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인기를 논할 때, 일반적으로 흥행 기록을 꺼내곤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았는지 공식적으로 집계된 수치이기 때문.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두 극장에 가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든 극장에 가지 않고 불법 다운로드, 흔히 말하는 '불따'로 영화를 보곤 한다. 지난 2월 7일, 해외 매체 버라이어티가 리서치 업체 '무소'의 자료를 토대로 2022년 가장 많이 불법 다운로드된 영화 10편을 공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니 인기는 인기인데, 영화사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인기를 얻은 영화들은 무엇이었을까.
엔칸토: 마법의 세계 (6%)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2021년 11월에 개봉했다. 각자 초능력을 타고난 마드리갈 가족 중 유일하게 초능력이 없는 미라벨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 개봉 당시 흥행은 2억 5000만 달러. 딱 본전을 뽑은 수준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치곤 주목도나 인기가 높은 편은 아녔다. 하지만 OTT 플랫폼에 공개되며 OST(We Don't Talk About Bruno)가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는 등 뒤늦게 열풍을 맞이했다. 이 열풍에 힘입어(?) 2022년 불법 다운로드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OTT 플랫폼에서 최단기간 2억 시간 시청 기록도 세웠다는데, OTT가 아니었으면 이 리스트의 더 높은 곳에서 볼 수도 있었을 듯싶다.

- 엔칸토: 마법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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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자레드 부시, 바이론 하워드, 채리스 카스트로 스미스
출연 다이앤 게레로, 스테파니 비트리즈, 윌머 발더라마, 렌지 펠리즈, 앤지 세페다
개봉 2021.11.24.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7%)
2015년에 시작한 <쥬라기 월드> 삼부작의 마침표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2022년 6월에 개봉했다. 전작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의 사건으로 난리 난 세상을 수습하는 주인공들의 고군분투가 이어진다. <쥬라기 공원> 세 주인공이 합류하면서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영화는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10억 달러를 돌파하긴 했는데, 전작들의 성적(각 16억, 13억 달러)에 비하면 턱걸이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 <쥬라기 월드> 시리즈를 아우르는 마지막 영화임을 고려하면, 불법 다운로드 9위가 의외로 낮아 보이기도. 아마도 영화 볼 사람들은 정말 다 극장에서 봤나 보다.

-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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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콜린 트레보로우
출연 크리스 프랫,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개봉 2022.06.01.
탑건: 매버릭 (8%)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면, 이 8%의 다운로더가 엄청 불쌍하게 여겨질지 모르겠다.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은 '매버릭' 피트 피첼이 훈련학교 교관으로 신입들을 교육하는 과정을 다뤘다. 실제 전투기를 이용한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캐릭터들의 매력으로 14억 8800만 달러를 벌어들여 2022년 최고의 흥행 영화에 등극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개봉했는데 '극장에 꼭 가야 하는 이유'로 언급될 만큼 큰 스크린과 사운드가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이 8%의 사람들은 과연 끝까지 극장에 가지 않았을지 궁금하다.

- 탑건: 매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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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셉 코신스키
출연 톰 크루즈, 제니퍼 코넬리, 마일즈 텔러
개봉 2022.06.22.
이터널스 (8%)
2021년 11월 개봉한 <이터널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신작으로 태초부터 인류를 지켜준 이터널스들이 데비안츠를 막기 위해 다시 모이는 스토리를 담았다. 국내엔 마동석이 출연하는 것으로 주목받았는데,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와는 사뭇 다르게 드라마에 무게를 둬 호불호가 갈렸다. 전 세계 4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MCU 이름값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 같은 해에 개봉한 <블랙 위도우>,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없는 이 순위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는데 뒤늦게나마 찾는 사람이 많은 건지, 아니면 정말 잊고 있다가 '이런 영화가 있었지'하고 찾는 건지 궁금하다. 다른 MCU 영화에 비하면 세계관 연계가 옅은 편이라 지금 챙겨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지도.

- 이터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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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로이 자오
출연 안젤리나 졸리, 마동석, 리차드 매든, 쿠마일 난지아니, 셀마 헤이엑, 젬마 찬, 로런 리들로프,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배리 케오간, 리아 맥휴
개봉 2021.11.03.
언차티드 (8%)
동명의 게임을 영화로 옮긴 <언차티드>. 네이선 드레이크와 빅터 설리반이 마젤란의 황금을 찾아 나서는 어드벤처 영화다. 제작 과정에서 엎어지기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제작에 착수했는데, 코로나19로 개봉이 미뤄지는 등 개봉까지도 순탄치 않았다. 원작 팬들에겐 아쉬워도 일반 관객에겐 꽤 볼만한 영화여서 4억 달러를 돌파해 속편 제작까지 기정사실화됐다. 이 순위대로만 보면 <탑건: 매버릭>, <이터널스> 같은 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인기란 건데 속편의 전망이… 밝은지도? 적어도 톰 홀랜드에겐 '스파이더맨'과 함께 든든한 연금 시리즈가 될 듯하다.

- 언차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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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루벤 플레셔
출연 톰 홀랜드, 마크 월버그, 소피아 테일러 알리, 타티 가브리엘, 안토니오 반데라스
개봉 2022.02.16.
블랙 아담 (9%)
지금까지 2021년, 늦어도 2022년 여름 개봉작이 즐비한 이 순위에서 진짜 따끈따끈한 신작이 등장했다. <블랙 아담>은 2022년 10월에 개봉했는데도, 단 2개월 만에 불법 다운로드 순위 5위에 오른 것이다. 이 정도 인기면 흥행도 상당했겠지? 천만의 말씀. 영화는 4억 달러도 돌파하지 못해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안 넘었다'로 갑론을박이 될 지경이다. 드웨인 존슨이 안티히어로 블랙 아담을 맡은 이 영화는 드웨인 존슨의 스타성, 빌런 같은 히어로 블랙 아담의 캐릭터성, 영화 쿠키에 깜짝 등장하는 카메오 등등 기대는 모았으나 흥행은 미적지근했다. 그런 상황을 의식하고 <블랙 아담>의 흥행 성적과 불법 다운 순위를 비교하면 이쪽이 인기, 화제의 척도는 맞는 것 같다.

- 블랙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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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자움 콜렛 세라
출연 드웨인 존슨, 노아 센티네오, 피어스 브로스넌, 퀸테사 스윈들, 알디스 호지, 사라 샤이
개봉 2022.10.19.
토르: 러브 앤 썬더 (9%)
<블랙 아담>에 질세라 MCU에도 동일한 수치를 가리킨 영화가 있다.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타노스와의 결전 이후 토르가 신 도살자 고르를 막기 위해 나선다는 내용이다. MCU에서 하차했던 나탈리 포트만과 <토르: 라그나로크>를 성공시킨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복귀로 2022년 가장 많은 기대를 받은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봉 후 과하게 코믹한 분위기로 호불호가 갈렸지만, 역시 MCU 신작답게 7억 6000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 그만큼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도 불법 다운로드 순위에 오르다니. 썩어도 준치가 아니고 썩어도 MCU 인가 보다.

- 토르: 러브 앤 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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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출연 크리스 헴스워스, 테사 톰슨, 나탈리 포트만, 크리스찬 베일, 크리스 프랫, 타이카 와이티티
개봉 2022.07.06.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10%)
이어진 3위도 MCU가 차지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으로 2022년 5월에 개봉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다크홀드에 세뇌된 완다 막시모프를 막고자 멀티버스를 종횡무진하는 이번 영화는 MCU답지 않게 무척 어두운 분위기, 드라마에서 이어지는 스토리 등 진입 장벽이 높았는데도 9억 5천만 달러를 벌여들여 MCU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이때까지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법 다운로드까지 상위권이라니. 오랜만에 돌아온 닥터 스트레인지와 MCU가 보여줄 멀티버스가 얼마나 기대를 모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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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샘 레이미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엘리자베스 올슨
개봉 2022.05.04.
더 배트맨 (13%)
방금 소개한 3위와 앞으로 소개할 1위가 부러울 2위는 <더 배트맨>. 자경단 초년생 배트맨이 고담을 흔드는 테러리스트 리들러를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3시간에 걸쳐 배트맨과 고담을 깊이 있게 그렸다. 2022년 3월에 개봉했는데 벌어들인 금액은 7억 7000만 달러. 3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 기존 DC 영화의 불안불안했던 행보, 2억 달러의 제작비를 생각하면 대성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1위, 3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익이 낮은데 불법 다운로드 2위이기 때문에 <더 배트맨> 입장에선 이 다운로더들이 밉지 않을까.

- 더 배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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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맷 리브스
출연 로버트 패틴슨, 앤디 서키스, 조 크라비츠, 폴 다노
개봉 2022.03.01.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21%)
대망의 1위는 2021년 최고 흥행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다. 흥행도 1위, 불법 다운로드도 1위. 그야말로 인기작 중 인기작인 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정체가 밝혀진 스파이더맨/피터 파커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기억을 지우는 마법을 부탁했다가 벌어진 소동을 그린다. 멀티버스의 일환으로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엄청난 환호를 받았고, 19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분명 극장에서 N차한 관객도 많을 텐데 불법 다운로드까지 1위라니. 그것도 비중이 21%나 돼 2위 <더 배트맨>과 8% 차이 나는 압도적인 1위. 이제는 그 어떤 히어로보다 스파이더맨이 가장 인기가 많다는 일부 팬들의 주장이 슬슬 사실이 돼가는 모양이다.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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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존 왓츠
출연 톰 홀랜드, 젠데이아 콜먼, 베네딕트 컴버배치, 존 파브로, 제이콥 배덜런, 마리사 토메이, 알프리드 몰리나
개봉 2021.12.15.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