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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명화] 당근 중독자가 당근 끊게 된 사연 〈타겟〉

씨네플레이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당근!’ 휴대폰에 알림이 떴다. 몇 분 전에 올려둔 나눔 게시글을 보고 연락이 온 모양이다. 아기가 50일이라 구매한 풍선인데, 사진만 찍고 버리자니 아까워서였다. 나름 돈을 들인 풍선이기에 글을 올리자마자 연락이 왔다. “게시글 보고 연락드렸어요~ 시누 아기가 곧 50일이라 쓰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나눔 가능할까요~?”

우리 부부에게는 처치 곤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유용하게 쓰일 테다. 이것이 나눔의 미덕 아니겠는가. 곧장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이죠! 저희 집으로 가지러 오셔야 해요. 저는 oo아파트인데 위치 괜찮으세요?” 그러자 날아든 답장에 소름이 쫘악. “oo동 oo호이세요?”

 

뭐지, 우리 집 동 호수를 어떻게 아는거야....?????

스릴러로 변모한 우리 부부의 중고거래. 그때 이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타겟>. 영화 <타겟>은 중고거래라는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을 소재로 했다.  

 

〈타겟〉
〈타겟〉


주인공 수현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최근 이사를 하게 된 수현은 세탁기 하나를 중고거래로 구매한다. 꽤나 싸게 구입한 세탁기를 들고 룰루랄라 집으로 오는데, 세탁기가 고장나 있다. 하지만 판매자는 연락 두절. 사기를 당한 것이다. 거래 사기를 당한 것을 깨달은 수현은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에 판매자를 찾아내고 그의 게시글마다 사기꾼이라는 댓글을 남겨 거래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부터 수현의 일상에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수현의 번호로 무료 나눔글을 올려 전화 폭탄을 받게 하는 ‘얕은’ 수준의 괴롭힘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어지는 일들은 장난이 아니라 범죄다. 주문하지 않은 음식이 집으로 배달되는가 하면 수현의 집에는 이상한 짓을 하려는 남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거기다 수현의 잠가진 현관문을 따고 들어오기까지 하는 판매자. 수현이 없을 때 집에서 샤워도 하고 밥도 먹는다. 판매자가 다녀간 이후엔 컴퓨터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등 이상한 일들까지 벌어진다. 수현은 심상치 않다 느끼고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를 하기에 이른다.

 

중고거래가 스릴러가 될 줄이야 !

다시 우리 부부의 스릴러로 돌아와보자. ‘우리집 주소가 털린 건가?’ ‘아니라고 답장할까?’ ‘뭐라고 하지?’ ‘아 나눔 괜히 했네…’ 잠시 고민하는 사이 도착한 메시지. “아닌가요? 아 저희 윗집에 아기를 낳았다길래 혹시나 해서요”

무시무시한 스릴러를 기대했다면 죄송하다. 다소 허무한 메시지로 부부스릴러는 빠르게 막을 내렸다. 구매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아랫집 아줌마.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아랫집 아줌마가 내 판매글을 보고 연락이 올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이 정도면 인연 아닌가? 스릴러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단편 영화 정도엔 비벼볼 만한 에피소드다.

그렇다면 아랫집 아줌마는 어떻게 아파트 이름만 듣고 우리 집이라는 걸 유추했을까. 또 다른 스릴러의 시작일까? 그건 우리 아파트가 동이 몇 동 되지 않는 것도 한몫했으리. 두 달 전 아기를 낳고 아랫집 윗집 옆집에 양해를 부탁한다며 과자를 돌린 일이 있다.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우리 부부의 등줄기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중고거래 이거 좀 무섭네?

아랫집과의 기묘한(?) 인연으로 부부스릴러는 막 내렸지만, 우리의 중고거래가 그렇다고 순탄한 건 아니다. 우리 부부가 중고거래에 빠진 것은 내가 임신을 하고부터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은 산모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다. 당근마켓은 육아용품 거래로 성장했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당근 거래 추천템으로는 100일 전후로 못 쓰게 되는 아이템들이 대부분. 기저귀 갈이대나 아기침대, 디럭스 유모차 같은 것들은 비싼 돈 주고 새것을 사더라도 잠깐 쓰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당근!’ ‘당근!’ 임신 기간에 설치한 중고거래 앱은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우리 부부가 원하는 육아템을 키워드에 등록해두고 판매자가 등장하면 부리나케 달려가 챗을 걸면 된다. 인기템들은 5초 만에 챗을 걸어도 품절된다는 사실. 속도가 생명이다. 육아 용품이 한두 푼 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짧게 쓰고 마는 용품들은 당근으로 구입하고 재당근 하면 된다. 재재재재재재당근이 붙은 상품도 여럿 있다는 사실.

거래 횟수가 많다 보니 이상한 사람들도 꽤 많이 만난다. 비대면 거래라고 말했는데 초인종을 눌러 아기를 깨게 만든 구매자는 애교 수준. 몇 번 안 쓴 아기침대를 팔겠다는 글을 올리자 대뜸 5만 원이나 깎아달라고 챗이 오는 구매자도 있었다. 안된다고 말하자 그렇게 살지 말라며 폭언을 날리기까지 했다. 아. 아기 모빌을 판다고 해서 날짜 시간 약속을 하고 집 앞까지 갔더니 물건은 없고 연락 두절된 판매자도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집에 돌아오니 그제야 온 챗 “아. 깜빡 졸았어요. 다시 오시겠어요?”

 

 

그래도 살인자는 아니잖아

〈타겟〉
〈타겟〉


물론 <타겟>의 판매자에 비할 바는 아니다. 수현을 괴롭힌 판매자. 그를 잡기 위해 경찰이 나선다. 용의자 집을 방문해 문을 여는데. 헉! 김치냉장고에서 대학생 변사체가 나온다. 중고거래 사기에서 살인사건으로 바뀌게 되는 전환점이다. 범인은 수현을 지키려는 형사 승현과 수현에게 치근덕대던 직장 상사 김 실장까지 살해한다. 그리고 수현에게 “오래 안 걸린다. 금방 찾아간다”라며 협박까지 한다.

도저히 범인이 잡히지 않자, 수현은 최후의 수단을 쓴다. 바로 일부러 범인이 좋아할 만한 타겟이 되는 것. 범인을 만난 후 수현은 거래할 물건을 사용해봐야겠다며 집으로 유인하고, 그렇게 범인을 검거하게 된다.

영화적인 전제임이 분명하다. 집주소, 얼굴, 이름 모든 것이 노출된 상태에서 살인범과 독대라니. 수현은 가능했지만 우리 부부는 불가능하다. 진상만 만나도 지레 겁을 먹어버리는 쫄보 부부이기 때문이다.

 

〈타겟〉
〈타겟〉


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고거래를 하다보면 있을법한 일이다 싶다. 상세 주소를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정말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나쁜 일을 저지르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실제로 챗을 나누다보면 공동현관 비밀번호 정도는 쉽게 알려준다. 간편하게 거래하기 위해 나눈 개인정보들이 누군가에게는 범죄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앱을 지워야 하나..

 

영화 <타겟>의 후유증인가. 챗을 걸어오는 이들을 괜히 한번 의심하고 보는 요즘이다. 장난감을 사겠다고 채팅을 보냈더니 덤으로 내복까지 주겠다는 판매자의 호의에 "뭐야, 내복을 미끼로 우리 유인하는 거야?"라고 쑥덕대는가 하면 아기 개월 수가 비슷한 것 같다며 육아팁을 늘여놓는 투머치토커 판매자의 너스레에는 "좀 수상한 것 같지 않아? 친구 하자고 접근하는 거 아냐?"라며 김칫국을 마시기도 했다.

물론 정가보다 훨씬 싼 가격이라는 메리트를 포기할 수는 없다. 짧게 쓰고 말 물건은 사지 말자는 우리 부부의 짠테크 육아 신념을 무너뜨릴 생각도 없다. 하지만 영화 <타겟>이 선사한 그 어떤 공포감은 영 가시지가 않는다. 그래도 이건 영화이지 않는가!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의 중고 거래는 따뜻하다며 불안함을 잠재우려던 순간, 남편의 한마디.

헉, 이 영화 실화라네?

 

2020년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사기의 재구성(얼굴 없는 그놈을 찾아라) 편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네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