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샬롯 웰스 감독은 데뷔와 동시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장편 영화 데뷔작 <애프터썬>은 2022년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처음 공개된 후 프랑스 터치상을 수상하고 찬사를 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애프터썬>은 전 세계 유력 매체들에 의해 그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다. '사이트 앤 사운드', '더 가디언', '인디와이어' 등 6개의 해외 매체가 2022년 최고의 영화 1위로 뽑았다. 데뷔와 동시에 주목받은 샬롯 웰스 감독의 영화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화감독 샬롯 웰스는 2020년 선댄스 영화제 시나리오 작가 및 감독연구소의 펠로우로 활동했다. 그는 <애프터 썬>을 제작하기 이전에 총 세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조금씩 상실의 아픔을 마주해가는 열여섯 살 소녀의 하루를 그린 <튜즈데이>(2015), 지하철 성추행 문제를 고발한 <랩스>(2017), 크리스마스이브에 한 채권추심원이 아내의 정신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출근하는 내용을 담은 <블루 크리스마스>(2017)까지 세 편의 단편 영화는 모두 인물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의 첫 단편 영화 <튜즈데이>는 찢어진 옷을 바느질로 봉합하는 숏으로 시작된다. 정적인 영화는 엄마와 나누는 겸연쩍은 대화, 미뤄둔 숙제 등 최소화한 정보로 최근 상실을 겪은 16살 소녀 앨리의 슬픔을 전달한다. 인물의 대사가 아닌 이미지로 정보를 전달하는 샬롯 웰스 표의 영상 스토리텔링은 그의 단편 데뷔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튜즈데이>는 찢어진 옷을 봉합한 것처럼 다시 일상성을 회복해 가는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랩스>는 공공연한 장소인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배우의 뛰어난 연기와 섬세한 편집은 관객들을 의심에서 공포와 두려움에 이르는 인물의 심리적 여정에 이입하게 한다. <랩스>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단편 영화 편집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앞서 대사가 극히 제한된 두 편의 영화와 달리 <블루 크리스마스>는 좀 더 대중에게 다가선 듯 균형 잡힌 톤을 보여준다. 또 세 편의 단편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시대극이기도 하다. 영화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운드트랙, 지난 시간이 배어든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우리를 과거 어느 작은 해변 마을로 데려간다. 채권추심원 알렉은 정신병에 걸린 아내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출근한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모습은 여느 집의 가장과 같아 보이지만, 돈을 받으러 간 집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등 시간을 때우는 그의 모습은 귀가를 미루는 듯하다. 그는 저녁 늦게 들어간 집에서 회피해 왔던 일을 마주한다. 귀가한 집에서는 그의 어린 아들이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붙이려 하는 아내를 혼자서 막아서고 있다. 아내를 진정시켰지만, 끝내 담배는 떨어지고 트리에 불이 붙으면서 집은 화염에 휩싸인다.

<블루 크리스마스>에서 일상성은 조금 더 교묘하게 드러난다. 알렉은 집 바깥에서 일상을 충실히 보내며 가정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블루 크리스마스>에 있어 일상의 반복은 시작점이나 인물이 다시 돌아가야 할 종착점이 아닌 부정이나 회피의 극화이다. 샬롯 웰스 감독의 단편 영화 세 편은 모두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제적 연결고리를 지닌다. 이는 그의 장편 데뷔작 <애프터썬>에서도 드러난다.
샬롯 웰스가 불완전한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는 방식

<애프터썬>은 샬롯 웰스 감독이 어린 시절 아빠와 튀르키예 여행을 간 기억을 길어 올려 만든 작품이다. 그는 대본 작업을 하면서 그때의 휴가에 대한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렸다고 한다. 첫 다이빙, 고대 유적에 대한 첫인상, 진흙탕, 하늘에서 끝없이 흩어지는 패러글라이딩 등. 그의 빛바랜 기억 속 조각들은 스크린 속에서 하나하나 맞춰지며 선명해진다. 영화는 20여 년 전 아빠와 보낸 튀르키예 여행을 다시금 떠올리는 소피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해 여름을 떠올리는 31살 소피의 현재와 11살 소피의 과거는 캠코더를 통해 연결된다. 또 알이엠(R.E.M)의 곡 ‘Losing My Religion’과 첨바왐바(Chumbawamba)의 곡 ‘Tubthumping’ 등 90년대를 풍미했던 음악들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샬롯 웰스 감독은 샹탈 애커만의 <집에서 온 소식>(1977), 단편 영화 <방>(1972), 빔 벤더스의 <도시의 앨리스>, 소피아 코폴라의 <썸웨어>를 <애프터썬>을 만드는 데 참조한 영화로 밝혔다. 이중 <애프터썬>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썸웨어>와 가장 닮아 있다. <썸웨어>는 할리우드의 고급 호텔에서 공허한 시간을 보내는 배우 조니(스티븐 도프)가 떨어져 있던 딸 클레오(엘르 패닝)와 오랜만에 만나 시간을 보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니는 충분한 경제력과 명성을 누리고, 할리우드 유명 배우의 후광으로 많은 여성과 섹스를 한다. 하지만 그는 자주 지루해하고, 여성들과 있을 때조차 졸음을 이겨내지 못한다.

<애프터썬>은 <썸웨어>의 내러티브적 설정과 톤을 빌려온다. 두 영화는 아빠와 딸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기본적인 설정을 공유하면서 여름날 휴가지의 나른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또 인물 구성마저 닮아 있다. 조니는 클레오에게 자신의 공허한 일상을 숨기고, 클레오에게 조니는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의문스러운 사람이기도 하다. <애프터썬>에서 캘럼(폴 메스칼)은 조니처럼 전사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은 이따금 드러나고, 소피(프랭키 코리오)에게도 모호한 신호로 전해진다.

샬롯 웰스는 <썸웨어>의 일부 장면에 오마주를 바친다. 때론 깨어 있을 때보다 잠들어 있을 때 더 많은 것이 전해진다. 조니는 따분하고 무료한 일상을 반복하며 멜랑콜리에 젖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의 잠결에 내뱉는 숨소리, 이를 오랫동안 관조하는 카메라가 대신 조니의 불안한 심리를 말해준다. 샬롯 웰스 감독은 <애프터썬>에서 이 장면을 오마주 한다. 숙소에 들어선 소피는 피곤을 이겨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캘럼은 소피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잠자리를 정리해 준 후 발코니에 나가 느린 몸짓으로 춤을 춘다. 잠든 소피의 숏은 다음 날 아침 숨을 내쉬면서 잠들어 있는 캘럼의 장면으로 시청각적으로 매치되어 편집된다.

앞선 롱테이크 숏은 극 후반부 캘럼이 나체인 채로 엎드려 자고 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소피는 캘럼이 그랬던 것처럼 아빠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그리고 이내 잠든 캘럼의 숏은 서서히 클럽에서 캘럼이 가쁘게 숨을 쉬며 춤을 추고 있는 숏으로 이어진다. 클럽 안 스트로브 조명은 어둠 속에 잠기지 않으려는 캘럼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캘럼은 그의 우울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었고, 어린 소피는 그의 몸부림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캘럼의 숏은 현재 31살이 된 소피의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그제야 아빠의 이상한 몸짓을, 헤아릴 수 없었던 여러 신호를 깨닫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위아래로 느릿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워크는 시제가 다른 세 장면을 하나로 연결해 준다.

휴가지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밤, 캘럼과 소피는 함께 춤을 춘다.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 ‘Under Pressure’가 흐르는 와중에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캘럼이 클럽에서 춤을 추는 인서트숏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31살의 소피는 캘럼에게 다가가서 그를 힘껏 끌어안는다. 11살의 자신은 그러지 못했던 후회 어린 마음과 원망을 담아서. 이 장면은 작별을 하는 부녀의 모습을 담은 캠코더 영상으로 이어지고, 이후 360도 패닝으로 현재 31살의 소피와 기억 속에 남겨진 캘럼을 하나로 연결한다. <애프터썬>은 어린 시절 아빠의 처절한 몸부림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소피가 캘럼에게 전하는 부치지 못한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