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2000)의 24년 만의 속편 <글래디에이터 II>이 개봉해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 <글래디에이터>와 <글래디에이터 II>에 관한 갖가지 팩트들을 정리했다.

☉ 시나리오 크레딧에 데이비드 프란조니, 존 로건, 윌리엄 니콜슨이 올라 있는데, 그들은 팀이 아닌 개별적으로 참여했다. 1970년대 프란조니가 로마 검투사에 관한 역사서 「Those Who Are About to Die」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스토리 개발을 시작했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미스타드>(1997)에 참여한 그는 스필버그에게 검투사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전해서 영화 제작이 확정됐다. 리들리 스콧은 프란조니가 쓴 초고의 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애니 기븐 선데이>(1999)의 존 로건을 고용해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막시무스의 가족을 죽인다는 설정을 더한 것도 로건이었다.

☉ 드림웍스의 중역들은 프로젝트에 확신을 갖지 못한 리들리 스콧에게 장 레옹 제롬의 1872년 작품 「Pollice Verso」(폴리케 베르소)의 복제품을 선물해 그를 설득했다. 검투사가 자기가 쓰러트린 상대 위에 밟고 선 모습이 담겼다.

☉ 로마를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신들은 몰타에서 촬영됐다. 7개월간 100만 달러를 들여 지어진 높이 16미터의 콜로세움 세트도 몰타에 지어져 도시 배경 장면을 연출하는 데에 큰 효용을 발휘했다. 스콧은 실제 콜로세움이 너무 작다고 느꼈고, 영국과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들과 나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에게서 영감을 받아 보다 거대한 콜로세움을 만들었다.

☉ 막시무스 역에 새로운 얼굴을 원했던 리들리 스콧은 호주 영화 <이유없는 반항>(Romper Stomper, 1992)에서 네오나치 갱단 두목을 연기한 러셀 크로우를 보고 캐스팅했다. 휴 잭맨과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물망에 오른 배우였다. 멜 깁슨이 막시무스를 연기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고 판단해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리들리 스콧은 이를 부인했다. <글래디에이터> 촬영 당시 러셀 크로우는 35세였다.

☉ 제작자조차 초고가 너무 형편없어 러셀 크로우가 응하지 않을까 우려돼 시나리오를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크로우는 리들리 스콧을 먼저 대면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그를 만나 프로젝트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때 스콧은 “1억 달러의 예산이 있고, 고대 로마가 배경이고, 당신은 장군 역을 맡아요. 그리고 내가 감독을 맡습니다” 말했다고.
☉ <글래디에이터>는 시간순으로 촬영됐다. 다만 촬영이 시작된 후에도 시나리오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 <인사이더>(1999)를 촬영하던 중에 <글래디에이터> 캐스팅 제안을 받은 러셀 크로우는 제프리 와이갠드를 연기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지만, <인사이더> 감독 마이클 만은 “리들리 스콧의 작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보라”고 설득했다. 역할을 위해 18kg를 찌웠던 크로우는 <글래디에이터>를 위해 체중을 싹 뺐는데, 호주 농장에서 일상적인 일을 한 것이 전부였다고 밝혔다.

☉ 액션 장면을 찍고 러셀 크로우의 몸은 성하질 못했다. 아킬레스건을 다쳐 발뼈가 부러지고, 고관절에 금이 가고, 이두근 힘줄이 터졌으며, 이후 2년간 오른쪽 검지의 감각을 잃었다.

☉ 호아킨 피닉스는 리들리 스콧이 콤모두스 역으로 제일 먼저 점찍은 배우였다. 지금에야 피닉스는 세계 최고의 배우로 손꼽히지만 당시에 <글래디에이터>는 그에겐 큰 도전이었다. 영화에서 하차하게 해준다면 경비를 모두 돌려주겠다고 할 정도로 콤모두스를 연기하는 것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러셀 크로우와 함께 찍을 땐 그에게 욕하고 뺨을 때려달라 부탁했고, 크로우가 “연기를 해보지 그래, 이 구더기 같은 놈!”이라 말하자 “좋습니다. 이제 가볼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콤모두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을 찍고 난 직후에 기절할 정도로 역할에 몰입했다.

☉ 리들리 스콧은 신문을 보다가 호아킨 피닉스가 살이 붙은 걸 보고 프로듀서에게 알렸다. 프로듀서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피닉스는 스콧을 찾아가 “제가 뚱뚱한 햄스터 같다고요?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로마의 황제인데 방탕하게 보여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지만, 스콧은 즉시 살을 빼라고 말했고 피닉스는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 콤모두스는 처음에는 로마 민중의 총애를 받았지만 극적인 과대망상으로 인해 그 지위를 잃었다. 로마의 이름을 콜로니아 콤모디아나로 바꾸는 등 돈과 국민을 뜻하는 단어 등 많은 낱말에 제 이름을 포함시켰고,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해 로마 제국 멸망의 원인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시민과 원로원은 그의 통치에 지친 나머지 독살을 시도했고, 독을 토해낸 그는 목이 졸려 죽었습니다. 그 후 원로원은 콤모두스 이전으로 언어를 되돌렸고, 그가 세운 수많은 동상도 모두 철거했다.

☉ 이탈리아가 제작한 역사/신화 영화를 흔히 ’검과 샌들’이라 부른다. 리들리 스콧은 ‘검과 샌들’의 클리셰인 포도를 먹거나 고블렛잔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넣지 않겠다고 밝히고, 고대 로마에 대한 사실적인 비전을 만들고자 했다.
☉ 영화는 서기 180년 북유럽에서 로마 제국이 게르만 부족과 전투를 벌이는 시퀀스로 시작된다. 수많은 엑스트라와 폭발이 등장하는 오프닝은 영국 서리의 본 우즈에서 촬영됐는데, 왕립 산림위원회가 이곳을 삼림 벌채 예정지로 지정하고 있어 숲을 태울 수 있었다. 이 전투 장면을 위해 2만 개가 넘는 화살이 제작됐고, 20일에 걸쳐 촬영했다.

☉ 프록시모 역의 올리버 리드는 촬영을 마치기 3주 전에 세상을 떠났다. 보험 비용으로 2500만 달러를 확보해 리드가 찍었던 모든 장면을 다시 촬영할 수도 있었지만, 배우와 제작진 모두 지쳐 있었고 리들리 스콧도 리드를 영화에서 빼고 싶지 않았기에, 대본이 수정됐고 대역과 CG를 사용해 그의 빈자리를 채웠다.

☉ 막시무스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 ’SPQR’은 ‘Senatus Populusque Romanus’의 악자로 ‘원로원과 로마 국민’을 뜻한다. 로마 역사를 통틀어 주된 슬로건 중 하나였고, 맨홀 뚜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다.

☉ 전투를 앞두고 의지를 다지며 대사 “힘과 명예로!”는 본래 대본에 없던 것으로, 러셀 크로우가 떠올린 것이다. <글래디에이터 II>에서 루시우스 역시 전투에 나가기 전 해당 대사를 외친다. 크로우의 애드리브가 빛을 발한 또 다른 대목은 막시무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자신의 집을 설명하는 장면인데, 실제 호주에 있는 자신의 집을 묘사한 것이라고. 전투 전 막시무스가 새를 바라보는 것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설정이다.
☉ 영화 속에서 황제는 검투사를 살리라는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리고,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는 뜻으로 엄지를 아래로 내린다. 하지만 이 제스처는 본래 로마 시대의 의미와 정반대다. 제작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요즘 ‘엄지 척!’은 긍정적인 뜻이라 관객에게 불필요한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고증 오류를 받아들였다.

☉ 의상 감독 잔티 예이츠와 그의 팀은 출연진을 위해 만 벌 이상의 옷을 제작했다. 리들리 스콧과 처음 작업한 <글래디에이터>로 오스카 의상상을 수상한 예이츠는 <글래디에이터 II>에도 참여해 스콧과 총 16개 작품을 함께 했다.

☉ 막시무스의 아내 역을 맡은 지아니나 파시오는 2015년에 리들리 스콧과 결혼했다. 1996년 작 <화이트 스콜>로 처음 스콧 영화에 출연해 <올 더 머니>(2017)까지 스콧 감독의 영화 13편에 등장했고, <매치스틱 멘>(2003)과 <하우스 오브 구찌>(2021)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 모로코의 엄격한 동물 수입 규정을 피하기 위해 모로코 라바트 동물원에서 동물을 대여해 촬영했다.
☉ 카시우스 특유의 뾰족한 눈썹은 배우 데이비드 헤밍스의 것 그대로다.

☉ 한스 짐머는 본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1998)에서 함께 작업했던 예맨계 유대인 가수 오프라 하자가 주제가 ‘Now We Are Free’를 부르길 원했다. 하지만 2000년 하자가 폐렴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밴드 ‘데드 캔 댄스’의 리사 제라드가 보컬을 맡았고, ‘Now We Are Free’는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 경기장에 호랑이를 풀어놓은 건 사실에 기반한 설정이다. 촬영장엔 5마리의 호랑이가 있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진정제가 장전된 총을 쏠 사격 전문가가 대기하고 있었다. 호랑이가 러셀 크로우에게 4.5m 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돼 있었지만 착오로 인해 3m가 넘는 호랑이가 크로우를 스쳤고 영화에도 그 순간이 담겼다.

☉ 본래 시나리오엔 막시무스가 죽지 않았다. 촬영 현장에서 리들리 스콧이 러셀 크로우에게 다가와 “아이를 위해 복수를 하는 인물인데 복수를 마치고 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콜로세움 옆에서 피자집을 운영할까?”라 말했고, 즉석에서 막시무스가 죽는 걸로 변경했다.
☉ <글래디에이터>의 성공은 <트로이>(2004), <킹 아서>(2004), <알렉산더>(2004), <킹덤 오브 헤븐>(2005), <300>(2006), <로빈 후드>(2010), <노아>(2014), <엑소더스: 신과 왕>(2014) 등 대작 역사물의 부흥을 불러왔다. 이 중 리들리 스콧의 감독작이 셋, 러셀 크로우의 주연작이 둘이다. <로빈 후드>가 리들리 스콧 감독, 러셀 크로우가 다시 만난 작품이다.

☉ 1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들인 <글래디에이터>는 4배가 훌쩍 넘는 수익을 기록했다. 2000년에 개봉한 작품 중 톰 크루즈와 오우삼의 <미션 임파서블 2>를 잇는 최고 흥행 2위를 차지했다.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 12개 부문 후보로 올라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은 모로코 와르자자트에서 찍었다. 세트 철수 비용이 커서 모로코 정부에 10달러에 넘겼는데, 거의 20년이 흘러 <글래디에이터 II> 촬영을 위해 그걸 다시 샀다.
☉ 1편이 개봉하고 수년간 속편 제작을 위한 시도들이 있었다. 리들리 스콧과 러셀 크로우는 작가로서도 여러 책을 낸 뮤지션 닉 케이브에게 각본 초안을 요청했다. 케이브가 쓴 버전은 고대 로마의 신화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 십자군 전쟁,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을 거쳐 워싱턴 펜타곤에서 일하는 현대의 막시무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국 이 버전은 제작되지 않았다.

☉ ‘파라마운트’ 임원인 다리아 세르첵과 마이클 아일랜드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진행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셔츠를 벗은 탄탄한 체격을 자랑한 폴 메스칼을 보고 그에게 주연을 맡기고자 마음먹었다. “객석의 여성 관객들의 목소리가 매우 높아서 “우리의 남자를 찾은 것 같다”고 생각했죠”.

☉ 티모시 샬라메, 마일즈 텔러, 오스틴 버틀러, 리차드 매든 등이 리들리 스콧을 만나거나 오디션을 본 걸로 알려져 있다. 결국 폴 메스칼이 루시우스 역에 확정되자 스콧과 ‘파라마운트’의 임원들은 다른 주요 배역에 출연한 배우를 찾기 시작했고, 오스카 2회 수상자인 덴젤 워싱턴과 접촉을 시도했다. 워싱턴은 취향이 까다롭고 아무 작품에나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서 그의 캐스팅은 미지수였는데, <아메리칸 갱스터>(2007)에서 스콧과 작업했던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악역에 흥미를 느껴 마크리누스 역을 수락했다. 워싱턴이 <앤트원 피셔>(2002) 이후 22년 만에 조연을 맡았다. <앤트원 피셔>는 워싱턴의 감독 데뷔작이었다.

☉ 아일랜드인 폴 메스칼을 포함한 대부분의 출연진이 영국 억양을 쓴 반면, 덴젤 워싱턴은 예고편에서 자신의 뉴욕 억양을 고치지 않아 비판받았다. 워싱턴은 이에 대해 “(바꿨다면) 그게 어떻게 들렸을까요? 결국 누군가를 흉내만 내다가 나쁜 아프리카 억양으로 끝났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 루시우스의 어머니인 루실라 역의 코니 닐슨과 그라쿠스 의원 역의 데릭 제이코비는 1편과 2편에 모두 출연한 배우다. 늘 로마 제국에 매료돼 있던 닐슨은 로마 역사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고 고증을 자문하기도 했다.

☉ 이집트계 팔레스타인 배우 메이 칼라마위가 비중 있는 역할로 캐스팅돼 촬영까지 마쳤지만 영화엔 통편집 됐다. 마크리누스의 첩 중에 1명의 역할로 5개 장면에 대사 없이 배경에만 잡히는 게 전부다. (마크리누스의 또 다른 첩을 연기한 배우들과 달리)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오르지 못했고, 영화 프로모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칼라마위가 통편집 된 배경에는 그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게 크게 작용했다는 소문이 유력하다. 이에 대해 반기라도 들듯 페드로 파스칼은 SNS에 촬영장에서 칼라마위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 <글래디에이터 II>는 지난 11월 22일 미국에서 개봉했지만 같은 날 개봉한 뮤지컬 영화 <위키드>에 이은 2위로 데뷔했고, 그보다 한주 먼저 한국에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지만 바로 다음 주 <위키드>와 한국영화 <히든페이스> 때문에 3위로 밀려났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