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는다. 자유의 나라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미국 캔자스주는 미국 내 가장 강력한 트랜스젠더 규제법이 생겼는데,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 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에서는 여성의 정의를 “태어날 때부터 난자를 생산하도록 만들어진 생식 체계를 지닌 사람”으로 생물학적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는 어떨까? 2023년 3월 기준, 법원에서는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을 허가하면서 ‘성전환 수술’은 필수요소가 아님을 밝혔다. “생식능력 박탈 및 외부성기의 변경을 강제한다면, 인간의 존재 이유이자 가장 기본적 욕구인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함(중략)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박탈하게 된다”고 결정의 이유를 덧붙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에게 남성 전용 입원 병동을 안내하는 등 사회적 합의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야기, 오늘은 그 면면을 다양한 시선에서 살펴보는 트랜스젠더 영화들을 추천하고자 한다. 


<대니쉬 걸>(2016)
감독 톰 후퍼
출연 에디 레드메인, 알리시아 비칸데르

<대니쉬 걸>(2016)

<대니쉬 걸>은 세계 최초로 현대적인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릴리 엘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1920~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이야기지만 그를 둘러싼 시선과 그가 겪었던 괴리감과 고독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성 시절의 이름은 에이나르 베게너로, 덴마크 왕립 예술학교에 다니던 그는 게르다 괴틀립을 만나 결혼한다. 게르다는 화가였는데, 모델이 나오지 못하자 남편에게 여장을 권유한다. 이때, 처음으로 여장을 한 그는 난생처음 자신의 인생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이후 여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아내와 이성적 사랑을 나누진 못하지만, 서로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던 두 사람은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간다. 서로의 예술성을 존중하고, 영감을 주고받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반자다. 한때 자신을 ‘이성적으로’ 사랑한다 믿었던 남편이 여성의 삶을 선택하고, 다른 남성과 키스하는 모습을 보면서 게르다는 큰 충격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내 그의 예술을 존중했던 것처럼 그의 삶을 존중하기로 한다. 

당시 덴마크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정의할 만큼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심했는데 릴리 엘베는 여성으로 인정했다. 둘 다 여성인 부부는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강제로 이혼시켰는데, 그게 오히려 릴리 엘베가 여자임은 인정한 것이라 트랜스젠더를 인정한 셈. <대니쉬 걸>은 릴리 엘베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연출한 것은 물론, 영화적 아름다움까지 지켜냈다. 1920년대 덴마크를 배경으로 그 시대의 아름다움과 색감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겼다. 특히 무도회 장소인 샤를로텐보르 궁전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져들게 만든다. 출연진의 연기 역시 빼어났는데, 특히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는 릴리 엘베를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약 1년 동안 여성의 신체적인 특성을 연구하고 익혔다고. 

대니쉬 걸

감독 톰 후퍼

출연 에디 레드메인, 알리시아 비칸데르, 앰버 허드, 벤 위쇼,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에머랄드 펜넬, 세바스티안 코치, 애드리언 쉴러, 리차드 딕슨, 핍 토렌스

개봉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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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우먼>(2017)
감독 세바스찬 렐리오
출연 다니엘라 베가, 프란시스코 리예스

<판타스틱 우먼>(2017)

칠레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판타스틱 우먼>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자신은 ‘연인을 살해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마리나(다니엘라 베가)는 트랜스젠더로 낮에는 웨이트리스, 밤에는 재즈바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겐 사랑하는 연인 오를란도(프란시스코 리예스)가 있는데 갑작스러운 동맥류 증상으로 죽게 된다. 마지막 순간 함께 있던 사람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모두가 그를 살인범 취급하고, 아무도 그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마리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의사는 그를 ‘He’라고 부르고, 오를란도의 아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연인이 죽어 상심에 빠진 마리나를 위로하는 이는 없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트랜스젠더’ 뿐이었다. 

의사, 경찰, 가족 모두 그에게 차별적 언행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오를란도의 이혼한 아내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마리나가 겪는 무수히 많은 차별과 혐오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더욱 비참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둘러싼 비참한 현실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판타스틱 우먼’이라는 제목처럼 굴욕에도 일어서는 마리나의 모습에 조금 더 집중한다. 자신에게 폭언을 퍼붓는 이들에게 당당히 항의한 마리나. 사회가 한순간에 뒤집히지 않는 이상, 마리나는 계속 차별을 겪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관객에게 큰 울림을 준다. 

판타스틱 우먼

감독 세바스찬 렐리오

출연 다니엘라 베가, 프란시스코 리예스, 루이스 그네코, 아린네 쿠펜헤임, 니콜라스 사베드라, 암파로 노구에라, 트리니다드 곤잘레즈

개봉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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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레이>(2016)
감독 게비 델랄
출연 나오미 왓츠, 엘르 패닝, 수잔 서랜든

<어바웃 레이>(2016)

<어바웃 레이>는 레즈비언 할머니 돌리(수잔 서랜든), 싱글맘 매기(나오미 왓츠) 그리고 트랜스남성이 되고 싶은 딸 레이(엘르 패닝) 이렇게 3대가 한집에서 살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레이는 16살이지만 빨리 남자인 자신을 되찾고 싶어하는 인물로,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성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4살 때부터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안 레이는 16살에 성 확정을 위한 호르몬 요법을 받고자 한다. 매기는 그런 레이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혹시나 신체를 전부 바꾸고 나서 “엄마, 실수였어요”라고 말할까 두려워한다. 미성년자인 딸이 자신의 선택을 감당할 수 없을까봐, 그래서 레이의 미래가 망가질 것을 걱정한다. 할머니 돌리는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으로 평생을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을 외쳐왔다. 여성의 삶에 집중했던 할머니는 레이에게 어차피 여성을 좋아하는 거라면 자신처럼 “그냥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 

매기와 돌리의 생각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들이다. 많은 이들이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성별을 생물학적 성별과 다르게 ‘선택’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심리적 성별과 생물학적 성별이 같은 사람들, 시스젠더가 성별을 ‘선택’한 적 없는 것처럼 트랜스젠더도 자신의 성별을 선택한 적 없다. 다만, 심리적 성별과 생물학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을 뿐이다. “어차피 동성을 좋아하는 거면 게이/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돼?”라는 말 역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혼동해서 생기는 오류다. 성적 지향은 ‘개인의 성적 끌림이 향하는 방향성’을 뜻한다. 반면 성 정체성은 자신이 어떤 성인지 인식하는 감각이다.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성적 지향이 중요한 요소는 될 수 있으나, 둘이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영화는 ‘레이’라는 인물을 통해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오해를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어바웃 레이>는 가족영화이자, 성장영화다. 이해와 오해를 반복하는 이 가족은 결과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영화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배려하고 염려하며 세심하게 풀어나간다. 중간에 폭력적인 갈등이 있지만, 이를 자극적으로 연출하지 않는다. 만약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가장 추천하는 작품. 

어바웃 레이

감독 게비 델랄

출연 나오미 왓츠, 엘르 패닝, 수잔 서랜든, 테이트 도노반, 마리아 디지아, 샘 트라멜, 린다 에몬드, 조던 칼로스, 테사 앨벗슨, 앤드류 폴크

개봉 20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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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굿 맨>(2021)
감독 마리-캐스틸 멘션-솨아
출연 노에미 메를랑, 소코

<어 굿 맨>(2021)

<어 굿 맨>은 앞선 영화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다. 확실한 재미를 보장하는 유명 영화를 추천하는 것도 좋지만, 보석 같은 영화를 발굴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어 굿 맨>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남성과 그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로, 주연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화가 마리안느 역을 맡았던 노에미 메를랑이 맡았다. 간호사인 벤자민(노에미 메를랑)과 발레 강사 오드(소코)는 6년차 커플로, 벤자민은 호르몬 주사는 받고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길 원한다. 오드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아이를 갖기 힘든 몸이다. 결국 벤자민은 오드를 위해 수술을 받기 전 자신이 임신을 하기로 결심한다. 

수염이 덥수룩한 임산부의 모습을 타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아가서, 트랜스남성이 낳은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누가 되는가. 영화는 트랜스남성인 벤자민의 이야기와 연인 오드가 겪는 문제를 엮어서 보여준다. 유명 발레리나였지만 벤자민을 위해 커리어를 버리고 한적한 섬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오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소원을 벤자민이 ‘대신’ 이뤄주기로 했지만, 오드의 마음은 깔끔하지 못하다. 그토록 원했던 아이지만 자신은 생물학적 어머니가 아니고, 발레리나의 커리어도 다 끊긴 자신에게 무엇이 남아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오드의 모습을 보면 소수자라고 ‘해당 문제’만 겪는 건 아니라는, 어쩌면 당연했던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여담으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노에미 메를랑에 익숙했던 이라면 <어 굿 맨>이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노에미 메를랑은 짧은 머리에 중저음, 덥수룩한 수염을 달고 나타났다. 무심한 행동거지도 ‘나는 남자’임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어 굿 맨

감독 마리-캐스틸 멘션-솨아

출연 노에미 메를랑

개봉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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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스완>(2023)
감독 우치다 에이지
출연 쿠사나기 츠요시, 핫토리 미사키

<미드나잇 스완>(2023)

지금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도 한 편 소개한다. <미드나잇 스완>은 한국에서는 초난강으로 더 유명한 쿠사나기 츠요시가 트랜스젠더 나기사 역을 맡아 화제가 된 작품이다. <미드나잇 스완>은 제44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남우주연상, 우수 감독상, 신인 배우상까지 총 4관왕을 달성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히로시마에서 남성으로 자란 나기사는 이 지역은 트랜스젠더를 철저히 배척하는 공간임을 알고, 결국 도쿄로 떠나게 된다. 도쿄에 간 그는 트랜스젠더 바 쇼걸로 일하게 되고, 그러던 와중 고향에서 올라온 먼 조카 이치카(핫토리 미사키)를 잠시 맡게 된다. 이치카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중학생으로, 집에서 쫓겨난 상태였다. 나기사를 ‘삼촌’으로 알고 있던 이치카는 그의 모습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와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를 치유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이치카와 상처받은 이치카를 보듬어주며 ‘엄마가 되는 것’을 소망하게 된 나기사. 세상이 등을 돌린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가 서로의 꿈이 되어주며 살아간다. 

미드나잇 스완

감독 우치다 에이지

출연 쿠사나기 츠요시, 핫토리 미사키, 미즈카와 아사미, 타구치 토모로오

개봉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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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