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콘텐츠 맛잘알’다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에서 <폭싹 속았수다>가 눈길을 사로잡는 사이, 북미에서도 두 편의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호평받아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하나는 매 에피소드를 컨티뉴어스 숏으로 채운 <소년의 시간>, 다른 하나는 추리와 코미디라는 장르적 재미를 안기는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이다. 추리 장르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면서도 다른 장르와의 결합으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곤 한다.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를 포함해 독창적인 콘셉트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은 드라마를 소개한다.
33분 탐정
33分 探偵

보통은 사건이 일어나면 탐정이 고군분투해야 한다. 사건의 진위, 진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그런데 <33분 탐정>은 그 정석을 정반대로 이용한다. 사건은 누가 봐도 척 풀어낼 정도로 단순하다. 용의자가 바로 체포되거나 목격자가 확실하거나 증거가 존재하거나. 그러면 사건을 해결하고 막을 내리면 되는데, <33분 탐정>은 역으로 33분을 끌어야 한다. 왜? 드라마니까. 극중 유능한 탐정 쿠라마 로쿠로는 눈에 빤히 보이는 진상을 일부러 외면하듯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추리를 시작하고, 다른 인물들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TMI를 늘어놓아 시간을 채우기 바쁘다. 그러고는 어찌저찌 사건을 마무리하고 사건의 여운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 그렇다, 이 드라마는 대놓고 추리 장르의 클리셰를 비튼 코미디다. 진지한 척하지만 전혀 진지하지 않는 추리를 거치며 슬랩스틱부터 말장난까지 쏟아낼 수 있는 모든 코미디를 쏟아낸다. 쿠라마 로쿠로 역의 도모토 츠요시가 「소년탐정 김전일」 실사 드라마의 김전일로 유명하다는 것부터 복선이라면 복선.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달리 극의 구성은 반복적이라서 장기 방영하지 않고 총 14화로 종영됐다(1기 9화, 특별편, 2기 4화). 그럼에도 유례없이 독창적인 설정의 추리 드라마라는 건 분명하다.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
The Residence


3월 20일 공개 이후 넷플릭스 시리즈 인기 순위(영어) 2위에 오른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는 일견 추리 장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클로즈드 서클(Closed circle, 내부인에게서 벌어진 사건을 다루는 하위 장르)의 기성품처럼 보인다. 한 사람이 죽었고, 그곳에 있던 탐정이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지 추리한다. 이 익숙한 장르에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가 더한 비법은 사건 공간의 특이성이다. 똑같은 클로즈드 서클이라고 해도 백악관이 사건 현장이 되는 순간 스케일이 어마무시해진다. 132개의 방, 157명의 용의자. 거기다 피해자가 죽기 전 “오늘 안에 난 죽을 걸세”라는 말까지 했다니, 심증이 가는 용의자가 한둘이 아니다. 탐정 코델리아 컵(우조 아두바)은 과연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참고로 이 드라마에서 그리는 백악관의 모습은 허무맹랑한 허구가 아니다. 드라마가 원작 삼은 「백악관의 사생활」(케이트 앤더슨 브로워 씀)은 기자가 백악관 근무자들을 취재한 논픽션이다. 이를 토대로 각색한 드라마이니 추리 드라마 취향이 아니더라도 미국 대통령의 사생활이 궁금하다면 시청에 도전해보시라. (넷플릭스 서비스 중)
하이 포텐셜
High Potential

엄마는 강하다. 다소 구식처럼 느껴지는 이 문구가 <하이 포텐셜>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아이를 셋 키우고 있는 싱글맘 모건 길로리(케이틀린 올슨)는 평범한 청소부다. 단지 LAPD(LA경찰국)를 청소하던 중 사건의 브리핑 보드만 보고도 진상을 파악할 정도로 머리가 좋을 뿐이다. 한낱 청소부가 낙서한 것으로 생각해 그를 추궁하던 LAPD 직원들은 이내 모건의 추리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음을 알고 놀란다. 결국 그의 유능함을 인정한 형사들은 모건을 ‘컨설턴트’ 명목으로 수사에 동참해달라 요청한다. <하이 포텐셜>에 재미를 더하는 건 모건의 유능함뿐만 아니라 유별난 성격이다. 워킹맘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사건 현장에 유아를 동반하는 등 일반적인 엄마와는 차원이 다르다. 보자마자 사건의 단서를 알아채는 모습이나 이렇게 범상치 않은 행동들은 현대판 셜록 홈즈를 내세운 <셜록>(2010~2017)에서 셜록 스스로가 말한 ‘고기능 소시오패스’를 연상케 한다. 프랑스·벨기에 합작한 드라마를 원작 삼아 미국으로 옮긴 <하이 포텐셜>은 2024년 9월 방영 후 인기를 끌어 벌써 시즌 2 제작에 착수했다. 얘기가 더 방대해지기 전 '모건코인'에 탑승하자. (디즈니플러스 서비스 중)
100만 엔의 여인들
100万円の女たち


보통 추리 장르는 탐정, 즉 제3자 입장에서 풀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100만 엔의 여인들>은 그 사건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 있는 사내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무명작가 미치마 신(노다 요지로)의 집에 다섯 명의 여자가 찾아온다. ‘초대장’을 받았다는 이들은, 월세 100만 엔을 내고 미치마와 함께 살아가겠다고 한다. 미치마는 ‘규칙’에 따라 여자들에게 뭔가를 물을 수도 없지만, 결국 월세를 받고자 다섯 여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예상 못 한 행운과 불운 모두 겪으며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100만 엔의 여인들>은 단순히 어떤 사건을 계기로 추리하고 범인을 잡는 류의 작품이 아니다. 갑자기 찾아든 여자들의 정체, 초대장으로 이들을 모은 사람, 그 모든 것이 수수께끼인 가운데 미치마는 이 평범하지 않은 일상의 근원을 알아내야만 한다. 국내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만큼 남녀의 동거에서 흐르는 성적 긴장감과 사건도 푸짐(?)하게 담겨있다.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여기서 갈린다. 이 지나치게 남성향에 맞춰진 상황을 견딜 만큼 사건이 궁금하거나, 아니면 그 판타지에 진저리 치며 결국 빠르게 손절하거나. (넷플릭스 서비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