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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작가의 〈베러맨〉, 올해 가장 훌륭한 음악영화에 눈물을 흘렸다

씨네플레이
〈베러맨〉
〈베러맨〉


처음엔 당황할 수 있다. 웬 침팬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괜찮다. 초반부만 넘어가면 여러분은 금세 적응할 것이다. 이 침팬지가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해외의 평가와 관객 반응이 먼저 증명한다.  


로비 윌리엄스는 스타다. 그것도 메가 스타다. 단, 조건이 있다. 영국과 유럽 한정이라는 것이다. 영국과 유럽에서 로비 윌리엄스는 투어만 했다 하면 매진, 음반과 싱글은 거의 빠짐없이 히트를 기록했다. 그의 차트 성적은 그야말로 찬란하다. 보이그룹 ‘테이크 댓’(Take That) 시절을 제외해도 영국 싱글 차트 1위곡은 7개, 톱 10으로 범위를 넓히면 30곡이다. 전 세계 앨범 판매고는 7500만 장. 미국의 그래미라 할 브릿 어워드에서는 총 18회 트로피를 가져갔다.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이다.

 

〈베러맨〉
〈베러맨〉


“데뷔 초반에는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침팬지처럼 느껴졌어요”. 로비 윌리엄스의 고백이다. 저 말 그대로다. 영화에도 나오는 매니저의 철저한 관리 속에서 테이크 댓은 정상으로 치솟아 올랐다.

영화 <베러맨>은 전기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한 소년의 꿈을 향한 욕망이 펼쳐지고, 그 욕망을 이룬 뒤 절제하지 못하는 슈퍼스타의 어두운 과거가 뒤를 잇는다. 어느덧 그에게 타자는 그저 내 성공을 확인할 때나 필요한 거울일 뿐이다. 그러나 그 거울을 통해 그는 스타랍시고 과장해서 전시했던 나 자신이 결국 구겨진 포장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음을 절감한다. 우울증이 뒤따른다. 마약 중독을 비롯한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진다.

 

〈베러맨〉
〈베러맨〉


하긴, 스타라는 게 뭔가. 스타라는 존재는 유폐된 파라다이스 비슷한 것이다. 로비 윌리엄스에게도 그랬다. 결국 이 슈퍼스타는 반성의 시간 속에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타이틀은 로비 윌리엄스의 히트곡 ‘Better Man’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여기, 스타를 열망하는 한 소년이 있다. 영국 북부 작은 도시 출신이다. 이후 오디션에 지원해서 보이 밴드의 일원이 된다. 팀의 막내다. <베러맨>에서 테이크 댓은 처음에 게이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으로 묘사된다. 사실이다. 로비 윌리엄스의 고백을 듣는다.

 

〈베러맨〉
〈베러맨〉


“인생의 완전히 바뀌는 경험이었어요. 전 북부에서 자랐고, 꽤나 거칠고, 폭력적이고 적대적인 환경이었죠. 하지만 게이 클럽에서는 모두가 친절했어요”.

 

그 결과, 로비 윌리엄스는 게이 라이프 스타일 잡지 ‘애티튜드’(Attitude)의 표지를 총 4번이나 장식했다. 이성애자 남성으로는 최다 기록이다. 그가 양성애자라는 소문도 있지만 사실로 확인된 적은 없다.

 

〈베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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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종착지는 형식적으로는 넵워스(Knebworth)에서의 공연이다. 넵워스는 런던에서 북쪽으로 가면 있는 마을이다. 대형 야외 공연 장소로 특히 유명하다. 영화 초반에 로비 윌리엄스가 친구와 함께 대형 간판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간판 글자를 잘 보면 1990년 6월 30일에 열린 넵워스 페스티벌 홍보물이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였다. 이 외에 퀸(Queen)의 1986년 공연이 넵워스에서 있었다. 관객은 12만 명. 오리지널 멤버로 소화한 마지막 콘서트였다. 1996년 오아시스(Oasis)의 넵워스 공연에는 이틀간 25만 명이 몰렸고, 2003년 8월 3일에는 로비 윌리엄스가 37만 5천명 앞에서 라이브를 펼쳤다. 영화 후반 이 라이브가 드라마틱한 촬영으로 묘사된다.

 

〈베러맨〉
〈베러맨〉


영화적 구성을 위해 사실과 다르게 엮은 부분이 꽤 된다. 우선, 로비 윌리엄스는 외동아들이 아니다. 샐리(Sally)라는 누나가 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은 네이트(Nate)가 아니다. 조너선 윌크스(Jonathan Wilkes)가 속칭 베프다. 둘은 무대에서 듀엣으로 공연하기도 했고, 자선단체도 함께 만들었다.

 

〈베러맨〉
〈베러맨〉


로비 윌리엄스는 영화와는 다르게 이미 리드 보컬을 몇 곡에서 맡아 불렀다. ‘I Found Heaven’, ‘Everything Changes’, ‘Could It Be Magic’ 등등. 그러나 ‘I found heaven’의 리드 보컬은 로비와 게리 발로우(Gary Barlow)가 함께 했음에도 영화에서는 게리 발로우 단독인 것으로 묘사된다. 멤버 및 매니저와의 갈등과 로비 윌리엄스의 고뇌를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베러맨〉
〈베러맨〉


연인이었던 니콜 애플턴(Nicole Appleton)과의 관계 역시 수정된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니콜이 속한 그룹 올 세인츠(All Saints)가 ‘Never Ever’로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던 때 로비 윌리엄스는 이미 스타였다. 영화에서는 열등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식으로 바뀌었다.  

 

〈베러맨〉
〈베러맨〉


이 장면에서 로비 윌리엄스가 오아시스의 갤러거(Gallagher) 형제를 처음 만난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 역시 사실과 다르다. 로비 윌리엄스는 그전부터 이미 갤러거 형제가 지도한 악동 되기 수업의 충실한 학생이었다. 전기 영화인 만큼 팩트를 중시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런 것처럼 세상 대부분의 빼어난 전기 영화에는 약간의 변주가 존재한다. <베러맨> 역시 마찬가지다.

 

〈베러맨〉
〈베러맨〉


처음엔 <혹성탈출>인가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을 마친 당신은 이 영화가 제공하는 끝내주는 엔터테인먼트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Let Me Entertain You’라는 로비 윌리엄스의 히트곡 제목처럼 말이다. 그리고 끝내, 나처럼 감동을 이기지 못해 눈물 흘릴 것이다. <베러맨>은 전기 영화의 규범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흥분과 재미를 놓치지 않은, 2020년대 가장 훌륭한 음악 영화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