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명가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여전히 공포지만, 새로운 도전이라고 하는 이유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2024년 6월, 서머 게임 페스트(SGF)에서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프로덕션 대표 제이슨 블룸은 '블룸하우스 게임즈'를 설립하고 퍼블리싱을 준비 중인 게임들을 다수 발표했다. 각기 다른 제작사에서 다양한 게임을 개발 중인데, '블룸하우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포를 유발하는 게임만으로 라인업을 구상했다. 과연 '명품 호러' 브랜드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블룸하우스가 게임계에도 본인들의 브랜드를 새길 수 있을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피어 더 스팟라이트
연내 발매


블룸하우스 게임즈의 첫 타자는 <피어 더 스팟라이트>다. '코지 게임 팔스'(Cozy Game Pals)에서 개발한 이 게임은 두 여고생이 학교에서 위자보드(우리나라로 치면 분신사바)를 했다가 기이한 일이 휘말리게 된다는 스토리다. 그동안 캐주얼게임을 제작한 코지 게임 팔스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공포게임으로, 과거 레트로 공포게임을 재해석한 스타일이 돋보인다. 게임에 일가견이 있다면 보자마자 <어둠속에 나홀로>, 혹은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 초기가 바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학교에 관련된 몬스터가 등장하는 것은 <사일런트 힐 2>나 최근 호평받은 <반교 -Detention>을 연상시킨다. 2023년 하반기에 잠시 출시됐었는데, 전반적으로 옛날 공포게임의 감성은 유지하되, 그때의 투박한 부분들을 시대에 맞게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판매 수익과 블룸하우스 게임즈의 투자로 게임은 추가적인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판매 중지를 알렸다. 과연 블룸하우스 게임즈의 첫 타자는 이전처럼 호평받으며 퍼블리셔의 첫 발자국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크리솔: 시어터 오브 아이돌스


<피어 더 스팟라이트> 다음 주자로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게임은 <크리솔: 시어터 오브 아이돌스>는 1인칭 슈팅(FPS) 장르로 컬트종교가 자리 잡은 토르멘토사 마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상의 극장'이란 부제처럼, 조각상들이 공격해오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피를 탐닉하는 무기 하나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다, <크리솔: 시어터 오브 아이돌스>의 키포인트는 '피'이다. 주인공이 쓸 수 있는 무기는 주인공의 피를 빨아먹기 때문에 함부로 난사해선 안된다. 반면 마을 사람들의 피를 흡수해 주인공의 체력을 채우거나 이 마을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를 획득할 수 있다. FPS 장르는 아무래도 제작 규모가 큰 AAA급 게임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피를 이용한 게임플레이가 얼마나 차별화되고 재밌는지가 관건이 될 듯하다.
그레이브 시즌스



<그레이브 시즌스>는 언뜻 보기에 도트 디자인에 귀여운 농장 경영 시뮬레이션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스타듀 밸리> 같은 풍경이지만, 잠시 후 어둠 속의 무언가에게 공격당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괜히 제목에 '무덤'(그레이브)가 들어간 것이 아닌 것. 주인공은 작은 마을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이 기이한 실종과 살인의 흔적을 쫓아 진상을 밝혀야 한다. 사이버펑크 SF 비주얼노벨 <러브 쇼>를 만든 '퍼펙트 가비지'의 신작으로 가장 평화로운 장르와 스릴을 유발하는 장르를 결합한 것이 특징.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마을의 NPC들이 사건에 휘말려 사라지거나 살해되기도 한다고. 퍼펙트 가비지는 이 게임의 시뮬레이션 파트와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파트를 50 대 50으로 분배하겠다고 밝혔다. 전작이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퍼펙트 가비지지만, 블룸하우스 게임즈가 퍼블리싱을 결심한 걸 보면 또 의외의 성과를 거둘지도.
프로젝트 C
*영화감독 브랜든 크로넨버그 참여


영화광이라면 가장 주목해야 할 신작 <프로젝트 C>는 게임계의 스토리텔러와 영화계의 비주얼리스트가 힘을 합친 게임이다. <허 스토리>, <임모탈리티> 등 실사 영상을 사용한 내러티브 게임을 제작한 샘 발로우와 <포제서>를 선보이며 아버지 데이빗 크로넨버그 못지않은 기괴한 상상력을 과시한 브랜든 크로넨버그가 작업에 참여했다. 아쉽게도 피상적인 이미지를 담은 짧은 영상과 스틸컷만 공개돼 어떤 게임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그동안 실사 영상으로 게임을 만든 샘 발로우와 개발사 '하프 머메이드', 그리고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만남이니 실사 영상의 내러티브 게임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현재 개발사는 이 게임을 두고 '만화경', '비디오 게임 사상 최초'라는 등의 단어를 쓰고 있다. 뭔지 몰라도 상당히 파격적인 내러티브 게임이 도착하지 않을까. 참고로 블룸하우스 게임즈는 이 게임을 'Project C██████'라고 표기하고 있다.
슬립 어웨이크



<스펙 옵스: 더 라인>과 <히어 데이 라이>의 디렉터 코리 데이비스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로빈 핑크는 개발사 '아이즈 아웃 스튜디오'를 설립해 <슬립 어웨이크>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먼 미래, 잠든 사람들이 사라지는 기이한 일이 반복되고 남은 사람들은 '깨어있기 위해' 무모한 실험에 투입된다. 주인공은 실험에서 탈출해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만 한다. '사이키델릭 호러'라는 말처럼 화려한 색감과 괴이한 캐릭터 디자인이 눈에 확 들어온다. 신생 개발사의 첫 작품이지만, 베테랑 개발자와 베테랑 음악가의 역량이 짧은 순간에도 빛을 발한다. '깨어있어야만 하는 세상'의 공포는 어떤 모습일까. 독특한 설정과 화려한 이미지만큼 강렬한 게임플레이까지 담기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더 시뮬레이션

<더 시뮬레이션>은 어쩌면 관객에게 알맞은 게임일지도 모른다. 이 게임은 은퇴한 게임 디자이너가 어떤 사건의 증거품을 조사하던 중 그 증거품에 담긴 숨겨진 모드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숨은 비밀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이 극중 게임에 들어가 비밀을 직접 찾는 플레이 방식이 우리가 영화를 보는 모습에 상호작용을 더한 것과 비슷해보인다. 실제로 블룸하우스 게임즈는 '제4의 벽을 넘어 끔찍한 진실을 파헤쳐보는'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공개한 짧은 영상에서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의 현실과 폴리곤이 두드러지는 극중 게임의 간극이 돋보이며, 게임 속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공포 요소가 게이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게임 설정이나 플레이 스타일 등 호기심과 기대를 불러일으키지만, 하나 걸리는 건 개발사 '플레이미 스튜디오'가 이런 게임을 처음 제작한다는 사실. 전혀 다른 장르에 도전한 플레이미 스튜디오가 블룸하우스 게임즈과 한 획을 그을 수 있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