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포일러가 있지만, 글을 읽고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블루스를 연주하는 흑인은 자신이 악마를 섬기는 죄인이고,
따라서 지옥에 갈 거라고 여겼다.
- 가레스 머피, 「레코드맨」
나 같은 죄인은 그거면 충분해.
-영화 속 델타 슬림(Delta Slim)의 대사
모든 이야기는 미시시피 델타에서 시작된다.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북서부에 있는 지역이다. 영화 <씨너스: 죄인들>의 배경이 되는 클락스데일이 정확히 이 장소다. 이곳에서 블루스가 탄생했다. 블루스란 무엇인가. 미국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창조한 음악이다. 한데 아프리카 흑인이 미국에만 (강제로) 간 게 아니다. 브라질에도 (강제로) 갔다. 이 음악을 삼바라고 부른다. 아프리카 흑인은 쿠바에도 (강제로) 갔다. 이 음악을 ‘쏜(Son)’이라 부른다. 손흥민 아니다. 빔 벤더스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이 다루는 그 음악이다. 게릴라적 상상력으로 들끓는 영화 <씨너스: 죄인들>은 블루스의 역사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끝내주는 오락 영화다. 물론 블루스를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다. 그러나 블루스의 역사를 조금만 공부하면 더 재미있고, 짜릿하게 즐길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다.

1932년.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의 1인 2역)이 클락스데일에 도착한다. 첫 방문은 아니다. 둘은 이곳 출신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추측하건대 시카고에서 갱단 생활을 하다가 뭐가 잘 안 풀려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둘은 주크 조인트를 개장하고, 이곳에서 술을 팔아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핵심 단어가 무려 4개나 나왔다. 스모크와 스택, 주크 조인트, 술, 그리고 블루스다. 먼저 이 형제의 이름인 스모크와 스택은 블루스 전설 하울링 울프(Howlin’ Wolf)의 1956년 곡 ‘Smokestack Lightning’에서 따온 것이다. 제목은 증기기관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뜻한다. 이렇게 이름을 정한 이유는 이렇다. 형제가 시카고 출신임을 강조한 것이다.

1900년대부터 미시시피 델타를 비롯한 미국 남부에 살던 흑인이 북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군수품 수요가 높아지면서 북부에 일자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미시시피에 살던 흑인들은 기회를 찾아 ‘증기기관차’를 타고 북부, 정확하게는 시카고로 떠났다. 뭘 해도 여기보다는 낫겠지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블루스도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미국 남부 한정이던 블루스가 북부로 퍼지면서 리듬 앤드 블루스(R&B)가 된 것이다. 시카고는 당시 미시시피 델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현대적 도시였다. 미국 남부에서 쓰던 어쿠스틱 기타로는 대도시의 소음을 이겨낼 수 없었다. 흑인들은 어쿠스틱 기타를 버리고 전기 기타를 잡았다. 따라서 리듬 앤드 블루스는 곧 일렉트릭 블루스다. 지명을 그대로 따서 시카고 블루스라고도 부른다.

금주법도 중요하다. 역사상 가장 멍청한 법이라고도 불리는 금주법은 1919년부터 1933년까지 시행됐다. 즉, 영화는 금주법이 폐지되기 바로 1년 전을 다루는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술로 인한 폭력 예방이 취지였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짐작하겠지만 국가 차원에서 금지했다고 인간이 술을 끊을 리가 없다. 금주법이 시행되자 밀주가 성행했다. 결과적으로 금주법 시대에 음주 소비는 400퍼센트 증가했고, 범죄율은 25퍼센트나 올랐다. 그렇다면 밀주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범죄세력이 급부상했을 것이다. 그렇다. 마피아가 모든 걸 독점하다시피 했다. 미국의 1920년대는 통상 ‘포효하는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린다. 엄청난 호황기였다는 의미다. 그 중심에 있었던 산업이 바로 마피아의 밀주 산업이었다.
즉, 우리는 다음처럼 추측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성공을 좇아 1920년대 즈음 시카고로 갔던 스모크와 스택 형제는 밀주 사업을 하는 마피아에 속해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둘은 고향으로 돌아와 주크 조인트를 세우고 술을 팔려고 한다. 한데 술을 팔려고 하는 대상이 중요하다. 백인이 아니다. 흑인이다.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자 델타 슬림을 연기한 배우 델로이 린도의 말을 듣는다. “영화에서 흡혈귀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에요. 흑인 공동체의 자원을 착취하는 외부 세력을 뜻하죠. 또, 이 영화는 공동체가 내부에서 붕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어요.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발생하는 자기파괴적 폭력 같은 것 말이에요”.
이 세상에 ‘먹고사니즘’보다 중요한 건 많지 않다. 지배계층의 억압 속에 피지배 계층의 화살은 서로를 향하기 마련이다. 이를 통해 권력은 자신의 위치를 더욱 쉽게 다질 수 있다. 속된 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영화에서 형제 중 한 명이 말한다. “진짜 돈만 받아. 농장 화폐는 받지 마. 그러다 망해”. 다른 형제가 말한다. “죽도록 일하다가 온 사람들이잖아. 좀 봐주자고”. 피지배 계층끼리의 갈등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는 것처럼 짐 크로(Jim Crow)법이 여전한 시절이었다. 짐 크로법은 흑백 분리법이다. ‘Separated but equal’이라는 명목 아래 흑인은 백인과 같은 공간에 거주할 수 없었다. 영화의 주요한 배경이 주크 조인트일 수밖에 없는 바탕이다. 주크 조인트는 당대 유행한 흑인 전용 술집이다.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했던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영화에서는 새미와 다른 가수가 라이브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어쨌든 주크박스는 흑인이 잠시나마 숨 쉴 수 있었던 곳이었다. 백인의 억압과 고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공간, 이게 바로 주크 조인트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이라는 전설로부터 비롯된다. 1911년에 태어나 1938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흑인 블루스의 전설이다. 대략의 스토리는 이렇다. 소문에 따르면 로버트 존슨에게는 음악적 재능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교차로에서 만난 악마와 거래를 맺고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 그러고는 당대 최고의 음악적 재능을 얻었다. 결국, 27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로버트 존슨을 두고 사람들은 “악마가 그의 영혼을 가져갔다”라고 여겼다.

스모크와 스택의 조카 새미가 바로 로버트 존슨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캐릭터다. 새미는 태어나서 클락스데일을 벗어난 적이 없는 10대 소년이다. 블루스 연주와 노래에 재능을 보이지만 하필이면 아버지가 목사님이다. “악마와 너무 오래 춤을 추면 언젠가 그가 너를 따라 집으로 올 거야”. 그럼에도 새미는 블루스를 향한 사랑을 멈출 수 없다. 결국 스모크와 스택은 새미를 주크 조인트 무대에 세운다. 새미의 강렬한 블루스가 기어코 악마를 불러들인다. 피의 살육이 펼쳐진다. 이 세상 모든 대중음악의 기원에 블루스가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사실상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이 장면에서 흐르는 곡 제목은 ‘I Lied To You’다. 영화 음악을 맡은 루드비히 고란손(Ludwig Göransson)과 흑인 뮤지션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이 공동 작업했다.
영화의 마무리는 블루스의 역사를 그대로 따른다. 미시시피에서 시카고로. 살아남아 여전히 블루스를 연주하는 노인 새미를 연기하는 사람은 배우가 아니다. 블루스의 전설 버디 가이(Buddy Guy)다.

<씨너스: 죄인들>과 함께 보거나 듣거나 알고 있으면 좋을 것들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영화 초반 새미 일행이 차를 타고 지나치는 도로에 흑인 죄수 무리가 노역하고 있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던 <셀마>(2014)를 연출한 에바 두버네이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국 수정헌법 제13조>(2016)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신이다. 남북전쟁 이전 존재한 노예제도는 기본적으로 경제 체제였다. 남북전쟁으로 해방된 노예의 숫자는 약 4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즉, 이 엄청난 숫자의 사람이 갑자기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자연스레 남부의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권력의 숙제는 따라서 다음 두 가지였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남부 경제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권력의 선택은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의 예외적 조항을 악용하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를 보면 남북 전쟁 이후 수많은 흑인이 범죄자로 전락했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감옥이 만들어졌다. 노예 상태였던 흑인이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즉 “범죄자를 제외한 모두가 자유의 몸”이라는 기준에 따라 다시 실질적인 노예 상태로 되돌아간 셈이다. 흑인은 거리를 배회하고 있어도 체포되어 감옥으로 보내졌다. 다큐멘터리는 그들이 사소한 죄목으로도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남부 경제 재건이라는 목적에서 찾는다.
<씨너스: 죄인들>의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영화의 리듬을 구성할 때 메탈리카(Metallica)를 떠올렸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 델타 블루스의 단순해서 깊은 본질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메탈리카의 위대한 곡처럼 강렬한 대비와 변화, 필연적이라 할 결론을 원했죠. 예를 들어 ‘One’ 같은 곡 말이에요. 이 곡을 들어보면 처음에는 거의 이지 리스닝 솔로처럼 시작해요. 그러고는 갑자기 완전 미쳐버리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요. 하지만 동시에 항상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느낌 같은 게 있는 거죠.” ‘One’은 메탈리카의 1988년 앨범 ‘And Justice For All’의 대표곡이다. 메탈리카의 드러머 라스 울리히(Lars Ulrich)는 이 영화 사운드트랙에 드러머로 참여했다.

영화 마지막에 KKK(Ku Klux Klan) 리더 호그우드가 클랜과 함께 주크 조인트에 도착한 뒤 이런 말을 내뱉는다. “클럽 주크. 그랜드 오프닝(Grand Opening), 그랜드 클로징(Grand Closing).” 이 대사는 흑인 배우이자 코미디언 크리스 록(Chris Rock)이 스탠드업 쇼에서 했던 말에서 따온 것이다. 래퍼 제이지(Jay-Z)가 ‘Encore’에서 차용하기도 했다. 한데 이 표현은 글에서 이미 언급한 델로이 린도의 말과 관련 있다. “이 영화는 흑인 커뮤니티 내의 분열과 자기파괴적 폭력에 대한 것이에요”.
크리스 록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흑인 사이에 뭔가 벌어지고 있어요. 흑인도 흑인을 똑같이 싫어하죠. 말하자면 흑인 사회의 내전 같은 건데 흑인에는 두 부류가 있죠. ‘Black People’이 있고, ‘니거(Niggas)’가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 니거들은 좀 사라져야 해요. 무식한 니거들이 뭘 하려고 해도 다 망쳐버리잖아요. 클럽을 열어도 3주를 못 가요. 개장 파티 거하게 했다가 곧장 거하게 폐업하죠. 니거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KKK에 가입해서 총으로 쏴버리고 싶어요. 진짜 지긋지긋해요. 니거들”.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순탁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