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영상미와 그 영상미 속의 허무감,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다. 이뤄졌다면 달콤할 수 있었을 사랑의 상대가 형수였던 서독, 같은 사람을 사랑했지만 그 사람의 눈길이 서독에게만 향했던 것을 알고 방황했던 동사, 호수에 비친 분열된 자기 자신에게 칼질을 하던 모용언까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역설적이고 허무하다. 달콤한 사랑의 기간은 짧고 허무함은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달콤한 사랑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마치 로즈뱅크 위스키처럼.
로즈뱅크는 스코틀랜드 로우랜드 지방에 위치한, 아니 위치했던 증류소다. 1993년도에 문을 닫았고 그 이후로 다시 열리지 않았다. 생산이 중단되고 얼마 후 거대 주류 자본인 디아지오가 증류소를 인수했지만 로즈뱅크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이 ‘거대 자본이 인수한 로즈뱅크는 더 이상 로즈뱅크가 아니다’라며 증류소 증류기를 떼다 팔아먹어버렸다는 전설 같은 스토리가 전해지는 증류소다. 단순히 없어진 증류소야 여기 말고도 많지만 이 증류소가 유명해진 이유는 뭣보다 ‘맛있는’ 술을 만들었던 증류소였기 때문인데 최근 다른 곳에서 증류소를 다시 인수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설사 인수해서 위스키를 재생산하더라도 예전 그 맛을 재현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대개 스카치위스키, 특히 싱글 몰트의 경우 쉽게 버번의 바닐라 향, 쉐리의 꾸덕꾸덕함, 그리고 피트의 강렬한 소독약 냄새 등으로 조악하게 구분하고 표현할 수 있을 텐데 로즈뱅크의 위스키는 이 중 어느 분류에도 속한다고 하기 어렵다. 숙성 연도와 도수, 캐스크 등에 따라 다르지만 전 생산품에 거쳐 꽃향기가 나는, 마치 첫사랑 같은 맛이 나는 위스키다.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내가 꿀물을 마시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콤한 향기와 맛을 지닌다. 숙성 연도와 도수가 올라갈수록 뒷맛에 묵직함이 배가되지만 단맛의 무게감 역시 증가해 그야말로 마니아를 양산하는 위스키이다. 거기다 보관된 원액이 다 소모되면 다시 생산될 기약이 없다 보니 가격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2017년 말에 정규품도 아닌 26년 숙성 제품이 일본에서 14만 엔에 거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