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가 마음껏 뛰논다. 제멋대로, 하고 싶은대로 살던 알렉스, 브렌다, 케빈.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던 세 사람의 생활은 연인 브렌다의 임신 사실을 안 알렉스가 책임감을 갖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위태로운 젊음이 맥동하는 <끝없는 일요일>은 이탈리아 영화계의 신성 알랭 파로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말이 데뷔작이지, 이미 사진과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 중인 인재답게 파격적이면서도 강렬한 영화의 미장센이 신인이라고 볼 수 없는 노련함으로 가득하다.
알랭 파로니 감독은 <끝없는 일요일>에 '지금'을 녹여낸다. 떠돌이 10대들을 몇 년간 취재해 그들의 '지금'을 담았고, 지금까지 자신이 접한 작품과 이미지를 아우르는 연출로 자신의 '지금'을 새겼다. 그 결과 파로니 감독은 2023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오리종티' 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이탈리아 영화계가, 그리고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신예 알랭 파로니 감독은 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끝없는 일요일>을 공개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해야 할 알랭 파로니 감독을 만나 <끝없는 일요일>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하는 지금, 한국에서의 첫 상영을 시작했다. 한국 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된 기분이 어떤가.
1992년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집에서 지역 TV를 많이 봤었다. 그 지역 TV에서는 아시아에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까 아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한국에 영화를 상영하러 온 것이 꼭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13시간이 걸리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웃음) <끝없는 일요일>을 보면 아무래도 비주얼이 가장 눈에 띈다. 사진 작업을 하는 사람답게 필름의 질감이 있다. 다만 이 영화의 메시지는 그런 복고적인 느낌보다 시대초월적인 것인데 그럼에도 이렇게 사진 질감을 구현하고자 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는 사진을 가까이한 세대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영화의 문법이 있다면, 사진처럼 이미지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 같은 영상을 더욱 강조했다.
이 영화는 세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세 배우들도 이번 작품이 첫 작품을 알고 있다. 이 배우들을 어떤 과정에서 캐스팅했고, 그렇게 초면인 배우들의 호흡을 어떻게 맞춰갔는지.
영화의 영감을 얻은 건 청소년기가 과정이란 것이다. 청소년에서 어른이 돼가는 그런 과정에 대해 5~6년 정도 인터뷰했다. 그렇게 청소년에 대한 공부를 했고, 인터뷰를 하면서 진행했다. 예를 들어 브렌다 역 배우는 로마 지역에서 인터뷰를 하는 인터뷰이 중 한 명이었다. 다른 두 배우는 다른 지역에서 연기를 전공한, 그렇지만 청소년기에 이런 경험이 있는 배우를 섭외했다.
취재하는 당시 들었던 얘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예를 들면 그런 청소년들이 유기견 얘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영화에도 강아지에 대한 스토리를 넣게 됐다. 청소년들을 만나 얘기하다보면 지루함이나 어려움 등에 대해서도 얘기하지만 그 안에 메시지가 있는 것을 깨닫게 됐다.
영화 전체적으로 카메라를 인물의 아이 레벨(눈 위치), 혹은 그 아래에서 찍는 방식을 많이 사용했다. 부감샷은 다소 특별한 상황에서만 사용하고. 이런 식으로 구분하면서 어떤 느낌을 주고 싶으셨는지.
오래된 히어로 영화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아래에서 위를 보는 앵글로 어린이가, 동생이 형을 보는 것 같은 그런 시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다양한 인서트를 사용했다. 구도는 안정적인데 불안한 느낌을 주는 이미지가 많다. 로케이션에 맞춰서 구상하신 건지, 아니면 어느 정도 기획해두고 촬영에 임했는지.
1960년대 이탈리아 영화에서 유행했던 측면을 고려했다. 왼쪽 오른쪽이 대비되는 그런 구조를 편집이나 촬영 측면에서 넣으면서 1960년대의 것을 다시 보강하려고 했다.
인사영상에서 많은 이미지들의 총집합이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지금 말씀하신 영화들 외에도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고 싶은 작품이나 어떤 이미지라든가 그런 게 있다면?
이 영화가 나의 첫 번째 영화라서, 나 자신의 자아를 드러내는 그런 걸 하고 싶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했다. 어릴 때 봤던 옛날 네오리얼리즘 영화부터 최근의 영화까지, 그 모든 것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영화는 사운드 세팅도 중요하다. 초반에는 도심이나 지하철 이런 데서 안내 방송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점점 자연과 자연에서 발생하는 소음들로 채워진다.
<끝없는 일요일>은 아이들이 영화 안에서 점점 성인이 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때문에 처음에는 아름답고 즐겁고 이런 것들을 표현하다가 어른이 되면서 그 영화의 마법은 사라지고 거기에 그런 현실들이 있는 거다. 어떻게 보면 약간 비관적일 수도 있고 이렇게 희망이 없는, 약간 절망이 있는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운드 얘기를 했으면 자연스럽게 음악 질문을 드리겠다. 일본 아티스트 사기스 시로(鷺巣 詩郎)하고 같이 작업을 하게 되는데 두 분의 인연이 어떻게 닿았고 그의 음악에서 어떤 것을 끄집어내고 싶었는지.
사가스 시로의 영화를 보며 자랐다. <신 고질라>처럼 근래 작품도 보았고. 그의 음악이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이루는 그 문화유산 같은 느낌이 있었고, 그래서 이번 영화를 편집할 때 시로의 음악을 약간 장난치듯이 넣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시로를 설득하자' 싶었다.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을 맡아준 빔 벤더스가 일본에 가서 시로를 만나 설득했다. 첫 가편집본을 보여줬는데, 시로가 굉장히 좋아하면서 자신의 작업들도 들려주었다. 오랫동안 못 본 그런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웃음)
그럼 사기스 시로의 합류 자체는 영화 작업이 어느 정도 마쳤을 때 이뤄졌나.
처음에 클립을 보냈었는데 그걸 보고는 마음에 들어서 곧장 로마로 왔다. 그렇게 영화 전체 가편집을 보여주었고, 일주일간 로마에 머물면서 함께 얘기를 나눴다. 굉장히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다음 작업을 할 때도 당연히 같이 할 거고, 그때는 작업을 시작할 때 같이 컨택을 할 예정이다.
굉장히 뿌듯했을 것 같다. 작품을 보여줬을 때 바로 로마로 왔으니까.
굉장히 믿을 수 없는 그런 순간이었다. 다만 시로가 처음에 오셨을 때, 당연히 큰 스튜디오일 거라고 생각하고 기대하고 오셨던 것 같은데 딱 왔더니 전부 30대였다. 편집자나 나나. 그걸 보고 놀라는 모습이 정말 아버지 같단 느낌을 받았다.
이제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을 묻어보겠다. 사기스 시로의 참여 때문인지 오프닝 크레딧은 다양한 언어로 나온다. 엔딩은 또 올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옆으로 흘러가는 방식인데 이렇게 구성한 계기가 있다면.
엔딩 크레딧은 그러니까 마치 처음 여행 간 지역에서 모르는 곳에 다니며 창문으로 그곳을 보는 것처럼 연출하고 싶었다. 창문으로 배경이 지나가면 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그런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 친구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그런 풍경을 크레딧으로 재현한 셈이다.
말씀하신 대로 그런 다이내믹함을 담고 싶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내믹함을 크레딧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에서 몇몇 장면들, 알렉스가 오토바이 끌고 다니는 장면이나 그런 장면들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실제 같았다. 아마 영화 규모가 크지 않았으니 실제일 것 같다고 생각은 아는데, 맞는지 궁금하다.
여러 장면이 실제 현실을 담은 것이 맞다. 해변의 장면이라던지 이런 부분들은 사람들의 실제 모습을 찍고 현장에서 동의를 받았다. 많은 부분을 현실을 표현하고 싶었다. 현실을 담으면서도 (연출된) 장면들의 균형을 많이 맞추려고 했다. 그런 부분들을 서로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서 어떤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끝없는 일요일> 주요 세 인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케빈이다. 케빈은 극중 뭔가 부수거나 스프레이를 한다든가 뭔가 새기거나 이런 쪽의 행동을 많이 하는데 내게는 그런 파괴적인 모습이 뭐라도 남기고 싶다라고 읽혔다.
주인공 세 명 모두 땅에 표식을 새긴다거나 뭔가 남기고 싶어 하는 부분이 있다. 브렌다는 임신을 했고, 알렉스는 그런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영화 말미에 폭력적인 상황으로 그것을 표현했다. 케빈은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부분에서 표현하려고 한다. 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많은 청소년들의 인터뷰에서 느낀 건 그들도 뭔가를 남기고 싶어 하는데 무엇을 남겨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때론 폭력적인 방법으로, 때로는 어떻게 보면 옳지 않은 그런 방법들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계가 많이 변했다. 이탈리아 관객으로서 영화계를 얘기한다면
이탈리아는 지역적으로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시아의 영향도 있고 아메리카 문화의 영향도 있고. 그렇지만 그런 영향을 받은 세대들이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 영화계를 꾸려가고 있다. 새로운 길 '뉴 웨이', 그런 파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본인도 그런 세대의 일부인데, 어떤 영향을 주고 싶나.
그런 세대, 디지털의 영향을 받은 세대이다. 10년 전만 해도 뭔가를 만들려면 굉장히 많은 장비가 필요했다. 지금은 핸드폰 하나로도 촬영할 수 있다. 이런 세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도착하신지 하루도 채 안 되었지만 혹시 한국에 와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면.
말했다시피 집에 온 것 같다. 한국에 처음 오지만 영화들을 통해서 한국을 굉장히 많이 봤었기 때문이다. 여기 와서도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에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또 부산영화제에 오니 굉장히 규모도 크고 영화도 많아서 여기 가능하다면 한 달 정도 머무르면서 영화도 다 보고 싶다.
이제 첫 작품을 끝내셨고 나이도 아직 젊은 편이다. 앞으로 많은 작품을 하실 텐데 기존에 본인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는 영화인이나 혹은 영화인이 아니더라도 아티스트가 있다면.
크리스 마커(Chris Marker) 감독을 좋아한다. 그리고… (파로니 감독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며 구글 검색으로 이와이 슌지 감독을 찾아 보여줬다). 아시아에서는 디지털 작업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 전 세대가 그것을 사용할 줄 아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와이 슌지의 작품을 보면 디지털 작업의 자유로움이 많이 느껴져서 좋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