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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스 플랜: 데스룸〉 이세돌에게 반했다면 이것도… 그를 인류 대표로 만든 세기의 대결 〈알파고〉

성찬얼기자
〈데블스 플랜: 데스룸〉 이세돌
〈데블스 플랜: 데스룸〉 이세돌

넷플릭스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데블스 플랜: 데스룸>이 5월 20일 마지막 분량을 공개하며 3주간의 방영을 맞췄다. 이번에도 다양한 분류의 출연자를 구성해 케미스트리를 마련했는데, 이번 출연자 중 특히 화제를 모은 인물은 전 바둑기사 이세돌이다. 바둑에서 한 나라를 대표할 만큼 우수한 기사에게 붙이는 ‘국수’(國手)라는 존칭을 받은 7명 중 한 명인 이세돌이기에 그의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에 당연히 기대가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프로그램 특성상 그만큼 많은 견제를 받아 기대만 한 활약은 못했다는 반응이 많지만, 그럼에도 순간순간 번뜩이는 그의 카리스마는 바둑계를 평정했던 시절의 명성을 보여줬다. 그의 모습을 좀 더 보고 싶은 시청자가 있을 텐데, 아쉽게도 그에 관한 영상물은 그리 많지 않은 편. 그래도 이 다큐멘터리 하나는 챙겨보면 좋겠다 싶어 가져왔다. 바로 이세돌을 대한민국, 인류의 스타가 되게 했던 알파고와의 대국을 그린 다큐멘터리 <알파고>다.


〈알파고〉
〈알파고〉

2017년 공개된 <알파고>는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때는 2016년,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는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와 알파고의 대결을 주선한다. 지금이야 챗GPT가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수많은 인공지능 에이전트 중 어떤 녀석을 구독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대인데 9년 전 2016년만 해도 인공지능이 프로페셔널한 인간을 이긴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처럼 보였다. 이 대결 전 알파고는 이미 4회 연속 유럽 바둑 챔피언을 달성한 바둑기사 판후이를 5:0으로 이겼음에도 사람들은 알파고의 성능이 아니라 판후이의 실력이 문제였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알파고 개발진(과 딥마인드를 인수한 구글)은 알파고의 성능을 세계에 알릴 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라는 이름으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열었다.

이 시점에서 이세돌은 바둑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그 이름을 알리게 됐다. 전 세계, 모든 시대의 바둑 기보를 통째로 학습한 바둑 인공지능에 맞서는 인류의 대표. 사실 당시만 해도 ’맞선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세돌 본인도 5:0 승리를 점쳤고, 바둑 전문가 대다수 또한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를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의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일종의 이벤트 매치 정도가 될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알파고>는 초반 30분을 대회 직전까지의 이야기로 채우고 이후 약 한 시간을 이 매치를 요약하는 데 할애한다.

 

 

〈알파고〉
〈알파고〉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알파고와 개발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 이세돌의 심리를 자세하게 담은 건 아니다. 당시 인공지능 바둑 기사와 칼끝 승부를 겨루는 입장이었던 그에게 다큐멘터리 제작진도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밀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바둑기사로서, 그리고 인간 이세돌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순간은 존재한다. 쉬운 승부가 되리라 예상했던 이세돌은 1국부터 알파고에게 패배한다. 그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승부를 수긍한 후에는 “알파고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팀에 깊은 존경심을 표한다”고 예를 갖춘다. 동시에 “실전 경험이 (알파고와) 많이 다르기에 일국을 졌다고 흔들리거나 이런 것은 없을 것이다”라며 담대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알파고는 그렇게 순순한 상대가 아녔다. 이세돌은 이후 대국에서도 연이어 패배한다. 2국에서 누구도 예측 못한, 그래서 실수처럼 보인 ‘37수’로 승리 이상의 강렬함을 남겼다. “초반부터 한순간도 제가 앞섰다는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느낀 이세돌은 3국에서 변화를 주며 역전을 노려보지만 이조차도 실패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연패가 이어지면서, 기뻐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예상외의 1승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개발진은 이세돌의 패배에 오히려 크게 동요한다. 알파고에게 패배했지만 이후에도 대국하며 데이터를 제공했고 현장에 심판으로 참석한 판후이의 말을 빌리자면 동양에선 특히 바둑을 예술로도 보는데, 우리 바둑 기사들은 아티스트로서 최선을 다하는데, 이세돌은 정말 훌륭한 바둑기사인데도 되지 않는다는 것. 인간이란 존재가 남겨둔 최후의 영역이 인간의 피조물에게 침입당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을 모두가 목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세돌 본인도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심한 압박감을 느낀 적이 없다. 그걸 이겨내기에 내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고 참담한 마음을 전할 뿐이었다.

 

 

〈알파고〉
〈알파고〉

그러나 판후이의 말대로 알파고와의 기보가 “거울”이고, 그것을 이세돌이 받아들인 것일까. 4국은 달랐다. 본연의 스타일로 돌아온 이세돌은 알파고를 몰아세웠고, ‘신의 수’라고 불리는 78수를 보여준다. 알파고가 결코 예측하지 못한(정확히 말하면 알파고 자신이라면 1만 분의 1의 확률로 놨을) 수에 알파고는 무너져내렸다. 개발진은 알파고의 예상 승률이 실시간으로 깎여내려가는 것을 본다. 그 패배에도 그들은 웃는다. 그들 입장에선 사실상 또 하나의 표본을 알파고에게 학습시킨 셈이었으니까. 동시에 이세돌 본인의 말처럼 “무력감, 두려움, 이김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냈다”는 마음이 모두의 내면에서 일었기 때문이다. “바둑은 둘이 두는 거죠, 좋은 바둑은 결코 한 명의 천재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라는 영화 <승부> 대사처럼,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긍지 모두를 들여다보게 했다.

 

이세돌의 인터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알파고> 팀 카메라 앞의 이세돌은 대개 이렇게 외면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바둑기사 이세돌의 승부욕을, 뜻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상징으로서 다가오는 미래의 전조와 맞붙는 이세돌을 지켜볼 수 있다. 거기에 딸아이가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에 이를 보이며 방긋 웃는 아버지 이세돌의 모습까지 슬쩍 만날 수 있다. 이세돌의 전부를 알 순 없지만 그의 찰나를 만나보기에 이만한 작품이 없다. 무엇보다 ‘구글 딥마인드’를 다룬 작품답게 유튜브에 무료로 볼 수 있다. 구글 딥마인드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AlphaGo - The Movie’를 검색해 만나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