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동료는 오늘의 적. 7월, 극장가 부활 신호탄을 쏜 <블랙 위도우>의 제작사 월트 디즈니 컴퍼니(이하 디즈니)와 주연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현 관계를 이보다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블랙 위도우>가 개봉하고 3주 후, 스칼렛 요한슨이 월트 디즈니를 고소하고 디즈니 또한 이에 대응한 이번 사건은 단순한 고소전을 넘어 할리우드 영화인들과 제작사들이 주목하는 사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7월 7일부터 어떤 일이 있었길래, 블랙 위도우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주인이 맞붙게 된 걸까.
2021년 3월
디즈니가 <블랙 위도우> 개봉일을 공개했다. 영화는 본래 2020년 5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전 세계 극장가가 어려워지자 수차례 개봉을 연기했다. 1년 후, 백신이 보급돼 극장가가 그나마 정상화되면서 디즈니는 극장과 자사의 OTT 플랫폼 디즈니+ 동시 공개를 선택했다. <블랙 위도우>를 곧바로 볼 수 있는 디즈니+의 '프리미어 액세스'는 디즈니+ 구독자라도 30달러를 추가 지불해 구매해야 한다.
7월 9일
블랙 위도우 개봉일(한국은 7일 5시부터 개봉했다). <블랙 위도우>는 개봉 이후 지금까지 북미 지역에서 1억 8000만 달러, 월드 와이드에서 약 3억 70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수치상으론 2021년 개봉작 중 북미 지역 1위, 월드 와이드 5위에 해당하는 흥행작이긴 하나 MCU 영화 중 <인크레더블 헐크>를 빼면 꼴찌다. 세계 어디든 극장이 완벽하게 정상화된 곳이 없을뿐더러,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인 중국이 <블랙 위도우> 개봉을 잠정 연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디즈니는 <블랙 위도우>가 디즈니+ 프리미어 액세스로 6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했지만, 개봉 2주차에 1주차보다 수익이 68% 감소해 MCU 영화 중 최악의 드롭률을 기록한 것이 프리미어 엑세스로 불법 파일이 유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7월 29일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에 스칼렛 요한슨이 디즈니를 상대로 한 소송이 접수됐다. 요한슨 측은 디즈니가 극장 개봉과 디즈니+ 공개를 동시에 해서 배우 수익에 상당한 손실을 봤다는 부분이다. 여기서 한 번 짚어야 할 부분은 할리우드 배우들의 출연료 조항이다. 주연을 맡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배우는 계약에 따라 출연료와 별개로 '백엔드', 일반적으로 러닝개런티라고 부르는 흥행 수익 대비 보너스를 받는다. 요한슨 측은 극장과 디즈니+ 동시 개봉이 발표된 후 디즈니와 접촉해 새로운 계약 협상을 제안하려 했으나 디즈니가 무시했다고 밝히면서, 디즈니의 동시 공개로 극장 수익이 줄어 배우의 백엔드 수익의 손실을 유발한 점, 자사의 OTT 서비스 인지도와 수익을 챙긴 점 등을 쟁점으로 주장했다. 이에 따라 요한슨은 5천만 달러가량의 손해를 입었기에 디즈니를 고소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 네 시간 후
디즈니가 요한슨의 소송에 응답했다. 디즈니는 요한슨 측이 "코로나19 판데믹에 따른 장기화된 세계적 영향력을 무시한다"(callous disregard for the horrific and prolonged global effects of the COVID-19 pandemic.)고 말하며 본인들은 계약을 준수했고 디즈니+ 수익에 따라 출연료 2천만 달러 외에 추가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요한슨 측 변호사는 요한슨이 디즈니의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으며 요한슨의 에이전시 CAA(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는 "(요한슨은) 디즈니와 주주들에게 수십억을 벌어준 9편을 함께 한 파트너였다"고 디즈니의 공격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8월 6일
스칼렛 요한슨의 소송을 두고 찬반 여론이 등장했다. 디즈니 측 변호사는 이번 소송건을 "소송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한 PR"이라고 언급했다. 동시에 계약서에 쓰여있는 조항은 매우 명확하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미국 배우 노조 SAG-AFTRA의 회장은 디즈니의 직전 발언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업계에서 일하는 누구도 예상한 보상금이 갑작스럽게 삭감되는 일의 희생자가 돼선 안 된다. 디즈니와 여타 콘텐츠 회사들은 잘하고 있지만 회사의 수익을 올려주는 예술인들에게 확실하게 보상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8월 17일~8월 20일
스칼렛 요한슨이 애니메이션 <개들의 섬>에서 호흡을 맞춘 웨스 앤더슨 신작에 출연한다고 밝혔다. 이번 캐스팅 소식은 두 사람의 재회만으로도 기쁘지만, 할리우드 영화계가 스칼렛 요한슨의 소송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시선으로도 비쳤다. 또한 8월 20일, <듄>의 개봉을 앞둔 드니 빌뇌브가 요한슨의 소송을 옹호했다. 그는 "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가 계약서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부터 나는 내 영화가 극장에서 우선적으로 상영한다는 조건을 계약서에 요구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드니 빌뇌브 또한 극장과 HBO MAX 동시 공개를 고려하는 워너 브러더스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그 사이에 몇몇 루머들이 돌았다. 하나는 워너 브러더스에서 스칼렛 요한슨에게 DCEU 출연을 제시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지난 6월 23일 발표한 <타워 오브 테러>가 무산됐다는 것. <타워 오브 테러>는 디즈니 월드에 있는 동명의 어트랙션을 영화화하는 작품으로 스칼렛 요한슨이 제작과 주연을 맡을 예정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취소됐다는 얘기가 돌긴 했으나 아직은 루머 단계다.
8월 21일
디즈니가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을 통해 비공개 중재를 요청했다. 디즈니 측은 <블랙 위도우> 개봉은 판데믹을 고려하면 훌륭한 결정이었으며 스트리밍 수익 또한 백엔드 조건에 추가하려 했다고 밝혔다. 디즈니는 주요한 조항을 삭제한 계약서를 법정에 제출하며 중재 쪽으로 상황을 이끌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요한슨 측은 디즈니와 영화 제작에 착수한 2019년에 '1500개 스크린 이상의 광범위한 극장 개봉'(wide theatrical release)을 분명히 언급했으며 양측 모두 '90~120일 동안의 극장 독점 개봉'으로 인식했노라고 반박했다.
8월 23일
스칼렛 요한슨 측이 디즈니의 중재 요청을 거절했다. 양측은 결국 한 달 만에 본격적으로 소송전에 들어갔으며 법정 싸움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