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명소, 명곡, 제품…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주변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씨네플레이 기자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하루 종일 영화, 드라마로 글을 쓰면서도 여유 시간에 잠깐 사담을 떨 때면 '이번에 이 작품이 좋더라' '이 사람이 나오는 영화는 좋더라'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영업에 나서곤 한다. 그런 마음을 독자들에게도 전하고자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사심을 살짝 얹은, 그러면서도 독자에게 유익할 영업을 준비했다. 각 기자들이 주제 맞게 선정한 것을 소개하는 '씨픽', 첫 주제는 '앞으로 주목하면 좋을 차세대 감독'이다. 이번 차세대 감독은 국내에 정식 개봉한 작품이 적은 감독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세 번째 글은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나타샤 메르쿨로바, 알렉세이 츄포브 감독을 쓸 성찬얼 기자다. |
(그리고 넘어가도 좋은 서론)
아차, 실수다. 앞선 기자들의 글을 읽으며 내가 큰 실수를 했단 걸 깨달았다. 각 감독의 필모그래피, 심지어 단편까지 짚는 꼼꼼한 서술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저 이 작품이 좋아서 선택한 나는 뒤늦게 두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확인했는데, 이게 웬걸. 두 감독은 벌써 10년 넘게 활동했고, 다수의 작품을 쓰거나 연출했으며, 늘 같이 작업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처음 정할 때부터 '국내 정식 공개한 작품 기준'이었으니 선정은 문제가 없지만, 기존과 같이 감독에 초점 맞춘 글을 기대하고 클릭한 독자분이 계시다면…. 맹탕보다 못한 느낌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런 이유로 (남들은 보통 말미에 붙이는) 사족을 서두에 달아놓으며, 이런 사유로 아래의 글은 작품에 좀 더 초점을 맞췄음을 양해 바란다.


2023년 개봉영화에서 꽤 재밌는 대비를 발견할 수 있다. 사과와 용서, 진정한 사과 혹은 진정한 용서는 가능한가. 한국영화 <지옥만세>는 괴롭힘을 당한 두 여고생이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는데 그것이 진심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한다. 반면 러시아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정반대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에게 용서받기 위해 달린다. 두 영화 모두 관객을 사로잡기 충분한 영화인데, 필자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가 좀 더 인상 깊었다. 동정해선 안되는 이와 함께 여정을 떠나는 것 같은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때는 1930년대, 볼코노고프 대위는 NKVD(엔카베데, 소련 내무인민위원부) 소속 군인이다. 국가의 해가 되는 반역자들을 색출, 처단하는 그는 평소처럼 출근하던 중 직속 상사 그보즈데프 대령의 자살을 목격한다. 상사의 죽음과 한 사람씩 호명돼 진행하는 면담….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볼코노고프는 자신이 집행한 사건 자료를 숨기고 도망친다.
진짜 이야기의 시작은 도망쳐 숨어지내려던 볼코노고프가 NKVD 소속 동료이자 친구 베레테니코프의 시신을 발견한 이후다. 직접 땅에 묻은 베레테니코프가 땅을 뚫고 나와 볼코노고프에게 말한다. 모두들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베레테니코프는 "죽기 전에 회개하고 한 사람에게라도 용서받아야 다른 곳에 갈 수 있다"며 전언한다. 볼코노고프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용서받기 위해 사건 자료를 되찾아 피해자들의 가족을 만나러 간다.

러시아에서 만든 소련 비밀경찰의 용서 구걸기. 한 줄로 요약한 영화는 석연치 않다. 마치 자국민이 과거를 미화하고 국제적 차원의 이해를 구할 것만 같다. 어쩌면 그렇게 읽힐 것을 예상했기에, 영화는 볼코노고프에게서 거리를 둔다. 이런 유의 영화에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을 일부러 생략한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용서는 가장 중요한 전제를 흐릿하게 표현한다. '가해자 본인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가?'

영화를 연출한 나타샤 메르쿨로바, 알렉세이 츄포브는 마트 타니엘과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니까 용서를 구하러 다니는 볼코노고프 대위와 관객의 거리감은 의도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드라마에선 당사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 혹은 심리 상태가 묘사되고 그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돼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볼코노고프가 진심으로 회개하는지조차 조금의 단서도 남기지 않는다. 심지어 본인 스스로도 진심이라고 가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지, 피해자들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거나 고개를 숙인다거나 하는 과장된 회개의 제스처조차 하지 않는다. 영화를 봤을 땐 회개라기보다 지옥에서의 영겁을 피하기 위한 발버둥으로만 보일 뿐이다.
한편 그렇다고 그를 힐난 받아 마땅한가? 영화는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당장 멈추지 못할 기침을 하면서도 볼코노고프의 뒤를 쫓는 골로브냐 소령은, 볼코노고프와 정반대에 있다. 그는 폐병이 들었다. 때때로 터져 나오는 기침은 불가항력이다. 아마도 영화 속 NKVD 일원 중 그만큼 죽음이 코앞까지 닥친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용서를 받아 천국에 가겠다는 볼코노고프를 비웃고 그가 실패하길 바란다. 그가 있어서 관객은 설령 거짓된 마음일지라도 용서를 바라는 볼코노고프를 지켜보게 된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영화는 이야기를 다룬다. 문학도 이야기를 다룬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떻게 차별화될 수 있는가. 바로 외면적 행동으로 핵심을 전할 때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이 지점에서 탁월하다. 볼코노고프 대위가 진심으로 회개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용서받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관객은 목격한다. 진의를 알 수 없는 행동은 볼코노고프를 모호한 인간으로 만들고, 그로써 그는 관객 마음에 더 깊게 남는다. 만일 메르쿨로바, 츄포브 감독이 볼코노고프의 심리를 읊는 내레이션을 썼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의 행동이 '위장'이든 '진심'이든 하나의 정서로 귀결됐다면 이 영화는 좀 더 단순하고 쉽게 잊혔을 것이다. 그러나 행동의 진의를 알 수 없을 때, 그래서 그의 행동으로만 판단해야 할 때 오는 의심과 기묘한 이질감. 이 지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작품에 녹여낸 것에서 메르쿨로바, 츄포브 감독의 '영화력'을 읽을 수 있다.

진심이 아닐 수도 있는 회개처럼, 영화는 거듭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이 영화의 전제부터 그렇다. 숙청의 칼날이었던 NKVD가 역으로 숙청의 대상이 되는 것. 누군가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던 이가 그것을 강탈당하는 것. 여기서 시작된 역전은 숨구멍을 틀어막은 마스크를 쓰고 노래를 하는 것, 유일한 단서를 쥔 내부자를 사형시킨 것, 도망친 곳에서 친구의 시신을 맞닥뜨리는 것 등 역설의 연쇄를 일으키며 영화 전체로 번져나간다. 이런 역설들이야말로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리는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기침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담요를 끌어안고 피를 토하는 골로브냐 소령처럼.



두 감독의 능숙한 드라마트루기는 반복으로도 드러난다. 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부르는 '초원', 지면을 박차고 발을 구르는 '탭댄스', 머리로 겨눠진 총구, 끊임없이 사람을 실어 나르는 열차, 타오르는 모닷불…. 동일한 것을 미묘하게 변주하여 반복하고, 그 대비에서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단적인 예라면 극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고 마지막까지 장식하는 '초원'이란 곡이 있다. 베레테니코프가 고문당하면서 부르는 이 곡은 NKVD 일원들이 자부심으로 가득한, 평화로운 일상을 기억하는 곡이다. 그들 나름의 결기를 담은 이 군가는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이 불려지거나 회상된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볼코노고프 대위의 행적을 도식화해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그조브데프 대령의 추락과 동시에 볼코노고프의 위치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는 시신을 묻는 과정에서 지하(지옥)에 빠질 뻔했다가 지상에 올라오고, 지상에서 다시 지하로, 그리고… 그의 수직적 이동은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이를 통해 영화의 전체를 조망한다면 볼코노고프가 겪는 변화를 한눈에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다음 행보엔 어떤 영화가 탄생할까. 메르쿨로바, 츄보프 콤비의 네 번째 공동 연출 영화 <오버라이드>는 첫 영어 영화다. 16세 여성 베카(티간 크로프트)는 31세 택시운전사 론(조 콜)의 택시를 탄다. 사실 론은 연쇄살인마고, 베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끔찍한 사건이 휘말린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에서도 인물의 속내를 감추고 이야기를 고조시킨 두 감독이 스릴러를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를 택했다. 론과 베카, 꿈의 도시 LA에서 어떤 밤을 지나가게 될 것인가. 2024년 칸영화제 마켓에서 처음 판매에 나선 <오버라이드>를 빠른 시일 내에 만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