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개봉한 독특한 제목의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겨우 움직일 수 있고 시력까지 잃게 된 남자 야코의 이야기다. 그가 방안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여정을 그린 영화는 90여 년에 걸친 베니스국제영화제 최초로 관객상을 수상했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와 더불어 한 배우, 한 캐릭터가 영화 전체를 이끄는 원맨쇼 영화들을 소개한다.


은밀한 영광
Secret Honor, 1984

70년대 수많은 걸작들을 쏟아낸 거장 로버트 알트먼의 필모그래피는 80년대에 더 모험적인 영화들로 채워졌다. <은밀한 영광>이 바로 그 대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처드 닉슨(필립 베이커 홀) 전 대통령이 홀로 방 안에서 워터게이트 사건과 사임을 둘러싼 배경, 그리고 자신의 삶까지 토로하는 모습을 90분 동안 끈질기게 따라잡는다. 연극 경력이 두터운 작가 도널드 프리드가 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영화는 마치 일인극을 보고 있는 듯한 감흥을 안기는데, 닉슨이 끊임없이 쏟아내는 대사만 쫓아가도 손색이 없을 만큼 몰입도가 상당하다. 알트먼이 미시간대학교의 교편을 잡았을 당시 교내 공간에서, 16mm 필름으로 일주일 만에 촬영을 마친 <은밀한 영광>은 그의 연출력이 얼마나 자유롭고 능수능란하고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은밀한 영광>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손꼽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영화의 유일무이한 배우 필립 베이커 홀을 초창기 모든 작품에 캐스팅하며 편애를 드러낸 바 있다.

이미지 준비중
은밀한 영광

감독 로버트 알트만

출연 필립 베이커 홀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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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
Moon, 2009

던컨 존스 감독은 60년대부터 우주를 향한 관심을 드러내 온 뮤지션 데이빗 보위의 아들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존스의 장편 데뷔작 <더 문> 역시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때는 2035년, 지구에 공급할 에너지를 모으는 달 기지 '사랑'에서 3년째 근무 중인 샘 벨(샘 록웰)은 귀환을 2주 남겼을 때 달에서 작업하다가 사고를 당하고, 기지에서 깨어난 그는 사고 당한 그 자리에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목격한다. 이와 같은 <더 문>의 독특한 설정은 또 다른 샘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스릴러적 텐션보다는 같은 기억을 공유한 그들이 함께 달에서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쌓아가는 데에 기능한다. 던칸 존스가 샘 록웰을 상정한 채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작품인 만큼 록웰의 세심한 연기가 빛난다.

더 문

감독 던칸 존스

출연 샘 록웰, 케빈 스페이시

개봉 200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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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드
Buried, 2010

<베리드>는 당최 에두르는 법이 없다. 영화가 시작하면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는 이미 관에 갇혀 있고,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이 상황의 전말을 알게 된다. 이라크에 근무하는 미국인 트럭 운전사인 폴이 가진 건 고작 라이터, 칼, 휴대폰이 전부. 휴대폰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회사와 친구, 심지어 국방부에 연락을 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베리드>가 놀라운 건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이 관에 갇히기 전에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을 붙여넣는 꼼수를 부리지 않더라도, 95분 러닝타임 내내 한 공간에서 다양한 장르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는 점이다. 이듬해 개봉한 레이놀즈의 히어로 영화 <그린 랜턴>(2011)의 1%에 해당하는 200만 달러로 제작된 <베리드>는 10배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이고, 비평적으로 두루 호평받는 성과를 거뒀다.

베리드

감독 로드리고 코르테스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개봉 201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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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시간
127 Hours, 2010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를 통해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쥔 영국 감독 대니 보일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127시간>을 내놓았다. 등산가 애런 랠스턴이 2003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홀로 등반을 하다가 굴러 떨어진 암석에 오른팔이 짓눌려 절벽 사이에 갇히게 된 (제목 그대로) 127시간을 펼쳐놓는다. 스타일리스트로 정평 난 대니 보일답게, 애런이 생존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면서 틈틈이 자신의 상태를 비디오카메라(실제 사고 당시 애런이 썼던 그 카메라다)로 기록하는 과정을 다양한 촬영 기법을 통해 담아내면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의 한계를 극복했다. 킬리언 머피, 샤이아 라보프 등이 거론되던 아론 역을 맡은 제임스 프랭코는 <127시간>으로 유일하게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27 시간

감독 대니 보일

출연 제임스 프랭코

개봉 201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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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
Locke, 2013

이 기획에서 소개하는 작품 대부분이 뜻밖에 역경을 맞이하게 된 인물을 다루지만, <로크>는 결이 조금 다르다. 건설현장 감독 이반 로크(톰 하디)는 커리어 중 가장 큰 프로젝트를 앞둔 전날 밤, 하룻밤을 같이 한 여자가 자기 아이를 낳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병원으로 가는 중이다. <로크>의 주인공 이반은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스스로 고립에 빠진다. <이스턴 프라미스>(2007)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드라마의 각본을 써온 스티븐 나이트 감독의 데뷔작 <로크>는 줄곧 이반이 병원으로 가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나누는 모습을 비추면서, 탈출의 쾌감이 아닌 인간으로서 도리를 추구하려는 이가 부딪히는 딜레마를 포착한다. 각기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가 쏟아지지만 카메라에 모습이 비춰지는 건 오직 톰 하디뿐. 이제는 영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된 올리비아 콜먼, 톰 홀랜드 등이 목소리 연기를 보탰다.

로크

감독 스티븐 나이트

출연 톰 하디, 올리비아 콜맨, 앤드류 스캇

개봉 201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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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이즈 로스트
All is Lost, 2013

J.C. 섄도어 감독은 케빈 스페이시, 재커리 퀸토, 제레미 아이언스, 폴 베타니 등 수많은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데뷔작 <마진 콜>(2011)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다음 작품은 오로지 한 배우에 집중한 <올 이즈 로스트>다. 그 주인공은 원로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한 중년 남성(따로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이 요트를 타고 인도양을 항해하다가 선적 컨테이너와 충돌해 침수돼 홀로 바다에 표류하며 생존해나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105분의 러닝타임에도 시나리오는 32페이지 분량밖에 되지 않았는데, 레드포드 역시 물난리를 견뎌내는 액션보다 홀로 대사를 치며 영화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것 자체에 더 큰 고충을 느꼈다고. 포스터가 주인공이 격랑을 헤쳐가는 모습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 이즈 로스트>는 재해로 인한 위기보다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주인공이 불안과 안도 속에서 어떻게 고독을 감당하는지 보여주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올 이즈 로스트

감독 J.C. 챈더

출연 로버트 레드포드

개봉 201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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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Sokea mies, joka ei halunnut nähdä Titanicia, 2021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의 주인공 야코가 불편한 몸을 겨우겨우 가누며 보내는 하루 중 가장 큰 낙은 아직 얼굴은 못 본 채 전화로 연애 중인 시르파와의 통화다. 대단한 영화광이기도 한 야코는 시르파에게 일상의 많은 것들(영화 제목이 뜻하는 바도 그 중 하나)을 영화에 빗대며 이야기한다. 혈액염을 앓고 있는 시르파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야코는 보호자 없이 홀로, 무려 1000km 떨어진 곳에 사는 시르파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야코를 연기한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역시 야코와 같은 병을 앓는 배우다. 영화는 그의 눈높이와 시력에 맞춘 이미지로써 관객에게 야코가 느끼는 감각을 체험케 한다. 집에서는 물론, 시르파를 향해가는 여정에 마주하는 온갖 상황에서도 위트와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는 연민 그 이상의 감정을 심는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감독 티무 니키

출연 마리아나 마야라

개봉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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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