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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4년 만에 돌아온 검투사 〈글래디에이터 2〉① 리들리 스콧 감독·폴 메스칼

성찬얼기자
〈글래디에이터 2〉 포스터
〈글래디에이터 2〉 포스터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24년 만에 대표작의 속편을 공개한다. 2000년 개봉해 센세이널한 반응을 모은 <글래디에이터>의 속편 <글래디에이터 Ⅱ>(이하 편의상 2로 표기한다)는 막시무스의 죽음 이후 20여 년이 흐른 시점에서 막을 연다. 로마군 장군 아카시우스에게 아내를 잃은 루시우스가 복수를 꿈꾸며 검투사의 정점에 올라선다는 내용은 전작을 연상시키지만, 이보다 더 큰 계획에 휘말리며 속편만의 이야기를 펼친다. 과연 리들리 스콧이 다시 찾은 '로마'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제작진은 이 작품을 어떻게 준비했는가. 씨네플레이는 리들리 스콧 감독과 주연 배우 폴 메스칼, 페드로 파스칼, 덴젤 워싱턴, 코리 닐슨의 인터뷰를 준비했다. 이번 1부에선 리들리 스콧과 폴 메스칼이 말한 <글래디에이터 2>를, 이후 공개할 2부에선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명연기를 펼친 페드로 파스칼과 덴젤 워싱턴과 코리 닐슨의 이야기를 전한다.

 


리들리 스콧

“내가 작업한 영화 중 가장 큰 규모”

폴 메스칼(오른쪽)과 리들리 스콧 감독
폴 메스칼(오른쪽)과 리들리 스콧 감독

 

리들리 스콧 감독은 2000년 <글래디에이터>를 공개하며 21세기 커리어를 화려하게 열었다. <글래디에이터>는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호아킨 피닉스)의 계략에 빠져 검투사로 전락한 로마군의 강직한 장군 막시무스(러셀 크로우)를 중심으로 한 액션영화다. 당시 VFX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로마의 풍경과 막시무스가 마주한 다양한 검투 장면의 날선 박진감을 담아내 인기를 얻었으며, 극중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황제와 원로원의 대립까지 녹여내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 이번 작품에서 오랜만에 로마 검투사의 이야기로 돌아온 리들리 스콧은 “내가 만든 영화 중 손에 꼽을 만”한 <글래디에이터 2>를 완성했다.

<글래디에이터> 속편 제작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는가?

 

큰 성공을 거둔 영화에 대한 모두의 기대감을 충족하는 속편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찾은 방법은 전편을 관통하는 정서적 맥락을 이어가는 영화로 만드는 것이었다. 액션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우리는 그 정서적 맥락을 이 영화에도 적용시켰다.

속편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는가?

 

나는 스트레스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애초에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이 일을 하면 안 된다. 계속 움직이고 신경 써야 할 게 끊이질 않으니까. 물론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난관은 있었지만 난관이야말로 일이 재미있는 이유다! 겁내지 않고 정면으로 들이받을 생각이었다. 이제는 TV 덕분에 그냥 스위치만 켜면 내가 만든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전편이 그동안 계속 내 머릿속에 있었고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밤에 침대에 누워 있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적어놓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글래디에이터>는 장수했다. 치열한 액션과 불멸 또는 필멸이라는 주제뿐만 아니라 감정의 무게가 더해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내가 정한 방향이 바로 불멸이었다. 그 영화에서 나는 천국을 촬영했다. 천국 촬영은 내가 맡은 것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중요한 과제였다. 천국 장면은 토스카나에서 촬영했다. 토스카나는 정말로 천국이었다.

<글래디에이터 2>에는 누미디아가 포위되는 오프닝씬을 비롯해 놀라운 시퀀스가 많이 등장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무엇이었는가?

 

그 오프닝 시퀀스가 가장 힘들었다. 누미디아의 해상이 포위되는 장면을 사막 한가운데서 찍었으니, 실제론 바다가 모래였다. 안에 노 젓는 이들이 탈 수 있는 실물 크기의 배를 세 척 제작했다. 길이 100피트에 높이 3층, 갑판 위 병력 등 모두가 로마의 선박과 똑같이 설계되었다. 그다음 환상적인 특수효과 업체 ILM을 통해 50척의 배를 만들었고, 더 많은 배와 사람들, 바닷물에 ILM의 마법이 적용되었다. 나는 그 시퀀스가 마음에 든다. 한 폭의 그림 같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 촬영이야말로 소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기차 세트이자 최고의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글래디에이터 2>엔 콜로세움에 실제 상어가 등장하는 장면도 있다. 그 장면의 콘셉트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개발 단계에서 역사적으로 콜로세움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부 살펴보았는데 선택지가 정말 많았다. 실제로 콜로세움에 물을 넣어서 해상전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물에 장어를 넣어두었으니 물에 빠지면 아마 전기 곰치의 공격을 받았을 거다. 로마가 이룬 성과를 생각해 보라. 콜로세움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안에 당연히 바다 생물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콜로세움 세트의 약 60%를 실물 크기로 제작했다. 실물 크기로.

당신은 폴 메스칼이 젊은 시절의 리처드 해리스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는데, 폴 메스칼이 연기하는 루시우스가 리처드 해리스가 연기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손자란 점을 상기시킨다.

 

폴 메스칼을 보면 젊은 시절의 리처드 해리스가 떠오른다. 옆얼굴이 정말 닮았다. 젊은 시절의 알버트 피니도 떠오른다. 1960년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같은 영화에서 피니가 보여준 소년 같은 매력이 엿보인다. 폴 메스칼은 연극 경험도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대규모의 경기장에서 연기할 때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힘찬 목소리가 필요했으니까.

폴 메스칼 말로는 아주 짧은 줌 미팅 이후에 캐스팅되었다는데, 정말인가?

 

나는 매력을 느끼면 곧장 직진한다. 그게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잠들기 전에 이야깃거리가 많이 필요하다 보니 평소 이것저것 많이 보는데, 침대에 누웠다가 평소라면 보지 않을 영상을 마주치기도 한다. 폴 메스칼의 <노멀 피플>(2020)이라는 작품이 그런 거였다. 평소 같으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눈에 들어와서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물론 그때는 누가 루시우스가 될지 모를 때였다. 하지만 폴 메스칼의 연기를 보고 항상 그를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었다. 사실 그 말고 다른 루시우스는 없었다. 루시우스는 매우 복잡한 캐릭터다. 복잡하고 미묘하고 다양한 연기가 가능한 배우는 많지 않은데, 당연히 폴은 가능하다.

영화에서 마크리누스 역의 덴젤 워싱턴의 연기도 대단했다. 그 캐릭터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마크리누스 캐릭터는 유화로 아름다운 색상과 의상을 보여준 아름다운 장 레옹 제롬의 그림을 참고했다(콜롬세움 검타수를 그린 '폴리케 베르소'도 그의 작품이다-편집자 주). 그 그림이 마크리누스 캐릭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덴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크리누스가 아프리카가 아닌 어딘가에서 전쟁 포로가 되었고 검투사로 활동하다가 자유를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마크리누스는 강하다.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었고 결국에는 로마 군대에 식량, 올리브, 빵, 와인, 주조 무기 같은 물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기상이 된다. 부유해진 그는 ‘내가 저 인간들하고 같은 자리에 앉을 순 없을까? 어차피 능력도 없는 것들인데! 내가 다 먹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된 거다.

영화를 만들 때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이 나이에도 여전히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건강한 이유는 평소 관리를 잘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래디에이터 2>는 내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에서 손에 꼽을 만하다. 최고일 수도 있고.

 


폴 메스칼

“내가 연기한 루시우스, 나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루시우스 역 폴 메스칼
루시우스 역 폴 메스칼

 

<애프터썬>에서의 섬세한 연기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얼굴이 된 폴 메스칼은 러셀 크로우에 이어 리들리 스콧의 검투사로 발탁됐다. 그의 캐릭터는 루시우스. 로마군 최전방에서의 활약이 그려졌던 막시무스와 달리 루시우스는 누미디아 소속 군인으로 로마군에게 패하며 아내를 잃는 비극으로 영화를 연다. 아카시우스 장군에 대한 복수심으로 콜로세움에 선 그는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를 로마에서 마주치며 점점 파란을 일으킨다.

루시우스 역에 캐스팅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를 기억하는지.

 

극장에 가기 위해 런던 이슬링턴의 어퍼 스트리트를 걷는 중이었다. 겨울이라 몹시 추웠었는데, 전화로 소식을 듣자마자 추위 따위는 잊어버렸다. 정말 황홀했다. 그러나 곧바로 무게가 느껴졌다. 당시 공개되면 안 되는 정보이고, 나중에 때가 되어 공개되면 아주 많은 사람에게 제각각 많은 의미를 줄 테니까. 혼자만 알고 있기가 버거운 비밀이었다.

캐스팅의 무게를 느꼈다고 했는데, 본인에게도 전편 <글래디에이터>의 기억이 있었던 것 같다.

 

전편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릴 때 아주 좋아한 영화였으니까. 열세 살 때 <글래디에이터>를 처음 보고 거의 집착 수준으로 좋아했다. 싸움과 신체적 요소가 나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크면서부터는 막시무스의 여정을 비롯해 좀 더 감정적인 요소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장과 변화를 함께하는 영화야말로 진정한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본 영화라서 아버지와 나눈, 정말로 중요한 영화다.

 

〈글래디에이터 2〉
〈글래디에이터 2〉

 

캐스팅 과정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과의 첫 만남은 어땠는가?

 

30분 정도 줌(화상 회의 프로그램)으로 미팅을 했는데, <글래디에이터 2>에 대해 얘기한 건 5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25분 동안은 게일식 축구(폴 메스칼의 고향 아일랜드에서 주로 하는 축구), 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2주 후,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 시점에서는 대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오디션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방식은 그게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캐스팅이 확정됐다. 정말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은 뭔가 느낌이 있으면 그대로 직진하는 스타일이다. 그가 거장인 이유도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촬영하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을 뽑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루시우스가 검투사들을 치료하는 의사 라비(알렉산더 카림)와 함께 나오는 모든 장면이 특별했다. 그나마 한숨 돌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루시우스를 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를 둘러싼 모든 폭력을 벗어난 상태에서 루시우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루시우스가 목욕할 때 루시우스와 마크리누스의 힘의 역학 관계가 바뀌기 시작하는 장면도 좋다. 덴젤 워싱턴과 함께 연기를 하다니! 그리고 루시우스가 수 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 루실라(코니 닐슨)를 만나는 장면도 좋다. 그가 가진 트라우마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이 영화에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그의 트라우마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드디어 로마로 돌아온 장면이기도 하고. 그 장면은 이 영화의 감정 지대를 탁하게 흐리는 장면이기도 하다. 루시우스는 어머니 루실라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그녀를 바라보지도 못한다. 긴장감이 넘친다. 아주 훌륭하고 흥미로운 장면이다.

 

〈글래디에이터 2〉 루시우스(왼)와 라비의 장면 중 하나
〈글래디에이터 2〉 루시우스(왼)와 라비의 장면 중 하나

 

검투사 역할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 준비했나.

 

(<애프터썬>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해 많은 일로 정신없이 바빴다. 크리스마스가 끝난 후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시작했고 식단도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진하게도 ‘좀 더 평범한 검투사를 목표로 하자’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게으름에서 나온 생각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 접근방식이 정말 흥미로운 것 같았는데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의 나 같은 몸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과연 거인들이 휘두르는 칼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후, 6개월간 일주일에 6일씩 훈련과 식단을 반복했다.

 

〈글래디에이터 2〉
〈글래디에이터 2〉

 

루시우스의 캐릭터를 찾기 위해 기본적으로 어떻게 접근했는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 남자는 왜 살아남는가? 루시우스는 왜 경기장에서 3주 동안 살아남는가? 왜 그는 북아프리카에서 살아남아 로마까지 왔는가?’ 내 생각에는 ‘그 어떤 동정도 거부할 것이다’,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고집스럽고 끈질긴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루시우스는 강하고 냉철하고 조용해 필요 없는 곳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상대를 예리하게 살필 것이다. 이게 루시우스에 대한 내 이론이다. 그가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성격이 아닌 이유가 있다. 그가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대본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루시우스는 반체제적이고, 확실히 약간 불안정한 면도 있다. 그가 하는 일들을 보면 목숨을 보전하려는 생각이 없어 보일 때도 많다. 이 영화에 나오는 다른 검투사들을 보면 으스대는 경우가 많은데, 루시우스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실제로 복싱에서 가장 무서운 선수들은 구석에 조용히 서서 바닥을 바라보는 선수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절대 허술하게 보아서는 안 될 사람들인데 루시우스가 그렇다. 그는 (영화 도입부의 사건 이후로) 인생 전체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허무주의자가 되었다. 자기가 죽든 말든 상관없는 사람이다. 마주치면 가장 무서운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기꺼이 어떤 위험이든 감수하려 드니까. 가능하면 그런 사람하고는 싸우지 않는 게 좋다.

※ 마크리우스 역 덴젤 워싱턴, 아카시우스 역 페드로 파스칼, 1편에 이어 루실라로 복귀한 코니 닐슨의 인터뷰는 2부에서 이어진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