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극은 미국 영화의 초창기를 융성하게 한 장르였다. 1940년에서 1960년대까지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의 절반 이상이 서부극이었을 거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급속도로 제작 편수가 줄었다. 이탈리아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른바 ‘스파게티 웨스턴’의 인기와 샘 페킨파 등의 수정주의 서부극 탓일 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경 구절과 함께 나타나는 총잡이

하지만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 등의 정통 서부극의 사양을 스파게티 웨스턴 등의 변종 장르 탓이라 잘라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정통의 매너리즘이 변종을 불러일으켰을 거라는 측면도 고려해봐야 한다. 왜 서부극은 지리멸렬해졌을까. 새삼스럽고 뜬금없는 의문일 수 있다. 영화사가들의 자문을 구해야 하나. (최근 다시 성행하는 조짐은 있다. 돌고 돌고 또 돌고?)
<페일 라이더>는 1985년에 제작된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도 맡았다. 무명 배우였던 그가 스파게티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발탁되어 스타로 등극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이후 그는 여러 편의 서부극을 직접 제작 감독하게 되는데, <페일 라이더>는 그 연속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1992년에 제작된 <용서받지 못한 자>의 전주라는 의견도 많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이 작품이 <용서받지 못한 자>의 후일담처럼 여겨진다.
영화는 평원과 숲, 그리고 잔설이 희끄무레한 먼 산 등 삼등분된 풍경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일군의 말 탄 자들이 등장하고 느닷없이 한 마을을 습격해 횡포를 부린다. 가축들을 쏴 죽이고 주민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시작부터 어딘가 전형적이다. 무고한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무법자들. 다만, 살인은 삼간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선 무법자들이 떠난다.
한 소녀가 있다. 이름은 매간(시드니 페니). 열다섯 살이다. 매간은 자신이 아끼는 강아지를 쫓아가며 아수라장 한복판을 뛰어다닌다. 결국 강아지는 무법자들의 총에 맞아 죽는다. 슬픔에 잠긴 매간은 강아지를 땅에 묻으며 성경 구절을 읊조린다. 「시편」 23편이다.
이름 없는 남자는 과거도 없다

“내가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심이라/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히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매간의 기도와 오버랩되면서 한 남자(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을 타고 등장한다. 갈색 가죽 코트에 검은 모자. 점점이 얼룩이 찍힌 흰말을 탄 남자의 모습 위에 기도가 겹친다. 남자는 한 읍내로 들어선다. 그 마을은 코이 라후드(리처드 다이사트)라는 사업가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다. 산골 마을에서 횡포를 부린 무법자들은 다름 아닌 그의 졸개들이다. 라후드는 그 일대의 금광 사업으로 재산을 끌어모은 자다.
하지만 라후드가 손아귀에 넣지 못한 금광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무법자들을 풀어 난동을 부린 바로 그 마을, 커번 금광이다. 라후드 소유의 다른 광산보다 더 많은 금이 발견될 수 있는 지역이다. 라후드의 겁박에도 불구하고 커번 광산의 주민들은 끝끝내 버틴다. 그러다 읍내에 나갔던 마을 청년 훌(마이클 모리아티)이 라후드 패거리로부터 몰매를 맞는다. 그때, 가죽 코트의 남자가 홀연히 나타나 패거리를 혼내준다. 훌이 그를 커번으로 데려온다. 영화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목사님은 소리 없이 우리를 돕지

남자는 이름이 없다. 떠돌이 총잡이인 줄 알았으나 훌의 집에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데, 목엔 하얀 로만 칼라가 있다. 훌과 동거 중인 사라(캐리 스노지레스)와 그녀의 딸 매간이 반색한다. 목사 차림인 거다. 이후 그는 마을 주민들에게 “목사님”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가 기도를 하거나 성경 구절을 읊조리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는 그저 마을 주민들을 도와 해머를 들고 일만 할 뿐이다.
로하드의 아들 조쉬(크리스 펜)는 망나니다. 패거리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데, 커번 광산에 괴상한 이방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긴장한다. 조쉬가 통제하는 광산엔 수력으로 작동하는 모터까지 설비되어 있으나 금은 도통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에 커번 광산에선 조금씩 금 쪼가리들이 발견된다. 라후드 패거리들은 애가 닳는다. 연신 겁박을 가하지만, 그때마다 목사에게 제압당한다. 도시에서 정치인 및 법률가들을 매수하고 돌아온 조쉬의 아버지 코이는 목사와 담판을 벌인다. 마을 주민에게 일 인당 천 불씩 줄 테니 24시간 내에 모두 마을을 떠나라는 것.
주민들은 투표를 한다. 이때, 목사는 아무런 조언도 없이 그들 스스로 자각하여 움직이게 만든다. 결국 주민들은 커번 광산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며 라후드 패거리와의 일전을 각오한다. 라후드는 스탁번(존 러셀)이라는 무법자 출신 보안관을 끌어들여 주민들을 쫓아내려 한다. 스탁번의 패거리는 모두 일곱 명. 그렇게 최후의 일전이 벌어진다.
그 남자, 낯설기도 낯익기도 하다
전형적인 서부극 스토리이다. 결론도 보나마나일 정도다. 미국 고유의 개척정신과 법과 윤리를 조롱 혹은 악용하여 떼돈을 번 악당 등, 모든 게 낯익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러한 설정들을 빤하지 않게 설득시키는 묘한 힘을 발휘한다. 겨울이 배경인 만큼 황야의 이글거리는 태양 따위 나타나지 않아서일까. 잔설과 광산 특유의 검은색, 그 명확한 흑백의 대조로 선명해지는 산의 모습은 어떤 냉엄하고 확실한 의지 같은 걸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목사의 내면 같기도 하다.
목사의 과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엄청난 완력과 총 솜씨로 봐선 한때 잘나가는 총잡이였을 거라는 추측만 가능하다. 눈빛은 잔잔하되, 뭔가 깊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 아련하고 쓸쓸하다. 그러면서도 모든 행동이 냉정하다. 사라와 매간, 두 모녀가 동시에 그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 사랑이 단순한 남녀 간의 정념만은 아니다. 어떤 종교적 신실함과 갈구가 담겨있다. 모녀를 대하는 목사의 태도 역시 어딘가 비밀스럽다. 그녀들의 욕망과 갈증을 돋우기도 채워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떠날 땐 가차 없다. 아무런 인사도, 감정적 균열도 없다.
그가 사라짐으로써 모녀가 진정한 사랑, 삶에 눈뜨게 될 거라는 건 영화가 끝나고 나서나 깨달을 수 있는 사항이다. 영화는 분명 어떤 내밀한 전사(前史)를 품고 있는 듯 보이나,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족적은 전혀 없다. 목사는 갑자기 하늘에서 백마 타고 내려온 기사와도 같다 (‘페일라이더Pale Rider’는 묵시록의 네 기사 중 ’죽음의 청기사‘를 뜻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 인간의 모든 조건과 제약들, 그리고 그것의 극복을 행동으로 육화하는 천사 같기도, 악마 같기도 한 인물이다. 아주 낯익기도 낯설기도 한 인물.
이 영화엔 모두 몇 편의 서부극이 숨어 있을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필모그래피와 삶을 거기 겹쳐 보자.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달러 삼부작’ 주인공) ’이름 없는 총잡이‘로 스타가 된 그가 20여 년이 지난 후, 역시 이름 없는 목사로 둔갑한 상황. 그 바탕에 어떤 의미가 내재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게 이 영화의 재미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빤한 서부극 형태로 반추하는 감독 자신의 내면. 그렇다면 결국 자기 풍자이자 성찰일 것이다. 목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책무를 지녔으나, 하느님의 현현은 어쩌면 말씀조차 지워진 자리에 낮도둑처럼 불쑥 나타날 수도 있다. 목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은 스탁번이다. 스탁번의 부하들을 차례로 제거한 뒤 탄창을 갈아 끼우며 천천히 다가오는 검은 모자의 사나이. 스탁번이 화들짝 놀란다. “너는...”이라 뇌까린 뒤 총을 뽑으려 하나 목사의 손놀림이 훨씬 빠르다. 유일하게 목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스탁번이 쓰러진다. 결국 목사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의 엔딩 역시 아주 익숙하다. 모든 악당을 처치한 뒤, 말을 타고 사라지는 사내의 뒷모습에 매간이 소리친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고전 서부극 <셰인>(1953)의 마지막 장면(“돌아와요, 셰인!”)과 판박이다. 그 외, 이 영화엔 더 많은 고전 서부극이 인용돼 있다. 숨은그림찾기일 수도, 오마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도 목사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모든 걸 알고 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진짜 메시지마저도. 각자 음미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