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말이 있다. 팬이 등 돌리는 순간, 가장 무서운 안티가 된다고. 그만큼 팬들은 본인이 사랑하는 것에 충성할 마음이 크지만, 반대로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거나 심하게는 ‘배신’ 당했다 느끼는 순간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결심을 한다. 근래 영화계에서도 이런 팬들의 성향을 우습게 봤다가 된통 당한 사례가 적지 않다. 팬들이 보고 싶은 것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실사영화로 돌아온 <드래곤 길들이기>는 100점 만점짜리 영화다. 장담한다. 이 영화에 호불호는 있을 수 있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니까. 그러나 2010년에 나왔던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를 사랑한 팬이라면 이 영화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6월 6일 개봉할 <드래곤 길들이기>를 미리 만나고 온 소감이다.
여러분 이거 좋아하셨죠? 한 번 더 보여줄게요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2025년 개봉하는 실사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는 2010년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의 실사판이다. 그리고 2010년 <드래곤 길들이기>는 크레시다 코웰 작가의 소설 「드래곤 길들이기」를 원작으로 한다. 그렇기에 원칙적으로는 코웰 작가의 소설을 ‘원작’이라고 해야겠지만, 소설과 애니메이션 간의 다른 부분이 있고, 이번 영화는 애니메이션을 거의 ‘복붙’한 수준이므로 이 기사에서는 2010년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지칭하겠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예고편을 본 관객이라면 알아채겠지만, 중요 장면 같은 경우 원작을 스토리보드로 썼다고 해도 좋을 만큼 대부분의 구성을 재현한다. 실사화라기보다 글자 그대로 다시 만든다를 뜻하는 ‘리메이크’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싶을 정도다. 이 지점이 <드래곤 길들이기>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드래곤 길들이기>를 처음 접하는 관객보다 이미 원작을 본 관객이 더 많으리라 예상되는데, 이번 실사영화의 이 반복성이 ‘친숙함’이란 무기가 될지 ‘기시감’이란 약점이 될지가 관건이다.


다만 사전에 영화를 본 입장에선 후자보다 전자를 느끼는 관객이 많을 것이라 예상한다. 이번 <드래곤 길들이기>는 원작을 연출한 딘 데블로이스가 메가폰을 잡았다. 드림웍스가 그를 다시 한번 <드래곤 길들이기> 세계의 수장으로 임명한 이유는 분명했다. 1편(과 그 성공)을 다시금 재현하는 것. 그리고 딘 데블로이스는 이 임무를 성실하게, 그리고 훌륭하게 수행한다. 1편의 장점, 투슬리스를 비롯한 드래곤들의 존재감과 환상적인 비행 시퀀스 등을 훌륭하게 재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딘 데블로이스 감독을 중심으로 제작진은 원작을 되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특히 비행 장면들은 기술의 발전과 실제 자연이란 특징을 극한으로 뽑아낸다.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덴마크의 페로 제도 등의 풍광은 실제로는 경험할 수 없는 <드래곤 길들이기> 비행 장면의 사실성을 채운다. 재빠른 카메라워크는 원작보다 속도감을 더욱 극대화해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정도다. 거기에 원작 삼부작의 음악을 담당한 존 파웰이 이번 <드래곤 길들이기>에서도 함께 해 원작의 향수를 일깨우고, 보다 웅장해진 오케스트라 스코어로 장면의 긴박감을 더한다.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원작에 비해 더욱 강화된 부분은 바로 드라마다. 원작도 히컵과 투슬리스의 끈끈한 우정이란 드라마가 있었지만, 이번 작품은 히컵과 아버지 스토이크, 히컵과 아스트리드의 관계가 한층 더 부각된다. 각색에 힘을 준 것도 있지만 실제 인간이 펼치는 연기라는 점에서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원작의 캐릭터도 당시 기준 상당한 표현력을 자랑하긴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각 배우들이 보여주는 눈빛이나 세심한 표현 등은 원작에서 다소 빈약해보였던 인간들의 드라마를 보강한다. 특히 원작 삼부작에 이어 다시 한번 스토이크로 돌아온 제라드 버틀러는 그 오랜 시간 스토이크를 연기하며 겪은 감정을 모두 쏟아내듯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히컵을 맡은 메이슨 템즈도 히컵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탄탄하게 보여줘 앞으로의 활약상을 기대하게 한다.
원작 복붙이기에 생긴 단점들

다만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원작을 거의 고스란히 재연하면서 ‘바이킹’이란 설정을 오묘하게 비튼 점이 가장 아쉽다. 이번 영화에선 우리가 흔히 아는 ‘노르드인 바이킹’이 아니라 ‘드래곤을 잡기 위해 각 섬에서 모인 집단’이란 설명을 덧붙인다. 몰입에 해가 될 정도로 크게 거슬리는 설정 변경이 아니고 실사 제작 과정에서 인종에 국한하지 않고 알맞은 배우를 기용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니 문제 삼긴 어렵다. 다만 명백하게 북유럽계 인종의 특징을 띄고 있는 시리즈의 대표 여성 캐릭터 아스트리드가 주요 캐릭터 중 유일하게 ‘이미지 캐스팅’에서 벗어난 점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영국인 배우 니코 파커는 최근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한 만큼 그런 이질감을 봉합하는 연기력을 보여주지만, 다른 인물들의 ‘싱크로율’이 상당해 아스트리드까지 원작에 가까운 이미지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다른 단점들도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사실 이 단점도 대부분은 원작에 기인한 실사화라서 발생한다. 몰입 전까지 다소 어색한 코스프레 쇼처럼 보이는, 거기에 엑스트라가 부족했는지 마을의 규모가 다소 적어보이는 오프닝이나 이렇게 거대한 투슬리스가 하늘을 휙휙 날며 비행 연습을 하는데 아무도 못 봤다는 전개 등이다. 이른바 애니메이션이라면 좀 더 가볍게 지나쳤을 문제점이 ‘실재’를 바탕으로 구현되니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지게 한다. 또 서두에 언급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기시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면 재밌게 즐기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드래곤 길들이기>는 원작 팬들에게 보내는 선물과도 같은 영화이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첨병이나 다름없는 ‘할리우드 영화’ 카테고리에 알맞은 영화다. 보편적인 공감을 자아내는 스토리, 탁월한 원작 재현, 거기다 원작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장면들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드래곤 길들이기> 관람을 고민하고 있다면, 고민 말고 달려가라. 투슬리스가 기쁘게 반겨줄 것이다.
+ 모든 크레딧이 올라간 후 쿠키 영상이 있지만, 쿠키 영상이라기보다 이미지 컷에 가까운 정말 짧은 영상이므로 반드시 볼 필요는 없다. 쿠키 영상이 사실상 없는 대신, 엔딩크레딧 통틀어 드래곤 사전이 배경으로 나오니 참고하자.