구할 수 있는 조건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 용어는 스테이시 스미스가 2016년 진행한 TED 강연 <할리우드 성차별 이면의 데이터>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TED 강연에서 스미스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8년간 매해 높은 수익을 기록한 상위 100편의 영화 가운데서 ‘한 단어의 대사라도 있는’ 캐릭터를 모두 모아 성, 인종, 민족, 성소수자, 장애를 기준으로 분류해본 바, 눈에 띄는 차별적 징후를 발견했다고 밝힌다. 800편의 작품 가운데 대사가 있는 여성은 전체 1/3도 채 되지 않고, 이 비율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는 물론, 저 옛날 1946년부터 1955년까지의 데이터와 견주어봐도 변함이 없었다고 꼬집는다. 2015년의 기준으로 보면 상위 100편 가운데 흑인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48편에서, 아시아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이 70편에서, 장애가 있는 여성이 84편에서, 성소수자 여성이 93편에서 단 한 명도 대사 있는 캐릭터로 등장하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그들은 엄연히 “삭제된 것”이고 이를 “보이지 않는 전염병”이라고 일갈한다.

800편을 연출한 886명의 감독들 중 여성은 4.1%에 불과하고, 아프리카인 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3명, 아시아인은 단 한 명이기에 이를 해결할 길이 여전히 묘연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스테이시 스미스는 이런 문제를 타개할 방법들 중 하나로 ‘포용 특약’을 들며, 이것이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할 수 있도록 명기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에 사는 여성들을 청중으로 초대해 진행한 강연에서 이렇게 제시된 개념은,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목소리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여성 영화인들이 다함께 기립박수를 보낸 바로 그 순간에.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자 넷. (왼쪽부터) 샐리 호킨스, 시얼샤 로넌, 마고 로비, 메릴 스트립.


맥도먼드의 ‘포용 특약’에 대한 즉각적인 지지가 잇따랐다. 재작년 영화 <룸>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의 여성 히어로 솔로무비 <캡틴 마블>의 주인공이 된 브리 라슨,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사실을 일찌감치 폭로한 애슐리 쥬드, 여성 캐릭터 위주 영화 가운데 눈에 띄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피치 퍼펙트’ 시리즈의 주연/제작자 엘리자베스 뱅크스, 1970년대부터 여성 인권에 힘써온 전 테니스 챔피언 빌리 진 킹 등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제는 우리 관객들이 꾸준한 관심과 올바른 소비로써 '새로운 영화'에 힘을 보탤 차례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