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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최초, 최초! 스티븐 연 수상에 돌아보는 각 영화제별 최초 주연상 배우들

성찬얼기자

스티븐 연의 수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그는 드라마 <성난 사람들>로 에미상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 골든글로브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남우주연상이란 상의 영예도 크지만, 무엇보다 '한국계 최초'라는 기록 또한 남다를 텐데. <워킹 데드>로 글로벌 스타가 된 후에도 <옥자>, <미나리> 등으로 한국인/한국계 감독들과 꾸준히 작업했기에 한국 대중의 환호도 많이 받았다. 그의 수상을 보며 미국 영화제에서 '최초' 기록을 세운 유색인종 배우들이 누가 있는지 한 번 정리해보기로 했다. 모든 배우를 다 살피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만 정리했다.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미국 아카데미 사상 최초 흑인 수상자

시드니 포이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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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백합〉 시드니 포이티어

근래 급격히 늘어난 흑인 배우 수상, 그 원류를 찾아보면 두 사람의 이름을 볼 수 있다. 한 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흑인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해티 맥대니얼, 그리고 1964년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시드니 포이티어다. 골든글로브야 1959년부터 시상한 '신생' 영화상이라 해도 아카데미는 1929년부터 열렸는데, 35년이 지나고 나서야 주연상 수상 흑인 배우가 나타난 것이다. 당시 시드니 포이티어가 출연한 영화는 <들백합>. 퇴역 군인 호머 스미스와 동독에서 탈출한 다섯 수녀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은 극중 스미스가 다섯 수녀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며 부르는 '아멘'(Amen)이란 노래로도 유명하다. 시드니 포이티어는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에 세 번째 노미네이트, 아카데미에 두 번째 노미네이트 만에 동시 수상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 여파는 현대까지도 이어져서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민간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 훈장 자유 메달 수여로 이어졌다. 시드니 포이티어는 베를린영화제에서도 남우주연상(은곰상)을 두 번 받은 최초의 배우이기도 하다.


아카데미 사상 최초 남녀주연상 흑인 배우 수상

2002년 덴젤 워싱턴, 할리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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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데이〉 덴젤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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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볼〉 할리 베리

21시대 새 시대를 기념이라도 하듯, 2002년 아카데미는 사상 최초의 기록이 터져나왔다. 이 신기록은 특히 두 주연상 수상자에게 집중됐는데, <트레이닝 데이>의 덴젤 워싱턴과 <몬스터 볼>의 할리 베리다. 할리 베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주연상을 받은 흑인 여성 배우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덴젤 워싱턴은 시드니 포이티어가 있어 최초는 아니지만 그래도 두 번째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남녀주연상 모두 흑인 배우가 수상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덴젤 워싱턴은 지금까지도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영광의 깃발>) 모두 수상한 최초이자 유일한 배우라고. 어떻게 보면 축하할 기록들이지만 관점을 조금만 달리해 아카데미가 처음 열린1929년 이후 근 7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면, 이 즈음부터 '백인 중심'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 최초의 아시아 여우주연상 주인공들

아콰피나, 양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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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웰〉 아콰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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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양자경

진작에 같은 땅을 밟고 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조차 주연상을 받는 데 이만한 시간이 들었다. 동양계 배우들은 당연히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골든글로브나 아카데미나 동양인 배우가 주연상을 수상한 사례는 정말 최근이다. '동양인'이 아니라 폭넓게 '아시아계' 혹은 '아메리카 원주민'까지 친다면 1956년 아카데미 율 브리너(이집트계), 1988년 아카데미 셰어(체로키 인디언계)가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을 아시아계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고로 모두가 인정할 만한 '아시아계 수상자'는 2019년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의 아콰피나(<페어웰>), 2022년 아카데미의 양자경(<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 적당하다.

남자배우쪽 수상이 훨씬 빨랐던 흑인 배우들과 달리 현재 골든글로브도, 아카데미도 영화 남자주연상 부문 동양인 수상자는 아직 없다. 올해 스티븐 연의 수상이 유독 화제인 것도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이긴 하나 동양계 배우가 주연상을 수상하는 사례가 드문 데다 앨리 웡까지 함께 수상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특히 골든글로브는 미국영화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해 물의를 빚은 전적이 있어 이번 스티븐 연의 수상은 더욱 값진 일이라 볼 수도 있다.


칸영화제 주연상 최초 수상자

갈우, 장만옥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영화상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가 '로컬'이라 오래 걸린 건 아니다. 세계 3대 영화제도 동양인이 주연상을 거머쥐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동양인으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처음 든 배우는 갈우. 우리에겐 <패왕별희>의 '원대인' 원세경 역으로 익숙한 갈우는 1994년 장이모우 감독의 <인생>에서 열연을 펼쳐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인생>은 1940년대에 태어나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이란 역사의 격동기에서 살아간 푸구이(부귀)의 이야기. 갈우는 푸구이 역을 맡아 파란만장한 개인사와 국가적 혼란을 온몸으로 받아낸 중국인의 표상을 그대로 드러냈고, 그 결과 칸에서 상을 받았지만 정작 당국에게 5년 간 영화 출연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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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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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장만옥

 

​동양인 최초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장만옥이다.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연출한 <클린>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이 영화를 보면 다들 장만옥의 연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홍콩영화로 그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그가 이렇게 능숙하게 영어와 불어를 쓰는 모습부터가 충격일 터. 장만옥은 <클린>에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에밀리 역을 맡았다. 에밀리가 느끼는 고독함과 내면에 깔린 절절한 감정을 섬세한 연기로 풀어낸 장만옥은 동양인 최초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베를린영화제 주연상 최초 수상자

리아오판, 히다리 사치코

〈백염일화〉 리아오판
〈백염일화〉 리아오판
〈일본 곤충기〉 히다리 사치코
〈일본 곤충기〉 히다리 사치코

베를린영화제 은곰상(현재는 남녀 구분 없이 연기상으로 변경됐다)은 격차가 좀 있다. 여우주연상은 1964년 <일본 곤충기>와 <쉬 앤드 히>에 출연한 히다리 사치코가 처음 수상했는데, 남우주연상은 2014년 <백일염화>에 출연한 리아오판이 처음 수상했다. 이 2014년은 리아오판의 수상과 함께 특별한 기록을 하나 더 세웠는데, 여우주연상 또한 일본배우 쿠로키 하루(<작은 집>)가 수상해 동양인 배우가 주연상을 석권한 해라는 기록이다.


베니스영화제 주연상 최초 수상자

미후네 토시로, 강수연

〈요짐보〉 미후네 토시로
〈요짐보〉 미후네 토시로

베니스영화제의 동양인 최초 주연상 수상자는 미후네 토시로가 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에서의 열연으로 1961년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볼피컵)을 수상했다. 이어 그는 1965년에도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한 <붉은 수염>으로 볼피컵을 또 한 번 수상해 베니스영화제 사상 딱 6명 뿐인 볼피컵 2회 수상 남성배우로 기록됐다. 과연 일본영화계 황금기를 대표하는 얼굴다운 활약이다.

〈씨받이〉 강수연
〈씨받이〉 강수연

마지막을 장식할 기록 보유자는 강수연이다. 강수연이 '월드 스타'라는 칭호를 받게 된 이유는 바로 해외영화제에서 연이은 수상을 하며 한국영화를 알렸기 때문. 그 업적 중 하나가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볼피컵)을 수상한 것이다. 단순히 한국배우 최초가 아니고, 동양인 배우 중 최초로 받은 사례여서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오죽했으면 그해에 곧바로 옥관문화훈장이 수여됐겠는가. 이후 그는 1989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또 한 번 신드롬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