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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 연기 위해 00까지 했다, 〈하얼빈〉 비하인드 TMI

성찬얼기자

역시 연말 기대작. <하얼빈>이 12월 24일 개봉 후 줄곧 1위 자리를 수성하며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묵직한 필름 누아르로 풀어낸 <하얼빈>은 스크린에 담긴 영상미가 증명하듯 영화를 만드는 동안 각종 일화가 있어 비하인드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얼빈>을 본, 혹은 앞으로 볼 관객들을 위해 그동안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에서 밝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아봤다. 아래 내용은 씨네플레이에서 진행한 ‘한국영화, 감독’ 우민호 편과 매체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을 재구성했다.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은 없지만, 영화의 재미를 위해선 가급적 관람 후 내용을 훑어보길 권한다.


〈하얼빈〉
〈하얼빈〉

 

<하얼빈>이 처음부터 '우민호의 하얼빈'이었던 건 아니다. 각본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를 다룬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연출을 맡겠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당시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을 읽은 우민호 감독이 관심을 보였다. 다만 우민호 감독은 이 각본 그대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안중근 의사 영화가 될 수 없다고 의견을 전했고, 보다 묵직한 분위기의 각본으로 새로 썼다고 한다.


〈하얼빈〉 몽골 고비 사막 로케이션 장면​
〈하얼빈〉 몽골 고비 사막 로케이션 장면​

 

<하얼빈>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독립군들이 활동했던 풍경을 담기 위해 한국, 몽골, 라트비아 3개국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다. <하얼빈>의 우덕순 역을 맡은 박정민은 생애 처음으로 라트비아를 방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얼빈>이 개봉하는 시점에서 박정민은 차기작 촬영 때문에 라트비아에 머물고 있어서 관련 행사를 참석하지 못했다.


〈하얼빈〉 모리 다쓰오 역 박훈
〈하얼빈〉 모리 다쓰오 역 박훈

 

독립군, 특히 안중근을 쫓는 데 혈안이 된 모리 다쓰오 역은 배우 박훈이 맡았다. 박훈은 우민호 감독의 전작 <남산의 부장들>에 출연했다. 그렇지만 영화 후반 작업에서 그의 장면이 통편집됐다. 본인은 우민호 감독과 함께 작업하면서 영화에 대해 많이 배웠고, 같이 호흡을 맞췄던 이병헌에게 칭찬도 받았기에 통편집이 아쉽진 않았다고. 이 인연은 <하얼빈>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서울의 봄>을 촬영하던 중 우민호 감독에게 출연을 요청받았다고 한다. <남산의 부장들> 작업 이후 따로 소통한 적이 없는데 다시 자신을 떠올려준 우민호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단다.

 

〈하얼빈〉 모리 다쓰오 역 박훈
〈하얼빈〉 모리 다쓰오 역 박훈

 

박훈은 <하얼빈>에서 가장 충격적인 비주얼 변신을 선보였는데,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감독의 제안대로 삭발하고, 거기에 두피 문신으로 이마 라인까지 바꿨다고 한다. 이후 벌크업으로 체구까지 커진 덕분에 외국에서 체류할 당시, 그가 모자만 벗으면 사람들이 눈길을 피하곤 했다고. 이 정도로 모리 다쓰오의 비주얼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에 박훈은 “내가 연기를 못해서 달라진 모습이 내 눈에 보여야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얼빈〉 신아산 전투 장면
〈하얼빈〉 신아산 전투 장면

 

우민호 감독은 <하얼빈> 촬영 과정을 회상하면 “하늘이 도운 느낌”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인간이 감히 통제할 수 없는 날씨마저도 영화의 비주얼이 돼줬기 때문. 영화 초반 신아산 전투가 대표적인데, 해당 장면은 광주에서 촬영했는데 '눈 좀 많이 내려달라'고 고사를 지냈더니 50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린 탓에 제설 작업을 하느라 촬영이 다소 연기되기도 했지만, 그 덕에 신아산 전투를 담을 수 있는 설산이 완성됐다. 그렇게 실제 설산에서 찍다보니 하루에 5컷 이상 찍지 못했고, 그래서 한동안 “<하얼빈> 촬영장은 하루에 한 컷 찍는대”라는 이상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렇게 촬영을 기다리는 동안 우민호 감독과 현빈 사이에 특별한 공통점이 생겼다. 바로 황도캔. 우민호 감독은 소주 안주로 황도캔을 애용하는데, 술자리를 온 현빈이 “감독님 이게 뭐예요?” 하길래 황도캔이랑 소주랑 같이 먹으면 맛있다고 소개해 줬다. 이후 현빈이 황도캔에 소주를 먹는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고.


〈하얼빈〉 몽골 홉스골 호수 장면
〈하얼빈〉 몽골 홉스골 호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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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안중근 의사가 혈혈단신으로 걸어가는 얼음호수는 몽골의 홉스골 호수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의 표면 얼음은 두께가 1m 정도. 가장 가까운 공항에서도 16시간은 걸리는 이곳에서 촬영할 당시, 항공촬영으로 모든 스태프들은 다 후방에 빠져있고, 현빈 혼자 그 얼음호수 위를 걸었다고 한다. 현빈은 이 장면을 찍으면서 당시 독립군의 고독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기온은 영하 40도에 달했다고 한다. 참고로 원래 시나리오상에선 설산을 헤매는 장면이었는데, 촬영 답사에서 홉스골 호수의 풍경을 보고 변경했다고 한다.


〈하얼빈〉 이창섭 역 이동욱
〈하얼빈〉 이창섭 역 이동욱

라트비아에서 머무를 당시 우민호 감독은 현빈, 이동욱과 종종 산책을 했는데 그때마다 주변 외국인들이 두 사람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심지어 외국인 남성들도 두 사람을 쳐다보곤 했다니, 둘의 외모합은 스크린에서 보는 만큼 어마어마했던 듯. 그래서 우민호 감독은 두 사람에게 “애국한다 생각하고 종종 산책하고 와”라고 농을 던졌다.


〈하얼빈〉 이토 히로부미 역 릴리 프랭키
〈하얼빈〉 이토 히로부미 역 릴리 프랭키

안중근 의사에게 척결당하는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유명 배우 릴리 프랭키가 맡았다. 릴리 프랭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일본영화에 출연해 한국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배우. 그가 안중근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맡은 것이 신기하게 보이지만, 우민호 감독에 따르면 릴리 프랭키는 꽤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고 한다. 우민호 감독의 전작들을 재밌게 봤고, 독립투사를 다룬 영화라는 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개봉 전 한국을 직접 찾은 릴리 프랭키는 블랙핑크의 지수와 뉴진스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뉴진스의 일본 인터뷰 영상에서 내레이션을 담당하기도 했다.


〈하얼빈〉 안중근 역 현빈
〈하얼빈〉 안중근 역 현빈

 

영화 마지막 내레이션은 “사람들이 모이면 불을 들고 나아간다” 같은 문장 등, 현대 한국을 반영한 내레이션이 아니냐는 반응이 이어졌다. 하지만 우민호 감독은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귀를 토대로 작성했다고 밝혔다. 우민호 감독의 최근 작품 <남산의 부장들>과 <하얼빈>은 각각 개봉 즈음에 코로나19 팬데믹, 계엄령 선포라는 사건이 터지는 우연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