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난히 추운 올해 겨울, 추위를 피해 극장으로 피신해 보는 건 어떨까. 12월 4일 개봉하는 <소방관>과 <1승>, 12월 11일 개봉하는 <대가족>, 그리고 12월 25일 개봉하는 <하얼빈>까지, 굵직한 한국영화들이 올겨울 관객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그중 가장 먼저 국내 취재진에게 공개된 영화는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의 <대가족>이다. 지난 21일 오후,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는 영화 <대가족>의 언론배급시사회와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전통 만두의 외형 덕에, ‘아는 맛’의 만두인 줄 알고 먹었는데 의외의 맛이 기분 좋게 나는 만두라고 할까. 영화 <대가족>을 관람한 후에 남은 인상이다. 이색적인 재료들과 흔한 재료들을 버무려 전통의 비법으로 빚은, 독특하고도 익숙한 만두다.
12월 11일 개봉하는 영화 <대가족>은 스님이 된 아들(이승기) 때문에 대가 끊긴 만두 맛집 ‘평만옥’ 사장(김윤석)에게 세상 본 적 없던 귀여운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기막힌 동거 생활을 하게 되는 가족 코미디다. <변호인>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으며, 배우 김윤석, 이승기, 김성령, 강한나, 박수영 등이 출연한다.
‘병맛’ 웃음 포인트와 설정으로 가볍게 시작한 영화는 제법 묵직한 뒷맛을 남기며 끝난다. 자칫 ‘병맛’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소재들, 그저 웃음을 위해서만 심어진 것 같아 보였던 초반부의 장치들은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큰 그림을 완성한다. 가지각색 개성을 뽐내던 영화 전반부의 소재들이 후반에 이르러 한 개의 만두피로 덮이며 조화로운 맛을 낸다고 말하면 맞겠다.

<대가족>의 영어 제목은 ‘About Family’로, 제목은 ‘大가족’이 아닌 ‘對가족’이라고 써야 하는 셈이다. 영화는 가족에 대해서 고찰하는데, 그 고찰은 2002년 <집으로>, 2008년 <과속 스캔들>, 2013년 <7번방의 선물> 등 국내 극장가를 이끌었던 가족 공감 코미디와는 다소 궤를 달리한다.
<대가족>은 얼핏 전통적인 가족관에 기댄 신파 영화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오히려 현대의 가족관에 무게를 실어주는 영화다. 2000년,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 영화는 20세기의 전통적 가족관과 21세기의 새로운 가족관의 충돌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영화는 ‘아무리 싸워도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두루뭉술한 메시지로 마무리하는 대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개인을 규정할 수 없음을 역설한다. 이하 <대가족>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양우석 감독, 배우 김윤석, 이승기, 박수영의 말들을 전한다.

양우석 감독 “<변호인> <강철비>와 다른 이유는..”

<변호인> <강철비>와는 확연히 다른 색채의 영화로 극장가를 찾아온 양우석 감독은 “과거에도 그랬는데, 매번 이 시기에 이런 얘기를 하면 좋겠다 싶은 작품을 한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족의 형태, 의미, 관계가 굉장히 많이 변했다”라며 가족에 대한 정의가 격동하고 있는 이 시기에 <대가족>을 쓰고 연출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영화 속 오래된 만두 맛집인 ‘평만옥’은 서울 한복판, 빌딩에 둘러싸인 ㅁ자 모양의 한옥으로, 함무옥(김윤석)이 만두를 팔아 자수성가해 이뤄낸 영광의 성채와도 같은 공간이다. 양우석 감독은 “평만옥은 함무옥을 대변하는 공간”이라며 “한옥을 공부하다 보니, 일제강점기 때 우리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던 분들이 지은 개량 한옥을 알게 됐다”라며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는 함무옥의 집이자 삶터, 생업의 현장을 영화 속 형태로 구상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김윤석 “함무옥은 결핍이 많은 인물”

김윤석은 필모그래피 사상 처음으로 가족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 따뜻하고 인간적인 캐릭터로 관객을 찾아왔다. 김윤석이 연기한 함무옥은 얼핏 전통적인 가부장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따르는 듯 보인다. 그는 부모님의 제사를 누구보다 중시하며, 귀한 음식은 오직 함씨 가문의 것이라며 그의 부인조차 손을 못 대게 한다. 그런가 하면, 대를 잇지 않고 출가한 외아들 함문석(이승기)에게는 세상을 다 잃은 듯 호통을 치고, 함씨 가문을 이을 손주들이 등장하자 잘나가는 만둣집 평만옥의 영업까지 뒤로한 채 그들을 반긴다.

김윤석은 “함무옥은 굉장히 결핍이 많은 인물”이라며 캐릭터에 대해 해석한 바를 밝혔다. 김윤석은 함무옥이라는 인물을 통해“우리의 모자란 모습, 못난 모습, 약한 모습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함무옥은 돈을 위해 휴지 한 장까지 아끼는 구두쇠와 같은 캐릭터이기도 한데, 김윤석은 “돈에 집착을 하다 보니까 본인이 정작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게 가장 큰 비극”이라며 함무옥의 재력과 대비되는 그의 결핍에 대해 힌트를 건넸다.
이승기 “삭발은 어렵지 않다”

<대가족>은 가족 이야기에 불교적인 색채를 더했다. <아저씨>의 원빈이 영화에서 삭발을 한 것처럼, <대가족>의 이승기 역시 영화에서 삭발을 한다. 다소 파격적일 수도 있는 장면에 이승기는 “양우석 감독님과 김윤석 선배님의 출연만 보고 영화를 선택했기 때문에 삭발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이승기는 배우 본인이 불교 신자라,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고민 없이 삭발을 결심했다고.

영화는 부모와 자식 관계를 불교의 진리를 인용해 설명한다. 최근 이승기는 가정을 꾸렸는데, 그는 “촬영할 때는 잘 몰랐는데, 아이가 태어나니까 ‘부모에게 아이란 무엇인가’라는 말이 와닿는다”라고 밝혔다.
<대가족>에서 주지스님 함문석을 보필하는 수행승 역할을 맡은 배우 박수영은 영화의 웃음 포인트를 담당하는 감초와 같은 존재다. 박수영 역시 삭발을 한 채 영화에 임했는데, 박수영은 “이승기 씨가 (삭발에 대한) 고민을 안 하는 데 제가 무슨 고민을 하나. 나는 그냥 그렇다”라며 취재진에게 웃음을 안겼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