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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소리 "공연 중 무대에서 굴러떨어졌지만 아무도 몰라..."

이진주기자
문소리(사진=씨제스 스튜디오)
문소리(사진=씨제스 스튜디오)

데뷔 24년 차, 문소리는 여전히 바쁘다. 올해 tvN 드라마 <정년이>,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 그리고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문소리를 만났다. 공연 중 객석으로 추락한 에피소드를 전하며 웃어보이던 문소리는 어린 시절 소리를 배웠던 故 남해성 명창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작품과 삶의 경계를 느슨하게 넘나드는 배우 문소리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정년이>도, 연상호 감독의 신작 <지옥2>도 특별출연이에요. 특별출연을 자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의외로 마음이 약해요. 거절을 잘 못해요. 그래서 매니저들이 고생하죠. (웃음) 두 작품 모두 촬영이 끝난지는 꽤 되었는데 요즘 보고 ‘저 때 저랬구나’하면서 추억해요.

사실 연초에 <지옥2>, <정년이>, <폭싹 속았수다>까지 연달아 3개를 끝내고 몸이 좀 아팠어요. 제가 잘 안 아프거든요. 심지어 코로나 걸렸을 때도 밀린 집안일을 할 정도로 크게 아프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가지로 몸이 아프더라고요. 이렇게 나이가 느껴지나 싶었어요. (웃음) 그런데 연극 '사이드 인사이드'를 하면서 많이 회복이 되었어요. 공연에 참 감사해요.

지난 10월에 2년 만에 연극 복귀작 '사운드 인사이드'가 끝이 났어요. 연달아 촬영하고 연극을 하시면 오히려 몸이 더 안 좋아질 것 같은데 건강이 좋아졌다고요. 규칙적인 생활 덕인가요?

맞아요. 루틴이 만들어지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드라마, 영화 촬영은 전국 방방곡곡 팔도를 돌아다니잖아요. 카니발도 너덜너덜해지고 저도 너덜너덜해지는 거죠. (웃음) 그런데 연극은 정해진 시간, 장소에서 연습하고 공연을 하니까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돼요. 그래서 오전에 운동하고 피부과도 가고 한의원도 가면서 나를 보충해 줄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어요. 연습 한 달, 공연 세 달 총 네 달을 이렇게 살다 보니까 몸이 진짜 좋아지더라고요.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사진=라이브러리 컴퍼니)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사진=라이브러리 컴퍼니)

이번 작품이 유독 대사가 많았어요. 한 시간 반 동안 퇴장 없이 연기를 해야 했는데 특별한 실수 없이 끝났나요?

늘 긴장을 해서 그런지 대사 실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무대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요. 두 번째 공연이었어요. '사운드 인사이드'가 암전이 거의 없는데 중간에 완전한 암전이 한 번 있어요. 그때 제가 무대 끝에 있는 바구니에서 음식을 꺼내서 테이블에 세팅을 해놔야 돼요. 소품에 형광 찌를 붙여 놓고 걸음 수도 계산을 했어요.

공연 중에 빛을 향해서 갔는데 이상한 거예요. 손을 뻗었는데 만져지지가 않아요. 느낌이 안 좋아서 주저앉았어요. 몸을 작게 말고 오리걸음으로 조금씩 이동을 했죠. 그러다 쿵 떨어졌어요. 무대가 그리 높지 않았는데 한 천 미터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웃음) ‘다 끝났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서 무대를 잡고 기어 올라갔어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무서워서 쭈그려 앉아있었어요. 음악 소리가 커서 그런지 제가 떨어진 걸 아무도 몰랐대요. 무대 감독님이 모니터로 보시다가 제가 주저앉아있으니까 조명을 켜주셨어요. 그다음에 아무렇지 않은 척 이어서 음식 꺼내서 옮기고 진행을 했죠. (웃음) 연기 마치고 무대 뒤로 오니까 손이 바들바들 떨리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얼마나 공포스럽고 외로운지. (웃음) 다음날 병원 가보니까 팔다리에 거대한 멍이 들었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그 빛이 소품에 붙어있는 형광 찌가 아니라 관객이 차고 있는 스마트 워치 빛이었어요. 저는 스마트 워치를 안 써서 몰랐는데 그게 움직이면 빛이 난다면서요? 그 빛이 제가 보던 빛이랑 너무 비슷한 거죠. 그다음부터 소품에 붙이는 형광 찌도 두 개씩 붙이고 스마트 워치는 가방에 넣어달라고 관객분들에게 부탁했어요. 공연 초반에 액땜을 제대로 했죠.

<정년이>의 오경화, 김태리 배우와 목포로 어학연수를 갔다 오셨다고 들었어요. (문소리와 오경화, 김태리는 극 중 모녀관계로 등장한다.)

3박 4일 정도 목포로 어학연수를 갔어요. 대본 붙들고 사투리 연습을 하러 간 거예요. 사실 (오)경화는 원래 고향이 광주예요. 우리랑 같이 트레이닝하러 온 거죠. 현지에 가서 집중적으로 사투리 연습도 하고 목포의 땅과 음식의 기운을 받으면서 하루 종일 붙어있었어요.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한 방에 모여서 작품 얘기도 하고 너무 좋았죠. 어제도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밥 먹고 <정년이> 본방을 봤어요.

극 중 딸인 정년이가 국극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엄마로 등장하잖아요. 만약 실제 딸인 연두 양이 연기를 한다고 하면 어떨 것 같으세요?

(깊은 한숨으로) 연기는 안 돼. (웃음)

반대하실 거예요?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다른 것보다 걔가 겪을 많은 것들이 예상이 되잖아요. 저는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네 편이야’라고 말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지만 제가 평생 연기를 해왔는데 마냥 외면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너랑 나랑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고 솔직히 말할 것 같아요. (웃음) 하지만 결국은 부모가 못 말린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랬고요. 실패하더라도 자기가 선택한 길은 가봐야 한다고 봐요.

〈정년이〉(사진=tvN)
〈정년이〉(사진=tvN)

지난 10일 드라마 <정년이> 10화 중에 ‘추월만정’을 부르셨어요. 그 장면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는 시청자들이 많은데요. 소리는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제가 소리만 1년을 연습했어요. 핸드폰으로 선생님 소리를 녹음해서 계속 따라 했어요. 그 방법밖에 없어요. 최대한 많이 듣고 많이 따라 하고 선생님이랑 같이 불러보는 거예요.

추월만정을 배우기 시작할 때 남편한테 그 대목을 들려줬어요. 추월만정이 느린 진양조장단이거든요. 남편이 한 십분의 일도 안 듣고는 “이걸 사람들이 듣겠어?"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듣게 해야 돼” 그랬죠. 관객들이 이 판소리를 정말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큰 미션 중 하나였어요.

문소리(사진=씨제스 스튜디오)
문소리(사진=씨제스 스튜디오)

20대 때 소리를 배우셨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공연 때문에 배우신 건가요?

사연이 좀 긴데…(웃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바이올린 들고 다니면 다들 부잣집 딸인 줄 알았지만 형편이 정말 어려웠어요. 아주 저렴한 가격에 레슨을 해주는 선생님을 겨우 만나 음악을 하는데 고등학생이 딱 되니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만하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우리 엄마가 이제는 더 못한다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갔어요. (문소리는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출신이다) 물론 관현악 동아리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꼴도 보기 싫었어요. 그래서 눈을 돌린 게 국악반이에요. 국악반에서 가야금도 배우고 전통혼례 반주도 해주면서 돈도 받았어요.

그러다 연극한다고 휴학했다가 졸업은 해야겠다 싶어서 다시 학교에 왔는데 공부가 너무 재미없는 거예요. 어느 날 마음이 허해서 학교에서 광화문, 청계천, 종로를 헤매고 다녔어요. 우연히 종로3가를 지나는데 어떤 건물 꼭대기에서 창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거길 들어갔죠. 거기에서 1년 반을 소리 공부를 했어요. 저를 가르쳐주셨던 분이 남해성 선생님이에요. (故 남해성 명창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명예보유자이다.) 산공부도 다니면서 밥 먹고 노래만 했어요. 저를 너무 예뻐해 주셨는데 2020년에 돌아가셨어요. 코로나 시기여서 상갓집에도 못 갔어요. (문소리는 눈물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정년이>에 출연하게 된 계기에 남해성 선생님과의 시간이 큰 영향을 줬겠네요.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아요.

그렇죠. 선생님은 70대까지도 목이 짱짱하셨어요. <정년이> 연습하면서 유튜브에 남아있는 선생님 소리를 듣는데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지난 10월 공개된 넷플릭스 <지옥 2>는 어떻게 출연하시게 되신 건가요?

강수연 선배님 장례식장에서 연상호 감독님과 양익준 배우를 만났어요. 두 분 다 친하거나 편한 사이가 아니었는데 같이 (강수연) 언니 추억하다가 ‘한번 모입시다’라고 얘기했어요. 이후 언니 단골집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러다 연상호 감독님이 '진짜 작은 역할인데 <지옥 2> 시나리오 보실 생각이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예산도 될지 모르겠고…’라고 덧붙이길래 ‘별로 안 비싸요. 맞춰드릴게요’라고 했죠. (웃음)

〈지옥2〉(사진=넷플릭스)​
〈지옥2〉(사진=넷플릭스)​

<지옥 2> 시나리오 읽어보니 어땠어요?

제가 연상호 감독님 작품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이 <지옥>이었어요. 그래서 웬만하면 하고 싶었는데 제 캐릭터(이수경 정무수석)가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다른 인물들은 다 미쳐있는데 얘 혼자만 정상이고 정무수석이라고는 나와서 재미없는 말만 엄청 길게 하더라고요. 그 대사들이 시청자들이 그냥 돌려버리거나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기 십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상호 감독님이 그러더라고요. ‘이 말이 들리게 해달라’고. ‘난 이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어요. 제가 도전할 수 있는 역할을 좋아해요. 그래서 출연하게 되었어요. 역시 현장은 너무 재밌었어요.

<지옥 3>가 나온다고 하면 출연하실 의향이 있나요?

계약서를 좀 보고요. (웃음) 연상호 감독님과의 작업은 언제든지 열려있어요. 사실 연상호 감독님과는 영화 취향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많이 달라요. 그래서 더욱 보완이 되는 관계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서로의 다른 부분을 채워주면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관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요. 팀 분위기도 매우 좋아요. 아직도 <지옥 2> 단톡방이 바빠요. 작품에 대한 좋은 기사들 링크 보내면 (김)신록이와 (김)성철이가 가장 열심히 반응해 줘요. (웃음)

2017년 <여배우는 오늘도>를 여전히 좋아하시는 분이 많아요. 앞으로의 연출 계획은 없으신가요?

집에 먼저 연출을 하실 분이 대기 중이셔서… (웃음) 한 집에 배를 두 대를 띄울 수는 없어서요. 한 대가 먼저 출항하면 생각해 보려고요. 그런데 그 배가 아주 느려터졌어요. 그래도 허튼짓은 잘 안 하시는 분이기에 믿고 있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