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농촌 마을 움브리아에서 양봉을 업으로 하는 집안의 맏이로 태어난 젤소미나(마리아나 알렉사드라 룽구). 네 자매 중 첫째인 이 '이탈리아 장녀'는 K-장녀 못지않은 책임감으로 집안의 '대표'를 맡고 있다. 12살이지만 능숙하게 벌집을 관리하고 때가 되면 꿀을 채집해 가공까지 책임진다. 벌의 떼죽음이 전염병 때문이라고 넘겨짚는 아버지와 달리 '독'이 원인임을 알아차리는 영특함도 지녔다. 일손이 부족할 때면 부모님을 도와 토마토와 채소를 재배하고, 틈틈이 어린 동생들까지 돌본다. 하지만 고된 노동은 십 대 소녀라면 응당 품고 있어야 할 생기를 그에게서 앗아갔다. 그래서 소녀가 바라본 이탈리아 시골은 전원, 자연, 목가 같은 단어와는 거리를 둔다. 카메라는 노동하는 곳으로의 농촌을 비추며 가난과 무지, 삶과 역사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황량한 풍광을 응시한다.

돌봄 노동, 생계, 미래 걱정과 같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늙은 여자의 미간 주름처럼 열두 살 소녀에게 깊이 박히는 동안 그의 가족 공동체도 외부 세계와 불화하며 만만찮은 시간을 통과한다. 외부와 단절된 이 가족은 엄격한 아버지 볼프강(샘 루윅)의 주도하에 돌아간다. 그는 세상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을 것이라 믿고 안전한 세계를 구축한다는 명목하에 가족을 붙든다. 독일계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그리고 이모처럼 행동하고 땅을 일구는 것을 도와주지만 혈육은 아닌 코코(사빈 티모테오)의 존재는 이들이 외부인임을 암시한다. 모종의 공동체에 속해 공통된 상을 좇아 대도시의 산업 문명과 자신들을 유리하려 애쓰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상상된다.
하지만 전통을 지키는 목가적 삶이라는 좌파적 유토피아는 자본주의가 틈입하고 현대화가 몰아치는 오늘날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가족은 생존을 위해 분투하지만 농장은 이미 고사리 손이라도 보태지 않으면 경영이 어려울 만큼 기울었다. 순수한 꿀을 추출하기 위해 첫째는 물론, 8살 동생도 작업에 투입되지만, 수만 마리의 벌이 날아드는 현장에서 양봉일을 이어가는 소녀들의 두꺼운 마스크와 보호복은 금방이라도 함락될 듯 위태롭기만 하다. 고립된 개인과 공동체는 동시대적 환경에 속절없이 흔들린다. 이웃의 제초제 사용으로 벌이 떼죽음을 당하는 동안 세상은 규정에 어긋난 작업장을 정비하라 요구한다. 문명과 자연, 착취와 가난, 돈과 사랑이 대립적으로, 동시에 혼재돼 표현되며 영화는 어디로도 갈 수 없는 한 가족의 곤궁을, 정주 불가능함을 웅웅대는 벌의 소리로 불길하게 펼쳐낸다.

이 가족의 아이러니는 뜻밖의 방문자로 인해 증폭된다. 사회봉사를 위해 소년원 출신 독일 소년 마르틴(루이스 휠카)이 젤소미나의 가정에 파견된다. 마르틴은 이곳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교도소행이다. 여자아이들만 가득한 농장에 범죄를 저지른 소년의 등장은 일순 긴장을 자아내지만, 위탁 관리에 따른 지원금은 이 모든 긴장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말 없는 소년 마르틴은 든든한 일손으로 단숨에 아버지의 신뢰를 얻고, 젤소미나는 소년에게 자신의 노하우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하지만 보호관찰이란 하나의 명목일 뿐, 이 가정에 필요했던 건 불평 없이 손을 보탤 일꾼이었다. 자연주의적인 방법으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부모가 어린 자녀들도 모자라 외부자인 소년 마틴까지 일터로 내모는 모순은 가족의 불화와 분쟁으로 이어지고, "어떤 것들은 살 수 없"다라 강변하는 볼프강의 반소비주의 정치는 도전받는다.

때때로 사랑하고, 때때로 불화하던 이 가족에게 작은 소동이 일며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전통을 가장 잘 보존해온 가정을 뽑아 상을 주는 유명 TV프로그램 '전원의 기적'팀이 촬영차 마을을 방문하자 젤소미나가 의외의 열정을 보인 것이다. 진행자 밀리(모니카 벨루치)는 소녀 앞에 '여신'의 현현처럼 등장하고, 저쪽 세계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이 젤소미나의 마음속에 싹튼다. 보수적인 아버지는 출연을 반대하지만 몰래 참가 신청을 한 끝에 젤소미나 가족은 프로그램에 합류한다. 복수의 욕망이 충돌하는 이 연극판에서 젤소미나 가족은 전통적 가치를 상징하는 근면한 가족 농부의 기수로, 대량 생산 식품이라는 악에 맞서 싸우는 유기농 장인으로 분한다. 의욕적인 이웃들은 우승하면 "관광업에 뛰어들기 위해 호텔을 지을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며 사생결단의 태도로 경연에 임한다. 하지만 로마시대의 복장과 과장된 분장을 견디며 힘들게 얻은 기회의 시간에 가장 볼프강은 더없이 무능한 모습을 내보인다. 젤소미나와 마틴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인상적인 공연도 선보이지만, 모두의 삶을 구제하려 한 젤소미나의 노력은 끝내 실패할 운명으로 보인다. 농약에 중독돼 소멸하고야 말 시골의 벌처럼, 영화 내내 예감된 운명처럼, 이야기의 끝은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사라진 신화 같은 아동노동이 마냥 허무맹랑한 상상은 아니다. <더 원더스>의 감독 알리체 로르와커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춘기 소녀를 자신의 과거에서 초대했다. 실제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양봉 농가 출신인 감독은 영화에 자전적 요소들을 녹여 농촌 공동체가 처한 위기, 독일 출신 부친과의 추억 등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사회적 리얼리즘과 마술적 리얼리즘을 유려하게 오가는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은 젤소미나의 입에서 말 대신 생동하는 벌들로, 고대 신화 속 기원 설화의 초현실적인 신비로움으로, 증발하듯 사라지는 이미지로 소녀의 성장과 한 가족의 실존적 삶의 양태에 그만의 초월적 관점과 독특한 색깔을 입혔다.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은 불과 4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젊은 감독임에도 신성을 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감독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장편 데뷔작 <천상의 몸>(2011)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대받은 뒤 두 번째 연출 작인 <더 원더스>(2014)로 제67회 칸영화제에서 2등 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이탈리아 정체성 삼부작'의 출발을 알린 <더 원더스> 후에 공개된 <행복한 라짜로>(2018>는 각본상을 탔고, 지난해 내놓은 신작 <키메라>(2024)도 경쟁부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