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에 돌아갔다. 경쟁 부문 초청작 중 최고 작품의 감독에게 주어지는 상인 황금종려상은 칸영화제의 꽃이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2019년 수상), <어느 가족>의 고레에다 히로카즈(2018년 수상),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2013년 수상) 등이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추락의 해부>의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세 번째 여성 감독이다. 최초의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성감독은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1993년 수상)이며 두 번째 감독은 <티탄>의 쥘리아 뒤쿠르노(2021 수상)이다. 77년의 칸영화제 역사 중 단 세 명의 여성감독만이 ‘그 해 최고의 감독’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칸이 인정한 이 여성 감독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제인 캠피온
<피아노>

1993년 제46회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의 영광은 두 작품에 돌아갔다. 천카이거 감독의 영화 <패왕별희>와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피아노>이다. 이 두 작품의 수상이 의미 있는 이유는 ‘최초’이기 때문이다. <패왕별희>의 천카이거 감독은 중국 감독 최초로,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감독은 여성 감독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 <피아노>는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20대의 미혼모 ‘에이다’(홀리 헌터)와 사생아인 딸 ‘플로라’(안나 파킨) 이야기를 담는다. 농인인 에이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얼굴도 모르는 남자 ‘스튜어트’(샘 닐)와 결혼하기 위해 딸 플로라와 함께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행 배에 오른다. 에이다는 그곳에서 만난 마오리족 ‘베인스’(하비 카이틀)와 사랑에 빠지며 갈등은 시작된다. 7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피아노>는 전 세계에서 4,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제인 캠피온은 페미니즘 시각이 내포된 주제의식과 회화적인 아름다움이 결합된 미장센이 특징적인 감독이다. 특히 모든 주인공이 여성으로 사회의 냉대 속에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아 나선다. 영화 <피아노>의 주연을 맡은 배우 홀리 헌터는 “제인 캠피온의 영화는 남성들이 연출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나오는 고유한 것들이죠”라 언급하며 제인 캠피온의 고유성을 인정했다.

제인 캠피온은 전문 극단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항상 예술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그는 웰링턴 빅토리아 대학교, 첼시 예술대학교, 시드니 대학교 등에서 회화, 조각, 인류학 등을 공부했다. 제인 캠피온의 영화계 데뷔는 화려했다. 첫 단편 영화 <과일 껍질>(1982)가 칸 영화제 단편영화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후 1989년 첫 장편 데뷔작 <스위티>가 세상에 나오고 이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LA 비평가 상을 수상했다.
한편, 2021년 <파워 오브 도그>로 13년 만에 영화계에 복귀한 제인 캠피온은 여전히 독창적인 그의 역량을 뽐냈다.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커스틴 던스트의 엄청난 연기력과 함께 제인 캠피온의 섬세한 연출력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파워 오브 도그>는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하고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의 쾌거를 이루었다.
쥘리아 뒤쿠르노
<티탄>

2021년 영화 <티탄>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프랑스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는 ‘바디 호러(Body horror)’계의 신예이다. ‘바디 호러’란 기괴하게 변형되는 인간의 신체를 통해 공포감을 조성하는 장르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비디오드롬>(1984), 미첼 릭텐스타인 감독의 <티스>(2007) 등이 있다.
영화 <티탄>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을 심고 살아가는 알렉시아(아가트 루셀)가 기이한 욕망에 사로잡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는다. 파격적인 이미지와 예측 불가한 이야기는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황금종려상 후보로는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웨스 앤더슨 <프렌치 디스패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메모리아> 등 거장 감독들의 쟁쟁한 작품들이 거론되었다. 그에 비해 쥘리아 뒤쿠르노는 첫 장편 영화 <로우>(2016)로 데뷔한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은 신인이었다. <티탄>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전 세계 영화계의 놀라움을 주었고 쥘리아 뒤쿠르노는 자신의 영화를 ‘괴물’이라고 칭하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괴물을 받아들여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하다”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쥘리아 뒤쿠르노는 산부인과 의사인 어머니와 피부과 의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인간의 신체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5살 때 목욕탕에서 인간은 결국 죽을 것이라는 걸 깨닫고, 6살에 <텍사스 전기톱 학살>을 봤다. 10대 때는 에드거 앨런 포와 메리 셸리의 글을 읽고, 16살 즈음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 심취했으며, 특히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추상적인 육감에 영향을 받았다”고 바디 호러 장르물을 지속해서 만드는 이유를 밝혔다.
쥐스틴 트리에
<추락의 해부>

2023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세 번째 여성 영화감독이 탄생했다. <추락의 해부>의 감독 쥐스틴 트리에이다. 영화 <추락의 해부>는 산드라 부부와 시각장애를 가진 11살 아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어느 날 남편이 숨진 채 발견되고 그의 아내 ‘산드라’(산드라 휠러)가 살인 혐의로 의심을 받아 기소를 당한다. 이후 사건의 재판이 열리고 아들 ‘다니엘’ (밀로 마차도 그라너)이 증인으로 선다.
이 작품은 2007년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당시 교환학생이었던 미국의 작가 아만다 녹스는 룸메이트 메레디스 커처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6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011년 10월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훼손 가능성이 있다며 둘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아만다 녹스는 여전히 이탈리아 언론의 피해자이자 경찰의 희생자로 기억되고 있다.

<추락의 해부>를 연출한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각본가와 배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러던 중 2007년 다큐멘터리 <현장에서>를 통해 카메라를 잡았다. 2008년 <솔페리노>, 2010년 <집안의 그림자> 등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 2012년 단편영화 <투 쉽스>로 극영화에 발을 들였다. 2019년 각본과 연출을 맡은 블랙코미디 영화 <시빌>이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에 오르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 후 독특한 수상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프랑스 정부에 대한 직설적 비판으로 수상에 대한 기쁨을 대신했다. 그는 "지금 신자유주의 정부가 지지 중인 문화 상업화가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를 무너트리고 있다"고 비판하며 "문화적 예외가 없었으면 오늘 이 자리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