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영애가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고전 〈헤다 가블러〉로 연극 무대에 선다. 그가 20대인 1993년 출연했던 〈짜장면〉 이후 32년 만의 연극 도전이다.
8일 서울 마곡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최된 〈헤다 가블러〉 제작발표회에서 이영애는 연극 출연 결정 배경을 밝혔다.
"연극 출연 제의를 받고 '공부하는 자세로 해보자'고 시작했다"며 "〈헤다 가블러〉는 배우로서 보여줄 것도 많지만 힘든 것도 많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이영애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영애는 "어렸을 때 했던 〈짜장면〉은 아주 오랫동안 크게 기억에 남았고, 20대, 30대, 그 이후를 보내면서도 항상 연극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1890년 발표된 〈헤다 가블러〉는 억압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헤다는 남성들의 흠모를 받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면서도 냉소적이고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복합적인 인물로, 매기 스미스, 아네트 베닝, 이자벨 위페르, 케이트 블란쳇 등 세계적인 여배우들이 도전해온 난도 높은 역할이다.
이영애는 자신이 연기할 '헤다'에 대해 "정답이 없는 여성 같다"며 "헤다는 하나의 색깔을 가진 인물이 아니어서 우리가 기존에 알던 헤다의 색깔을 바꿔보고 싶다"고 새로운 해석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면서 (헤다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중"이라며 "밝은 모습이 있어야 이면의 더 어두운 모습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 새로운 헤다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애는 "결혼하고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여성으로서 다양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됐을 때 만난 작품"이라며 "20대나 30대 때 만났더라면 이렇게 공감하면서 (연기)할 수 있을까 싶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영애는 입센 희곡 전집을 완역한 김미혜 한양대 연극영화과 명예교수와의 대화가 출연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 지도교수였던 김미혜 교수님과 이야기하다가 입센의 작품을 하게 된다면 〈헤다 가블러〉를 하고 싶다고 했다"며 "헤다의 매력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배우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 할 테고 저도 그랬죠. 마침 드라마(〈운수 좋은 날〉) 촬영도 끝나고 배우로서 도전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 출연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베테랑 배우지만 그에게도 수십 년 만의 연극 무대가 결코 쉽지 않았다.
"대사가 많아서 어려움이 커요. 엔지(NG)가 있으면 안 돼서 체력적으로 힘들고 1막부터 4막까지 퇴장 없이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도 있죠," 라고 이영애는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캐릭터를 연구하면 할수록, 대본을 세 번 읽을 때, 열 번 읽을 때 다르더라고요. '내가 몰랐던 걸 이렇게 알게 됐구나' 하는 희열감도 있다"며 연극 작업의 깊이를 강조했다.
또한 "드라마가 끝나면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며 "좀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목마름이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다른 배우들과의 공동작업이 "연기 이상으로 저에게 큰 힘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이 제작하는 〈헤다 가블러〉와 같은 시기에 무대에 올라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LG아트센터의 공연은 5월 7일, 국립극단의 공연은 하루 뒤인 5월 8일 개막한다.
특히 두 공연의 주인공 헤다 역을 각각 이영애와 이혜영이 맡아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 대결이라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생겼다. 연기 경력 45년의 대배우 이혜영과 이영애의 서로 다른 해석이 어떻게 펼쳐질지 관객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이영애는 "이혜영 배우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팬으로서 좋아하는 배우"라며 "이렇게 같은 시기에 공연하게 될 줄 몰라 조금 놀라긴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이혜영의 색깔과 이영애의 색깔을 비교해 봐도 좋고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면 좋은 게 아닌가 싶다"며 "저도 이혜영 배우의 작품을 많이 기대하고 있고 두 작품 모두 잘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인철 연출가는 국립극단과 동일 시기에 같은 작품을 공연하게 된 상황에 대해 "당황스럽고 부담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지나고 보니 관객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아 잘 됐다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 연출가는 "1천500석 규모의 LG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가로 16m, 높이 10m의 거대한 무대 세트를 마련했고 대규모 스크린을 활용한 라이브 영상을 활용해 연극과 영상이 스펙터클하게 표현되는 장면들을 구성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러한 규모가 "국립극단 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 공연과는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극은 이영애를 비롯한 모든 출연진이 원캐스트 체제로 한 달여간 공연될 예정이다. 출연진으로는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이의 잠녀(해녀) 이모 역을 맡았던 백지원을 비롯해 김정호, 지원준, 이승주 등이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